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히티(Tahiti)는?
정식 명칭 /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본 섬인 타히티로 통용됨) 수도 / 파페에테(Papeete) 사용 언어 / 공용어는 타히티어와 프랑스어. 호텔, 레스토랑, 관광지 등에서는 영어 통용. 시차 / 한국시간보다 19시간 늦음(타히티시간=한국시간+5시간-1일). 통화 / 프렌치 퍼시픽 프랑(CFP, XFP). 유로로 환전해 현지에 도착한 뒤 공항이나 리조트에서 현지 화폐인 퍼시픽 프랑으로 환전하면 된다. 리조트 안에서는 신용카드나 유로화로 통용. 항공편 / 우리나라에서 타히티까지 직항편이 없다. 일본 도쿄를 경유하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며, 비행시간은 도쿄에서부터 1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프롤로그
“타히티는 왜?” 타히티에 출장 간다고 하니 회사 동료, 친구,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물어보자. 타히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버킷리스트의 단골 메뉴이자 신혼여행지인 보라보라 섬? 타히티와 보라보라는 각기 다른 섬이지만 두 섬 모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하니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타히티의 여인들> <아레아레아>(기쁨) 등 많은 명작을 그린 고갱에게 영감을 준 섬으로도 유명하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할리우드 멜로영화 <러브 어페어>(감독 글렌 고든 캐런, 1994)에서 주인공 워런 비티와 아네트 베닝이 가까워진 모레아 섬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커플 테라피: 대화가 필요해>(2009)에서는 위기의 부부 네쌍이 보라보라 섬에서 금실을 회복했을 정도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사랑이 꽃피는 묘약을 가진 게 분명하다.
타히티는 남태평양에 위치해 있다. 남반구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남미 방향으로 이동하면 보인다. 그곳에 타히티, 보라보라, 모레아를 포함한 118개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으며, 이들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라고 부른다. 지도로 보면 한국에서 거리가 만만치 않은 듯하지만, 일본에서 한번만 갈아타면 되니 그리 먼 것도 아니다. 어쨌거나 타히티에 간 건 제13회 오세아니아다큐멘터리영화제(이하 피포(FIFO,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OCUMENTAIRE OCEANIEN))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매년 오세아니아 지역에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가 이곳에 모이는 까닭에 피포가 이 동네에선 가장 큰 영화제라고 한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타히티의 파아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공항 건물에 들어서자 한 무리의 전통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흥겨운 노래를 불러주었다. 공항에 마중 나왔던 영화제 스탭이 색색의 꽃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다. 낭만적인 환대를 받자 흥이 절로 났다. ‘이아 오라 나’ (Ia Ora na, 안녕), 타히티!
피포만의 전통을 만나다
모레아 섬 (Mo’orea) 투어
개막식이 이틀이나 남았는데 영화제 일정은 이미 시작됐다. 1월31일 일요일, 피포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 심사위원장인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을 포함한 경쟁부문 심사위원 7명, 경쟁부문에 초청된 감독, 프로듀서, 피포 주요 스탭들과 함께 모레아 섬으로 소풍을 갔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대로 모레아 섬은 <러브 어페어>의 배경이 된 섬이다.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만난 마이크 갬브릴(워런 비티)과 테리 매케이(아네트 베닝)의 원래 목적지는 호주다. 하지만 비행기는 엔진이 고장나는 바람에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쿡아일랜드에 불시착한다. 그곳에서 마이크는 숙모가 있는 타히티로, 테리는 하와이로 가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테리는 하와이행 배 시간이 맞지 않아 마이크와 함께 타히티로 간다. 타히티에서 두 사람이 배를 타고 간 곳이 바로 모레아 섬이다.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에서 배로 50분밖에 걸리지 않는 모레아 섬은 영화에서 소개된 대로 무척 아름다웠다. 보라보라에 비하면 한국 사람에게 아직 덜 알려져 있지만,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모레아는 보라보라 못지않게 진주 같은 곳이라고 한다. 