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논리를 앞세워 어떤 초자연적 상황 앞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는 스컬리는 매사에 충동적인 멀더에게 있어 일종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다. 질주하는 멀더를 유일하게 보듬어주던 그녀는 진실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변화한다. 스컬리를 연기할 때면 언제나 머리로 계산해 연기했던 서혜정 성우 역시 그런 스컬리의 변화를 감지했던 것 같다. 14년 만에 다시 진짜 스컬리로 돌아가려는 그녀에게 소감을 물었다.
-두분도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 아닌가.
=아니다. 우린 자주 만난다. 여전히 광고 녹음을 같이 하니까. 멀더와 스컬리 버전으로. (웃음)
-2002년 시즌9 종영 이후 14년이나 지났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나본 스컬리는 어떻던가.
=더빙을 위해 시사를 하는데 주인공들이 나이가 든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스컬리가 많이 변했더라. (이규화 성우가 옆에서 “질리언 앤더슨이 감기 걸린 상태로 촬영한 것 같다”고 하자) 원래 허스키한 목소리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굵어진 것 같다. 그동안 질리언 앤더슨의 기사를 꾸준히 찾아봤는데 와일드하게 살았더라. 그런 영향 때문인지 미묘하게 액션도 변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목소리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 고민 중이다.
-처음 제작 소식을 듣고는 기분이 어땠나.
=왜 6편만 하는 거야, 길게 좀 하지. (웃음) 과거 하이텔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데 그 친구들이 미국에서 소식이 뜨자마자 바로 알려왔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다. <엑스파일>로 박사 학위도 따고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친구들도 있을 정도니까.
-새로 시작하는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는 마음에 들던가.
=시즌6 정도에 이르니까 이야기가 조금씩 메인 플롯인 외계인 이야기와는 별개의 괴기스런 에피소드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주변부 이야기를 좋아하는 팬들도 많은데 이번 새 시즌은 확실히 시작부터 외계인 이야기를 할 거라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어서 좋았다. 왠지 요즘 시청자들이 더 좋아할 이야기 같다. 과거 KBS에서 수입할 때도 정말 잘될지 의문을 가지고 수입했던 드라마다. 오히려 지금과 잘 맞는 이야기인 것 같다.
-<엑스파일>의 어떤 점을 좋아하나.
=이 드라마는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나 에피소드가 거의 없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오냐, 너희들이 언제 정을 주고받는지 두고 보자’며 오기로 봐도 안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까칠한 드라마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남자’가 아직도 안 죽고 나오더라. 너무 웃기지 않나. (웃음)
-스컬리란 인물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하나.
=그녀는 거의 웃지 않는다. 내가 더빙하면서 웃어본 기억이 없으니까. 쓴웃음을 짓는 정도가 전부였다.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도 거의 없고.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지만 그녀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형이다. 쓴웃음, 허탈한 웃음, 비웃음 정도로 일관하는 모습을 벗어나지 않는 게 매력이다.
-새로 녹음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임할 계획인가.
=한국어 대본상에서 스컬리의 대사 습관이 미묘하게 바뀐 것 같아서 내가 생각하는 원래 스컬리의 성격을 유지하려 한다. “그랬죠”가 아니라 “그랬어요”라고 바꾼다든가. 존칭도 캐릭터 감정을 표현하니까. 예전에 녹음했던 DVD를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당시에는 이규화 성우보다 내가 더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들어보니 그의 감정이 더 진짜 같더라. 나는 머리로 연기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를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