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돌아왔을까. 2002년 9번째 시즌 종영을 끝으로 영영 끝난 줄로만 알았던 TV시리즈 <엑스파일>이 14년 만에 10번째 시즌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20세기 음모론의 총망라와도 같았던 역사적인 드라마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라도 이 시리즈가 왜 다시 돌아왔는지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고 가리키던 수많은 ‘X파일’ 문서들이 영구 폐기되기엔 아직 이른 세상이 아니던가. 스포일러에 대한 공포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추리해보자. 그보다 더한 공포, 세상의 추악한 맨 얼굴이 어디선가 우릴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엑스파일> 시리즈와 함께 수십년의 세월을 살았고 또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멀더와 스컬리로 살아갈 이규화, 서혜정 성우도 시리즈와 함께 돌아온다. 반드시 더빙판으로 방영해야 한다는 팬들의 성원에 힘입은 결과다. <엑스파일>의 10번째 활약상은 캐치온 채널에서 오는 1월29일부터 총 6부작으로 방영될 예정이다. 추악한 진실게임이 또다시 시작됐다.
20여년을 이어왔던 전설의 드라마
국내에 ‘미드’란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수많은 팬을 거느리며 ‘미드 열풍’을 누렸던 인기 TV시리즈 <엑스파일>이 돌아온다. 1994년 국내 방영 이후 ‘본방 사수’에 눈뜬 팬들이 동호회를 만들어 시리즈 내의 모든 떡밥을 파헤치며 유희로 삼았을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엑스파일>과의 재회가 얼마나 반갑고 놀라운 일인지 더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요샌 X파일이라고 하면 연예인 지라시의 별칭으로 더욱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시리즈는 요즘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미드 폐인’ 1세대를 탄생시킨 사실상의 첫 드라마나 다름없었다. 과학과 이성으로는 해석과 이해조차 불가능한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범죄만을 수사하는 FBI 요원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대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의 활약상에 모두가 기꺼이 새벽잠을 갖다바쳤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엑스파일>이 담고 있는 이야기의 속성 중엔 지라시가 갖고 있는 속성과 닮은 점이 있다. 소문을 가장해서 진실을 왜곡하는, 결국 그것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기 위해 뿌려지기도 하는 지라시는 접하는 이로 하여금 믿거나 말거나라는 두 가지 선택의 고민을 안겨주는데 <엑스파일>이 20년 넘게 보여주려 애썼던 현실의 이면도 마찬가지였다. 멀더와 스컬리는 세상의 충격적인 진실을 은폐하려는 미지의 세력을 눈앞에 두고 늘 갈등한다. 멀더는 일련의 음모, 그러니까 외계인의 존재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그 실상을 파헤치기 위해 언제나 돌진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스컬리는 매사에 이성적으로 따져 묻는 인물이다. 눈으로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단하지도 않는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스컬리와 말끝마다 UFO를 언급하는 멀더는 그렇게 서로의 장단점을 적절하게 커버하면서 믿든 안 믿든 정부가 필사적으로 은폐하고 있는 무언가를 파헤치기 위해 지금껏 달려왔다. <엑스파일>은 보여줄 듯 말 듯 끝내 무수한 떡밥만을 남겨둔 채 끝내버리는 이야기 전개의 묘한 매력과 두 주인공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가 만들어주는 캐릭터의 매력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방대한 제작 기간과 어마어마한 노력이 투여된 프로젝트였기에 종종 진실게임의 본질은 저 너머로 날아가버린 채 방황할 때도 있었다. <엑스파일> 시리즈는 대개 시즌마다 20화가 넘는 에피소드로 꾸려져 있고 각각의 에피소드는 정부의 음모에 의해 은폐된 외계인의 실체를 파헤치는 큰 줄거리 안에서 각종 괴담이나 전설 등을 접목한 사건을 해결하는 별도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이야기를 총괄하는 기획자 크리스 카터의 진두지휘 아래 여러 감독들이 개별 에피소드의 각본과 연출을 맡아 완성했다. 시리즈와 이어지는 두편의 극장판 <엑스파일: 미래와의 전쟁>(1998),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2008)도 만들어진 바 있다.