명성대로 육지는 숲이 울창한 산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다는 에메랄드빛을 반짝반짝 냈다. 상어, 가오리가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만큼 바다 또한 투명했다. 보트를 타고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라군에 당도해 사람들과 함께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수심이 성인 남자의 허리밖에 되지 않아 수영을 못하더라도 충분히 라군을 즐길 수 있었다(상어와 가오리가 해치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자기소개를 차례로 하고 나니 사람들과 금세 친해졌다.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은 “영화제가 시작되면 각자 일정이 바빠서 친해질 시간이 없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마련한 소풍으로, 피포만의 전통”이라고 자랑했다. 이날 알게 된 사람들 덕분에 영화제 기간 동안 취재하는 데 꽤 수월했다. 영화제 운영 시스템을 먼저 파악해 짜인 일정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칸이나 베를린 같은 큰 영화제와 달리 이곳은 사람과 먼저 친해지면 편하다. 영화가 어땠냐고 서로 물어봐주고, 점심을 함께 먹고, 매일 밤 열리는 와인 파티에 나가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관객과의 영상 인터뷰
제13회 피포 개막
2월2일 아침 8시. 시차 적응을 못해 밤새 잠을 설친 탓에 졸린 눈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메종 드 라 컬처로 향했다. 상영관 두개로 이루어진 이곳은 이른 아침부터 개막식 준비로 시끌벅적했다. 폴리네시아 원주민 의상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은 북을 둥둥 울렸고, 젊은 마오리족은 전통 춤 하카를 선보이며 관객을 열렬히 환영했다. 밤에 진행되는 보통 영화제의 개막식과 달리 피포의 개막식은 하루의 시작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레드 카펫 행사가 없는 대신 형형색색의 꽃무늬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 영화제 주제곡을 합창했다. “피포~ 피포~ 피포~ 피~ 포.” 반복되는 가사 때문에 하루 종일 귀에 울릴 만큼 중독성 있는 곡이었다. 소박하고 귀여운 개막식이라고나 할까.
개막식 행사가 그랬듯이 피포는 13년 동안 이어져온 영화제 전통을 고집 있게 지켜오고 있는 영화제다. 서른명이 넘는 피포 스탭들은 피포를 찾은 관객을 세심하게 배려했다. 영화제가 열리는 타히티의 수도 파페에테 구경을 하다가 15분 늦게 극장에 도착한 적이 있다. 상영관을 지키고 있던 자원 활동가가 “늦었는데 영화 볼 수 있냐고? 물론이지. 그런데 상영 도중에 문을 열면 관객의 감상에 방해가 될 거야. 그러니 상영관 뒤에 있는 강의실에도 영화를 동시에 틀고 있으니 거기 가서 보지 않을래?”라고 안내해주었다.
피포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벤트도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뒤 자원 활동가가 한 관객을 골라 아이패드 영상 인터뷰를 요청한다. 관객은 아이패드에 연결된 수화기를 들고 영화가 어땠는지 말하면 된다. 친구나 가족과 전화 통화하듯이 말이다. 기자 역시 자원 활동가에게 붙잡혀 <넥스트 골 윈즈>(감독 마이크 브렛•스티브 재미슨, 2014)의 감상 소감을 말해야 했다. 메종 드 라 컬처를 든든하게 지키는 큰 나무 아래에서 관객과 감독이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인기 만점이었다. 감독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몰려든 관객 덕분에 빈 의자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쓸지 몰라 고민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3분짜리 단편영화의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대회였다. 이 밖에도 사진을 촬영하면 피포 포스터와 합성해 인화해주는 부스는 줄을 서야 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드론 촬영 설명회의 단골손님이었다. 영화제를 쭉 둘러보니 영화 상영부터 부대 행사까지 모든 프로그램의 중심은 첫째도 관객, 둘째도 관객, 셋째도 관객이었다.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경쟁부문 상영
경쟁부문에 상영된 다큐멘터리 11편의 완성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았다. 호주(3편), 뉴질랜드(3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2편, 이중 한편인 <튜파이아>는 뉴질랜드와 공동 제작), 뉴칼레도니아(1편), 하와이(1편), 영국(1편) 등 오세아니아 여러 지역에서 온 작품들은 현재 이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축소판이었다. <힙합어르신, 라스베이거스에 가다>(2014)는 평균 연령대가 90대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힙합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낯선 힙합 리듬에 맞춰 인공관절을 꺾는 걸 보면서 도전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주인공인 27명의 할머니, 할아버지의 캐릭터가 개성 있고, 서사가 단순해 관객 반응이 좋았다. 