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의 세포들>을 보면 두번 놀란다. 내 이야기 같은 섬세한 심리묘사에 놀라고, 30대 직장 여성의 마음을 속속들이 그려낸 작가가 30대 남성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란다. 이동건 작가는 데뷔작 <달콤한 인생> 때부터 여성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다뤘다. 그런 본인도 이 정도의 지지와 호응은 예상치 못했다며 기쁨 반 부담 반의 소감을 전했다. 두 번째 시즌의 문을 연 <유미의 세포들>은 이제 유미와 웅이의 본격적인 연애담에 돌입 중이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아니 한층 폭넓은 공감 능력이 작품의 포인트인 것 같다. 특별하지만 평범한 연애 남녀의 속마음은 매회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사귀기 전과 연애 중일 때의 차이, 유미의 세포들은 이번엔 어떤 소동을 벌일까.
-시즌 2부 연재를 시작했다. 반응은 어떤 것 같나. 달라진 게 있는지.
=큰 주제를 가지고 시즌을 나눈 건 아니고 잠깐 휴식시간을 가진 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유미의 연애 전과 후를 다룬다는 것 정도? 특별히 다른 뭔가를 선보이기보단 기존 이야기의 연장에 가깝기 때문에 시즌2의 1화가 아니라 70화로 이어나가고 있다. 원래 유미의 연애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끝내려고 했던 작품인데, 독자들의 반응도 좋고 하면 할수록 뭔가 더 해볼 여지가 보여서 두 번째 시즌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겨보다 작가가 남자라는 사실을 알려주면 놀라는 이들이 많다.
=남자, 여자를 떠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그런 반응을 접하면 기분이 좋다. 솔직히 내가 여성의 마음을 꿰뚫거나 자세히 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애초에 여성 독자를 타깃으로 기획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자주인공보다는 여성의 시점에서 그리는 게 더 재밌고 흥미롭게 다가왔을 뿐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을 잡아나가고 있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아닐까.
-그럼에도 30대 여성의 심리를 이렇게 디테일하게 그려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요즘처럼 작가의 젠더 감수성에 대중이 섬세하게 반응하는 시기엔 조심스러운 점도 많을 텐데.
=기본적으로 어떤 걸 피할까보다는 뭘 제대로 보여줄까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히 그렇게 깊게 고민하진 않는다. 에피소드나 전개도 즉흥적인 부분이 더 많다. 다만 뭔가 찜찜한 부분이 있으면 주변에 꼭 물어보는 편이다. 아내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된다. 디테일한 부분을 직접 물어보는데 워낙 냉정하고 솔직하게 평가해주는 타입이라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다. (웃음)
-의식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태도가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물론 자기검열이 없진 않다. 하지만 어쩌면 남자 캐릭터, 예를 들면 웅이를 그릴 때 더 제약이 많은 것 같다. 그걸 정말 생각나는 대로 솔직하게 다 표현해버리면 아마 위험수위를 넘을 수도 있을 거다. (웃음) 현실적인 공감대만큼 중요한 건 이 작품이 어디까지나 웹툰이란 점이다. 누군가 이 내용을 보고 불쾌해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유미의 속마음을 그리는 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긴 해도 도리어 편하다. 디테일한 공감들은 경험에서 도움을 받지만 기본적으론 뭘 더 재밌고 경쾌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계산된 기획보다는 그때그때 내 감정과 반응들이 반영되는 면이 더 크다.
-우울한 상태일 땐 유미도 우울해지는 건가.
=실제로 내가 우울하면 캐릭터들도 찌글찌글하게 나온다. 그래서 가능한 한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것도 작가의 일 중 하나다. 내 몸 세포들이 원하는 게 있으면 최대한 다 들어주는 편이다. (웃음) 그리는 사람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거운 법이다.
-반영이 자유롭다면 트렌드에도 민감할 것 같은데.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주로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상황을 상상하는 편이다.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중 하나가 패러디다. 당장 그때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좀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 같다. 내용을 참고하진 않지만 감성적인 영감을 받는 건 주로 영화다. 로맨스, 코미디, 히어로물 등 장르 가릴 것 없이 영화 보는 걸 즐긴다. 만화보다 훨씬 많이 보는 것 같다.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건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봤는데 정신없이 빨려들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패밀리맨>과 <매치스틱맨>을 꺼내본다. 어릴 적엔 이런 영화를 한편 만들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언젠가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나.
=아직은 모르겠다. 영화는 즐기는 쪽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다. 생각해보면 만화를 업으로 삼고부터는 만화를 잘 안 보게 된 것 같다. (웃음)
-너무 당연한 것들, 감정들은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세포라는 형식에 빗대어 표현하니 공감의 폭이 훨씬 넓어지는 것 같다.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세포가 등장하는 점도 재미있다.
=주요 세포들을 딱 정해놓으라는 조언도 들었다. 식욕, 성욕, 이성, 감성처럼. 그런데 나중에 내가 뭘 하고 싶을지 모르지 않나. 가령 81화에서 집에 가기 싫은 유미의 마음을 감성세포가 설명할 수도 있지만 구질구질 세포라는 구체적인 캐릭터가 나오는 게 더 직관적이고 재미있다. 솔직히 나도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웃음) 그래서 더 재밌기도 하고.
-자연스러움이 이동건이란 작가의 가장 큰 힘인 것 같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
=거대한 이야기, 깜짝 놀랄 표현보다는 즐거운 만화, 유쾌한 이야기의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다. 심기가 불편할 때 언제든 부담 없이 찾아보고 기분전환할 수 있는 만화. 구상해놓은 스토리들이 여럿 있지만 아직 모호한 미래보다는 지금 당장 한주 한주 <유미의 세포들>에 집중하려 한다. 당장 다음주에 어떤 이야기를 그릴지 나도 궁금하다. (웃음)
너도 모르는 네 마음을 알려주마, <유미의 세포들>
30대 직장 여성 유미의 마음속에는 유미도 모르게 행동을 결정하는 다양한 세포들이 산다. 이성, 감성, 사랑, 출출, 엉큼 세포들은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은 물론, 사소한 결정까지 가리지 않고 서로 투닥거리며 유미의 행동을 이끈다. 30대 직장 여성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 같은 공감 가는 묘사가 포인트! 시즌2에서는 ‘썸’을 지나 본격적인 연애에 들어선 유미와 웅이, 두 사람의 속마음을 펼치며 또 한번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는 중이다.
작업은 이어폰과 함께
“작업할 땐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있다. 혹시나 배터리가 떨어질까 대기 중인 블루투스 이어폰이 무려 세개! 나름 이성과 감성을 나눠서 작업하는데, 단순작업을 할 땐 주로 팟캐스트에서 시사를 비롯한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스토리를 구상하거나 몰입할 땐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놓는다. 가사에 몰입하다보면 그때 그 시절 감성이 간질간질 되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