믿고 행하라. 김윤석이 김범신 신부를 연기하는 동안 속에 품었던 단 하나의 말이다. <검은 사제들>의 김 신부는 그야말로 곧은 성직자, 모든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고 신의 길을 가는 남자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김 신부는 이미 오롯하게 완성돼 있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두에게 등 돌렸으며, 모든 것을 신께 바칠 준비가 된 사람이다. 그 완고한 태도가 범인들로 하여금 종종 그를 향한 오해와 불신을 불러일으키게도 하지만 정작 김 신부 본인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거기다 악령을 쫓는 신부라니. 누구라도 쉬이 선택할 수 없었을 역할이다. 김윤석이 김 신부에게 깃들게 된 것은 일종의 “목마름” 때문이었다. “악역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아니, 악역이라 더 개성 있다고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캐릭터와 서사에 밀도를 채워넣고 싶은 욕망이 내게 있었다. 자기가 맡은 일에 목숨을 걸고 스스로 파멸하는 자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김 신부가 도중에 최 부제에게 그러잖나. ‘아무도 몰라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김 신부는 동시에 노련한 직업인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심드렁한 태도를 가장하고 있지만 김윤석의 인물들은 늘 일을 어설프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형식과 과정을 알든 모르든, 그는 맹금 같은 눈을 빛내며 관찰하고 금세 몸에 익히곤 했다. 구마예식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영화는 없었기에 김윤석은 이곳저곳에서 인물에 대한 실마리를 찾고 조언을 구했다. <엑소시스트>(1973), <사탄의 태양 아래서>(1987), <신의 소녀들>(2012) 등 사제를 다루는 영화는 웬만큼은 다 찾아봤다고 했다. “브레송의 <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1951)는 쿡티비에서 무료로 볼 수 있더라. (웃음)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도움이 됐다.” 관련 사료를 훑는 것은 물론이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아내에게도” 자문을 얻었다. “가장 성직자다운 모습이 무엇일까. 모든 예식의 말과 기도와 행동들이 힘들고 낯설었다. 문어체에 가까운 말투잖나. 아내에게 물어봤더니 ‘그분이 행하시는 일을 당신의 몸을 빌려 하시는 것뿐’이라더라. ‘예식을 집행하는 건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의지’라고, 내가 무언가를 건지려 애쓸 필요가 없으니 ‘그냥 믿고, 가라고’. 막연한데도 그 말을 들으니 편안하더라.” 듣자하니 나의 육체를 빌려 인물의 의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묘하게 집행자의 운명이 배우의 삶과도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하하, 배우의 일이란 게 일종의 역할놀이인데 하다보면 어느 순간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가 되기도 한다. 강 건너 불구경이 재밌어 구경하다보니 ‘내 집이었네?’ 하는 타이밍이 오는 거지. (웃음) 그런 순간은 대개 강한 장면이 아닌, 일상적인 장면일 때 더 훅 들어오더라.”
기민한 배우인 김윤석은 일상에선 평범한 40대 중년의 삶을 누리고 있다 하였다. 건강관리도 따로 안 한다고. “챙겨먹는 것? 절대 안 잊어먹는 것 하나 있지. 술! (웃음) 그래도 전처럼은 못 마시고 열에 아홉은 아내와 한두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정도다. 이젠 12시만 넘어도 피곤하니까.” 한때 음악도 많이 듣고, 독서도 열심히 했던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바깥도 슬쩍 돌아보게 되었다. 연극하는 지인들의 작품은 꼭 챙겨보고,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들고와 봐달라면 그것도 슬슬 보아준다고 했다.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지인들이 우울해하더라. 요즘은 잊고 지낸 사람들을 챙겨야겠단 생각이 많이 든다. 친구 하나와 멀어지는 게 어찌 그와 멀어지는 것뿐이겠나. 그건 나와도 멀어지는 거다. 우울증 걸린 중년들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웃음) 나도 느끼냐고? 그런 때는 누구나 온다고 생각한다. 심하게 앓는 사람이 있고 슬기롭게 넘기는 사람이 있는 것뿐이다.” 아직 좋은 시나리오가 오지 않아 지금은 마냥 기다리는 중이라는 김윤석의 시간이, 날카롭게 벼려진 줄만 알았던 배우의 시간이 묵직하고도 뭉근하게 깊어가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