축구 팬으로서 앞에서 짧게 언급했던 <넥스트 골 윈즈>도 재미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최하위권에 있는 미국령 사모아 축구대표팀의 월드컵 지역 예선 1승 도전기를 그린 작품이다. <평화의 대가>(감독 킴 웨비, 2015)는 뉴질랜드 정부를 상대로 7년간의 투쟁을 벌인 마오리족 활동가인 테임의 사연을 그린 작품이다. 뉴질랜드 경찰이 마오리족 공동체 문화를 문제 삼아 테임을 테러리스트로 탄압했다. 테임은 “마오리족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정부에 위협을 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나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 카메라는 정부를 상대로 한 테임의 싸움을 7년 동안 성실하게 따라다닌다. <평화의 대가>가 뉴질랜드의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라면 <더 그라운드 위 원>(감독 크리스토퍼 프라이어, 2015)은 뉴질랜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 있는 럭비팀을 그린 사적 다큐멘터리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작품은 <넥스트 골 윈즈>처럼 축구팀의 도전기를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다. 럭비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젖소를 키우고, 술을 마시고, 성인식을 치르는 등 럭비팀 구성원의 일상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낸다. 이 밖에도 <프리즌 송>(감독 조슈아 길버트, 2015)은 호주 베리마 지역의 한 감옥이 배경이다. 수감자의 80%가 원주민인 이곳에서 수감자들은 자신의 사연을 직접 노래로 부른다. 영화의 소재나 주제에 어울리는 형식을 고민한 작품이 많았다는 점에서, 상영작 모두 한국 관객을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놓칠 수 없는, 끝에서 끝까지의 타히티
타히티 섬 일주
출장 마지막 날. 거금을 들여 현지 택시기사를 일일 가이드로 고용했다. 여행사가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까 고민하다가 타히티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 궁금해 여행 방식을 바꿨다. 여행을 함께하기로 한 택시기사는 에이미. 타히티에서 나고 자란 중국계 아저씨다. 그에게 주문한 건 두 가지다. 파페에테에서 출발해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타히티이티(Tahiti iti)까지 간 뒤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타히티 섬을 한 바퀴 돌 것, 현지 사람들이 주말에 가족과 함께 놀러가는 장소를 소개해줄 것. 타히티 섬은 표주박 모양인데 북쪽의 큰 섬을 타히티누이(Nui는 크다는 뜻이다), 작은 섬을 타히티이티(iti는 작다는 뜻이다)라 부른다. 두 섬은 표주박의 잘록한 부분에 해당하는 타라바오 동네에서 좌우로 나뉜다. 어쨌거나 택시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달리는 내내 도로의 왼편에는 높은 산들이, 오른편에는 에메랄드빛의 라군이 펼쳐졌다. 어느 한 군데 빼놓을 수 없지만 서핑을 좋아한다면 타히티이티 남쪽에 있는 테아후푸를 추천한다. 파도가 세고 빨라서 세계 서핑 대회가 많이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타히티누이와 타히티이티가 이어진 모습을 보고 싶다면 테아후푸 근처에 있는 타라바오 고원을 오르면 된다. 수백 마리의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고원 꼭대기에 오르면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두개의 타히티 섬이 연결된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타히티누이 동쪽 해변가에 있는 아라호호 바람구멍. 절벽 아래에 웅장한 바람 소리와 함께 바닷물을 내뿜는 바위구멍이다. 화산폭발로 생긴 검은 모래 해변이 절벽 아래에 있어 현지인들이 나들이 장소로 즐겨찾는 곳이라고 한다.
에필로그
하이킹한 뒤 계곡 구경, 보라보라, 마우피티 섬 탐방, 테아후푸에서 서핑 강습 등등. 시간이 좀더 있었더라면 해보고 싶은 것들을 쭉 나열해놓고 나니 무척 아쉽다. 아, 다음에는 6월과 10월 사이에 타히티를 찾아 고래 구경을 하고 싶다.
오세아니아 사람들을 영화로 하나로
왈레스 코트라 피포 집행위원장
<프랑스 텔레비전>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지역 감독이기도 한 왈레스 코트라 집행위원장은 지난 13년 동안 피포를 이끌어왔다. 그가 영화제를 찾은 관객과 손님을 각별하게 챙긴 덕분에 피포는 오세아니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시상식이 열린 2월5일 오후, 그를 만나 올해 영화제가 어땠는지부터 물었다. “폐막까지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유료 티켓 관객수가 3만5천명이 넘었다. 기분 좋다. (웃음)”
-영화제가 올해로 13회째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주력했던 건 무엇인가.
