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2016-03-17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찾은 다카라다 아키라의 60년 배우 인생을 엿보다

<고지라>로 유명한 배우 다카라다 아키라가 지난 2월20~20일 한국영상자료원을 찾아 관객과 만났다.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2015년 12월20일~2016년 3월6일)(주최 한국영상자료원,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재)영화의전당, 일본국제교류기금)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는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지라> 상영과 함께 국내 최초로 <세계대전쟁>(1961)이 상영되었다. 또 그의 작품 활동의 또 하나의 축인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딸, 아내, 엄마>(1959)와 <방랑기>(1962) 상영과 GV도 마련되었다. 이틀 내내 지치지 않고 밝은 모습으로 관객의 의견을 일일이 경청하고, 팬서비스를 아끼지 않은 그에게 도호 스튜디오 활동 시절의 회고담과 최근 근황에 대해 들어보았다.

1997년 12월23일 63살의 다카라다 아키라는 협심증으로 수술을 받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가 제일 먼저 한 말이 “미후네 도시로가 죽었으니 도호 스튜디오에 연락하라”였다고 한다. 사경을 헤매던 다카라다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말은, 놀랍게도 사실이 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페르소나였던 미후네 도시로가 12월24일 사망했던 것. 두 배우 모두 만주에서 태어났고, 이후 일본으로 건너와 도호 스튜디오에 입사했으며, 도호를 비롯해 도에이, 신도호, 쇼치쿠, 다이에이 등 메이저 영화사가 활발히 활동하던 1950년대 중반에 왕성한 활동을 펼치던 일본 영화계의 국민배우였다. 다카하라의 선배 배우였던 미후네 도시로가 <라쇼몽>(1950), <7인의 사무라이>(1954), <요짐보>(1961) 등 구로사와 영화에 거듭 출연하며 일본 고전영화를 대표하는 ‘사무라이’ 캐릭터로 강하게 각인되었다면, 다카라다는 혼다 이시로 감독의 <고지라>(1954)에서 도쿄를 파괴하는 고지라를 저지하려는 젊고 정의로운 과학자로 출연해 스타덤에 오른다. CG 기술이 전무하던 당시 수작업으로 만든 괴수물인 <고지라>는 핵 폐기라는 진지한 주제의식과 결부되며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후 특촬물의 모범을 제시한 기념비적 작품이 됐다. 당시 일본 인구가 8800만명이었는데 그중 관람객이 961만명에 달했다. 전체 인구 중 11%가 이 영화를 보았을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다카라다는 <고지라 킹 오브 더 몬스터>(1956), <고지라 괴수의 왕>(1956), <고지라7: 고지라 대 몬스터 제로>(1965) 등 여섯편의 <고지라> 시리즈를 함께하면서 고지라와 함께 두각을 나타내며 <고지라> 시리즈를 대표하는 배우로 남았다.

1934년생인 다카라다는 1954년 ‘6기 도호 뉴 페이스’로 선발되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182cm의 큰 키에 이국적인 분위기로 또래 청춘 배우들과 차별화되었던 그는 1년 만에 세 작품에 연거푸 출연할 정도로 촉망받는 도호의 신예였다. 이후 연기생활 5년 만에 다카라다의 연기 영역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아이누의 휘파람>(1959)에 출연 요청을 받게 된 일이었다. 당시 나루세 감독의 작품은 실력 있는 배우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장으로, 배우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딸, 아내, 엄마>, <밤의 흐름>(1959), <여자의 자리>(1962), <방랑기>, <여자의 역사>(1963)로 5년간 6편의 나루세 감독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 그는 나루세 사단으로 각광받았다. 특히 <딸, 아내, 엄마>에서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부양 의무에서 벗어난, 젊고 자기주장이 강한 신세대 아들로 출연해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각광받았다. 드라마에서의 멋있는 모습뿐만 아니라 이후 이타미 주조 감독의 <아게망>(1990), <민보의 여자>(1992), <마루타이의 여자>(1997) 등에서 코믹한 이미지로도 활약하며 풍성한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던 그는, 이후 스크린을 떠나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니여 총을 잡아라>(1964)를 시작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을 거치며 뮤지컬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특히 2012년부터는 ‘다카라다 기획’을 운영하며 직접 제작, 연출, 출연을 겸한 뮤지컬 <판타스틱>을 시작으로 일본 뮤지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그는 반전 반핵에 입각하여 일본 정계를 비판하는 강경한 정치적 발언으로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NHK>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발언으로 사회자를 곤란에 빠뜨렸으며, 얼마 전 국회에서 반전 반핵의 테마를 가진 <고지라>를 상영하고 싶다며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일본영화계의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통과한 그는, 함께 활동하던 감독과 배우가 떠난 그 자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산증인이다. “아직도 가슴엔 현장에서 들었던 ‘레디! 액션! 컷!’ 소리가 남아 있다”는 그는 “한국에서 <고지라>가 만들어진다면 아주 작은 노인 역할로라도 꼭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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