음모론이 필요한 시대
시리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저 너머의 진실’이라는 게 어찌보면 굉장히 추상적으로 들린다. 때문에 이 드라마가 수용하고 있는 진실의 범위가 굉장히 넒다. 200여개가 넘는 에피소드에는 세상의 모든 희한한 사건이란 사건은 총망라되어 있다. 이를테면 실제 역사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는 미국 내 외계인 이슈의 핵심인 로스웰 사건을 기본적으로 파헤치는 와중에 늑대인간, 변형신체, 염력이나 흡혈, 심령현상 등의 불가사의한 소재 혹은 과학적 이슈인 DNA 복제 등이 모두 <엑스파일>의 소재가 됐다. 대부분 이를 소재로 범죄가 발생하는 이야기 전개지만 결국 이런 모든 초자연적 현상이 외계인의 흔적이라 믿는 멀더의 관점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지금 봐도 당시 <엑스파일>의 파격적인 소재 선정은 놀라운데 세상의 모든 불가사의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종종 세상의 외로운 것들, 예를 들면 유전적 결함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외계의 습격을 받아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여타의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서를 획득하기도 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엑스파일> 시리즈에는 <미지와의 조우>나 <우주전쟁>으로 대표되는 스필버그식 SF의 분위기와 <어벤져스>와 같은 블록버스터영화 속 히어로의 탄생 비화, 혹은 <엑스맨> 시리즈와 같은 뮤턴트들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 등이 종합적으로 섞여 있다. 어쨌든 SF 혹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기반으로 하는 <엑스파일>은 이후 수많은 유사 드라마의 성공 발판이 되었다. 그렇게 영광스러운 왕좌에 오른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는 이유에 대해 총제작자 크리스 카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한동안 시민들은 정부의 음모에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 멀더가 과거에 했던 수많은 경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시대가 음모론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에 크리스 카터는 과거 <엑스파일> 시리즈를 이끌었던 제작진을 다시 한데 모았다. 초기 시즌의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글렌 모건과 제임스 웡, 다린 모건 등의 각본가를 비롯해서 오리지널 시리즈의 배우들도 다시 모였다. 풀리지 않은 채 미결됐던 모든 사건을 종결짓고야 말겠다는 크리스 카터의 의지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시즌10은 이 시리즈의 출발점과도 같은 로스웰에서부터 모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멀더는 과연 외계인들이 과거 자신이 들춰냈던 것처럼 지구의 침략과 식민지화를 계획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 모든 정황 증거를 처음부터 다시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작점에 대해서 멀더처럼 까칠하게 의심을 더해보자면, 사실 이런 리메이크 방식은 이전 시리즈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새로운 관객을 위한 영리한 각본 전략이긴 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풀어내겠다는 초심이 더욱 강조된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최후의 진실이 다가온다
현실에서처럼 드라마 안에서의 시간도 14년이 지났다. 여전히 FBI 요원인 멀더와 스컬리는 X파일 부서 해체 후 각자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키너 부국장의 전화를 받는다. 스키너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유명 토크쇼 사회자 테드 오말리(조엘 맥헬)를 예의 주시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테드 오말리는 되레 멀더와 스컬리를 찾아와 X파일 부서가 지금껏 파헤쳐왔던 진실의 실체와는 전혀 다른 또 다른 진실을 보여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그리고 힘겹게 뒤쫓고 있었던 진실과는 전혀 다른 실상과 직면하게 된다. 그 때문에 X파일 부서는 부활할 기미를 보이고, 이들이 다시 재조명하려는 진실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기 시작한다. 크리스 카터가 여러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시즌10 6부작 이야기 안에서 멀더와 스컬리가 파헤치는 진실의 실체가 새롭게 규명될 것이며,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윌리엄의 존재, 그리고 스컬리 자신이 정말 외계 DNA를 지닌 채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지 등 이전 시리즈에서 풀리지 않았던 미스터리의 실체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거기에 더해 각본가 글렌 모건은 “첫 번째와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정부와 외계인의 음모를 파헤치는 메인 플롯과 관련된 에피소드이며, 나머지 에피소드는 (언제나 그랬듯) 독립형 에피소드로 꾸며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통적인 시리즈의 고유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야기의 근원을 다시 파헤치겠다는 전략에 따른 듯. 또한 다린 모건은 “항상 인간적인 부분을 다루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전 시리즈는 이야기가 멀더와 스컬리에게 인간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려 했다. 이번 시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제작진은 인간에게 닥친 최악의 위기 상황을 통해 결국 인간의 상태를 돌아보는 이 시리즈 고유의 매력을 잊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것
<엑스파일> 시리즈는 멀더와 스컬리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두 캐릭터를 통해서 허무맹랑한 음모론을 적절히 견제하되 무엇이든 음모 자체는 존재할 수 있다는 의심을 항상 열어두려 한다. 음모론을 과학의 가설에 비유한다면 가설은 언제나 새로운 명제나 개념을 산출해내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음모론과 실제 음모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 사실로 밝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엑스파일> 시리즈는 진실을 찾기 위해 무언가를 쫓다보면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현실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 너머의 진실이 무엇인지 “계속 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진실을 정말로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라는 끊임없는 의심에서 시작했던 이 시리즈는 멀더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해왔다. “난 그만둘 수 없어요. 진실이 어딘가에 있는 한.” 그리고 새로운 시리즈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금이 가장 위험해요. 뭐든 움직여야죠(Do something!)”라고 말이다.
입문자를 위한 <엑스파일> 시리즈 간단 줄거리
X파일은 FBI에 속해 있는 부서로 FBI조차 포기하거나 풀지 못한 사건을 의미한다. ‘귀신 잡는(스푸키) 멀더’라는 별명으로 FBI 내에서도 유별난 캐릭터인 폭스 멀더는 어려서부터 불가사의한 현상에 집착해왔다. 그는 12살 때 실종된 여동생이 외계인에게 납치된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데, 상부에서는 그에게 X파일 부서를 담당하게 한다. 1993년 상부는 그를 감시할 목적으로 대나 스컬리 요원을 X파일 부서에 공동 배치하는데 이성적인 스컬리 요원은 멀더와 함께 다양한 이상 사건을 겪으며 신념을 시험당한다. 심지어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생체실험에 이용당하기도 하면서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 그들을 도와 정부의 음모를 파헤치는 데 도움을 줬던 내부 고발자들은 하나둘 죽음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2002년 FBI 내부의 정책 변화로 X파일 부서는 폐지된다. 하지만 멀더는 여전히 UFO 목격담을 수집하며 로스웰 추락 사건을 비롯한 많은 사건들에 의문을 품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정부의 진짜 음모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음모론 신봉자 테드 오말리를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