=비단 올해만의 컨셉은 아니다. 피포는 남태평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남태평양 지역은 섬이 많아서 다른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묶을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피포였다.
-13년 전, 피포를 처음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당시 지역 방송국인 <프랑스 텔레비전>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화를 만드는 친구와 함께 피포를 만들었다.
-왜 다큐멘터리영화제였나.
=영화를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까. 반면 다큐멘터리는 영화에 비하면 제작 비용이 적다. 오세아니아 지역은 텔레비전 산업 규모가 작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다큐멘터리가 이 지역에 적합했다.
-영화제를 운영하면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오세아니아 지역은 섬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동 수단이 비행기라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또, 피포 상영작이 인터넷을 통해 지역 사람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길 원하는데 아직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나.
=물론이다.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정부를 포함한 타히티관광청, 에어 타히티누이 등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혹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알고 있나.
=아주 오래전에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피포를 찾은 적이 있다.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의 위기와 관련한 소식에 대해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다른 영화제들이 부러워하는, 오랜 시간 힘들게 이뤄온 역사를 왜 그리 쉽게 무너트리려 하는지, 많이 걱정된다.
-앞으로 피포의 목표는 무엇인가.
=늘 그래왔듯이 피포를 통해 오세아니아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됐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 늙으면 노인이 된다
알렉스 리, 관객상 수상작 <힙합어르신, 라스베이거스에 가다> 프로듀서
-노인들이 힙합에 도전하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다. 소재의 어떤 면이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적합하다고 생각했나.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노인 이야기는 어느 곳이나 똑같지 않나. 그들은 항상 자녀나 손주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만 아무도 오지 않으면 외로운 데다가 대화 상대는 없고. 그렇다고 노인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건 아니잖나. 노인 이야기이지만 우리 역시 늙으면 그들이 된다.
-촬영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건강 문제가 걱정됐다. 영화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그들이 힙합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필요한 비용 문제가 있었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아시안 디아스포라>(가제)라는 프로젝트다. 세계 각국의 아시아 커뮤니티에 관심이 많다. 가령,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궁금하다. 최근에 지켜보고 있는 문제는 고기잡이배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다.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를 2, 3년 동안 배에서만 머물게 하며 일을 시킨다. 휴식도, 물도, 식량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 빠트려 죽인다. 현대판 노예이야기인데 잔인하지 않나.
소재에 대한 진실한 접근이 중요하다
심사위원장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 인터뷰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인 압데라만 시사코 감독이 맡았다. 그가 연출했던 <팀북투>(2014)도 개막식 하루 전 특별상영됐다. <팀북투>는 말리에 위치한 팀북투라는 동네에서 한 가족의 가장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2014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된 바 있다. 개막식이 열리는 2월2일 아침, 호텔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며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심사위원장을 맡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피포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다. 오세아니아 지역의 현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영화제라는 얘길 듣고, 어떤 영화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니 맡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전에도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나.
=없다. 심사위원으로 영화제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항상 영화를 만들기만 해서 다른 사람이 만든 영화를 보고 어떤 작품인지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물론 어깨도 무겁지만 말이다.
-어제 당신의 영화 <팀북투>도 특별상영됐다.
=영화를 어떻게 봤나.
-이슬람 강경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팀북투라는 지역이 현실과 어울리지 않게 아름답게 묘사돼 슬펐다. 개인의 자유가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이 충격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저항하는 마지막 장면은 응원해주고 싶었다.
=맞다. 그런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만든 영화다.
-촬영은 팀북투에서 진행했나.
=팀북투는 위험한 곳이라 다른 곳에서 찍어야 했다. 그럼에도 군대의 경호를 받았다. 경찰 말고 군대. (웃음) 촬영은 6주에 걸쳐 진행됐지만 완성할 때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심사할 때도 <팀북투> 같은 영화에 힘을 실어줄 생각인가.
=하하. 소재를 진실되게 다루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아직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라 자세하게 얘기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이 배경인 이야기다. 그래서 3월에 중국에 시나리오를 쓰러갈 계획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투자자들과 미팅 약속이 있다. 내년 촬영이 목표다.
(취재지원) 프랑스 문화원 http://www.institutfrancai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