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은 2013년 <변호인>으로 강렬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씨네21>은 그가 가진 가능성에 지지의 의미로 그해 송년호 커버의 지면을 할애했다. 그가 스타 캐스팅과 도식적인 멜로 구도로 점철된 기존 TV드라마의 생태계를 뒤엎은 <미생>의 열풍을 주도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미생>이 장그래 캐릭터가 남긴 커다란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건 결국 재빨리 차기작을 선보이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한 감독의 <오빠생각>은 바로 그 대답이라 할 것이다. 임시완은 6•25 전쟁 참전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한상렬 소위를 연기한다. 조용한 성격에 피아노를 치는 감수성 풍부한 청년이지만, 포탄이 터지는 전장의 한가운데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병사가 될 것을 요구당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 동료와 어린 인민군 소년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해야 했고, 난리통에 사랑하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시대를 껴안은 한상렬의 군복은 청년세대의 좌절을 대변했던 장그래의 헐거운 양복처럼 이번에도 애처로움으로 다가온다. 임시완은 때로 폭주하고 때로 온화한 연기로 한상렬의 고통을 표출하며 극을 이끌어나간다. 그가 고아원 아이들과 앵벌이에 동원된 아이들을 모집해 만든 합창단은 어린이들을 위한 위안이자, 피폐한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며, 응어리진 시대의 아픔을 풀어주는 화음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심정, 합창단 공연 같은 것이 잔상에 남아” <오빠생각>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임시완. <미생> 이후 그를 찾아든 무수한 러브콜 중 이 작품에 올인한 이유로는 성에 차지 않아, 작품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 재차 물었다. “기준이 뭘까. 왜 이 영화가 좋은 영화일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하루빨리 그런 기준이 정립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게 잘 안 된다. 그냥 이렇게 나를 움직이는 감정에 맡기게 된다.” 선택에 복잡함이 없는 것처럼, 접근 방법도 단도직입적인 것이 임시완의 스타일이다. 합창으로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프랑스 마르세유의 작은 기숙사 학교를 무대로 삼았던 <코러스>(2004)의 마티유 선생(제라르 쥐노) 같은 인물이 떠오를 법한데, 그는 레퍼런스는 일부러 찾지 않는다고 한다. “드라마 <트라이앵글>을 할 때 악역의 이미지를 더하려고 <변호인>에서 함께 연기한 곽도원 선배를 벤치마킹해봤다. 접근 방법이 잘못됐다는 걸 금방 알겠더라.” 외면을 따라하는 것, 누군가의 영향을 받는 것이 그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말한다. “치열하게 싸워서 나온 감정인데, 외양만 보고 껍데기만 표현하는 격이니 오히려 내 연기에는 마이너스가 되더라.” 그가 한상렬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울로 삼은 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연기한 어린 배우들이었다. “합창단 지휘자인 내가 어린이들의 순수함을 이끌어나가야 했다. 그 부담이 컸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나 혼자 안고 가는 게 아니더라. 동구 역의 (정)준원이와 순이 역의 이레가 의외로 복병이더라. (웃음) 합창단 친구들에게 오히려 기대어 갔고, 연기 자극도 많이 받았다.”
캐릭터 구상을 위한 복잡한 생각을 떠나 임시완이 매달린 건 합창단의 지휘자로 피아노나 지휘 같은 기술적인 연마 지점이었다. “잘하는 ‘척’을 못한다. 고향인 부산식 표현으로 하자면 ‘영 간지러워서’ 못하는 거다. 그래서 연기할 때는 뭐가 됐든 나한테 거짓말 안 하고 진짜를 표현하려고 한다.” 카메라 앞에서 ‘척’하기 싫었다는 그는 4개월 동안 연습한 피아노 실력으로 극중에서 쇼팽의 <녹턴 4번>을 연주한다. 바이올린 말고 피아노 연주는 처음이었다고 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대단한 칭찬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하나에 매달리는 편이다.” 느리지만 진득한 접근이야말로 임시완의 페이스이자 그의 연기 비결이다. “지금까지 한번에 두 작품을 한 적이 없다. 멀티플레이어의 시대지만 나는 그랬을 때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지는, 시대와 좀 동떨어진 인물이다. 그래서 작품 하는 동안에는 다른 대본을 아예 못 본다.”
연기에 있어서 상찬을 받은 그지만, 여전히 그는 그룹 ‘제국의 아이들’의 일원으로서 노래와 연기를 병행해 나가고 있다. “노래나 춤은 욕심은 있지만 잘하지 못하는 반면에 연기는 상대적으로 내가 가진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면 할수록 점점 연기가 좋아진다”고 말하는 그는 “<내부자들>이나 <암살> <베테랑> 같은 영화들을 보면 괜히 뇌리에 꽂힐까봐 피한다. 다른 배우들의 좋은 연기를 보면 나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강박에 휩싸인다”는 고민을 표출한다. 그렇게 그는 여전히 즐거운 성장통을 겪고 있는 배우다. 차기작으로 임시완은 대규모 대출사기극을 그린 영화 <원라인> 촬영을 앞두고 있다. 이 거대한 사기극에 뛰어든 대학생 민재 역할인데, 기존의 ‘착한’ 이미지와 또 다른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우린 매번 서로 다른 임시완을 만나 왔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