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젠 달라져라, 오스카여
2016-02-26
글 : 장영엽 (편집장)
2016 오스카를 둘러싼 논란과 이슈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

#오스카는 반성하라 #다양성이슈 #OscarsSoWhite #OscarsSoStraight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전초전부터 시끌벅적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누가 어떤 상을 받을 것인지보다 어떤 유색인종 출신의 영화인이 부당하게 후보에 오르지 못했는지가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본격적인 논쟁은 지난 1월13일,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가 발표되면서부터 시작했다. 작품상, 연기상 등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주요 부문 후보가 모두 백인으로 채워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지난해에 이어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는 해시태그가 다시 한번 전세계 SNS를 강타했다. 올해의 아카데미가 더욱 거센 비판에 직면한 이유는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수많은 유색인종 출신의 영화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록키>의 속편인 <크리드>에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마이클 B. 조던, 강력한 남우조연상 후보로 손꼽히던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의 이드리스 엘바, 쿠엔틴 타란티노가 사랑하는 페르소나 <헤이트풀8>의 새뮤얼 L. 잭슨 등이 그들이다(더욱 자세한 내용은 1040호 해외뉴스 참조). 아카데미 후보작의 다양성 부재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레즈비언 멜로드라마 <캐롤>과 트랜스젠더의 삶을 다룬 <대니쉬 걸>이 작품상, 감독상 후보에 지명되지 못했다는 점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미국의 동성 결혼 합법화가 거대한 이슈였던 지난 2015년의 사회적 분위기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라는 점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오스카는 너무 이성애 중심적이다’(#OscarsSoStraight)라는 해시태그 또한 본격적인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아카데미의 위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다양성 시상자 #이병헌 #프리앙카 초프라

후보자를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지만 그들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안길 시상자들을 다채롭게 선택할 순 있다. 언론과 대중의 집중포화를 받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재빠르게 다양한 인종의 영화인들로 구성된 시상자 명단을 발표했다. 흑인 뮤지션이자 프로듀서 퀸시 존스부터 인도 여배우 프리앙카 초프라,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베니치오 델 토로 등이 시상대에 오를 예정이다. 한국 배우로는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이병헌이 시상자로 나선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5억달러영화들 #박스오피스와 오스카의 밀월

<버드맨>과 <보이후드>, <위플래쉬>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각축전이 펼쳐졌던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생각해보자. 이들 영화는 영미권 매체의 2015년 베스트영화 목록에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는 작품들이었지만 박스오피스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올해의 주요 후보작들은 다르다. 12개 부문 후보에 오른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10개 부문에 오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7개 부문에 지명된 <마션>과 6개 부문에 오른 <스파이 브릿지>의 북미 흥행 성적을 합치면 5억달러에 이른다. <마션>을 제작한 사이먼 킨버그는 올해의 아카데미 시상식이 “할리우드 주류영화를 포용하기 시작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상 예측 최고난이도 #각본상 #각색상 #타란티노가 탈락했다며

각본상, 각색상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부문이다. 작품상에 포함되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수작들이 대거 몰려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각본상 후보를 보자. <스파이 브릿지>의 매트 차먼, 코언 형제와 <인사이드 아웃>의 피트 닥터가 맞붙는다. 이번 시상식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던 <엑스마키나>와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튼>도 후보작이다. 각색상 부문도 만만치 않다. <마션>의 드루 고다드와 <룸>의 원작 작가이기도 한 에마 도노휴, <브루클린>의 닉 혼비와 <빅 쇼트>, 그리고 <캐롤>이 포진해 있다. 시나리오 부문의 경쟁이 더욱 흥미진진해진 건 강력한 수상 후보였던 두 사람이 지명 단계부터 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헤이트풀8>의 쿠엔틴 타란티노와 <스티브 잡스>의 에런 소킨이 그들이다. 오스카의 단골 손님이었던 두 사람을 후보 지명단계에서부터 제치고 최후의 승자가 될 이는 누구일지 주목해보자.

<인사이드 아웃>

#비운의 단골 후보들 #디카프리오는 과연 #리들리 스콧은 과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상식 중 하나라고 해서 아카데미의 선택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수십년 동안 그들은 수많은 실수를 범해왔으니까. 일례로 앨프리드 히치콕, 로버트 알트먼, 스탠리 큐브릭 등 세기의 연출자들은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같은 주옥같은 걸작을 남긴 마틴 스코시즈도 <디파티드>로 2007년에야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이들처럼 아카데미 수상자 프리미엄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유명한, 그럼에도 오스카와 인연이 없었던 영화인들이 올해의 시상식에도 포진해 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마션>의 리들리 스콧,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들이다. <에이리언>(1979)과 <블레이드 러너>(1982)를 간과했던 아카데미는 올해에도 역시 리들리 스콧을 감독상 후보에서 제외하는 우를 범했지만, <마션>이 작품상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선 리들리 스콧 경의 모습을 어쩌면 목격할지도 모르겠다. 한편 강력한 경쟁자가 부재하는 올해의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수상 가능성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가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올해 시상식의 최대 이변으로 점쳐질 정도다. 아카데미 후보작으로 지명되었던 <길버트 그레이프>(1993)와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에서의 디카프리오보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그가 더 뛰어났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로서, 톱스타로서 모든 것을 이뤘지만 오직 오스카 트로피만 갖지 못한 이 남자가 올해의 시상식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타이타닉>(1997)의 명대사, “나는 세상의 왕이다!”를 수상 소감으로 외치면 어떨까. 18년 전, <타이타닉>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며 제임스 카메론이 얄밉게 훔친, 그 대사 말이다.

#아카데미라는 철의 장벽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그동안 넷플릭스, 아마존 등의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들은 자체 제작한 오리지널 TV시리즈로 골든글로브, 에미 등 TV프로그램의 시상 부문을 빠른 속도로 점령해왔다. 하지만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들에게 할리우드의 높은 장벽을 실감하게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와 아마존은 각각 장편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감독 캐리 후쿠나가)과 <시라크>(감독 스파이크 리)를 야심차게 제작해 극장에 내걸었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경우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은 작품상, 감독상, 연기상 등 주요 부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니나 시몬: 영혼의 노래>와 <윈터 온 파이어: 우크라이나의 자유 투쟁>이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에 지명됐을 뿐이다. 이로써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의 아카데미 공습은 내년을 기약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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