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어디까지
2016-03-25
글 : 조종국
사진 : 백종헌
정관 개정 방향의 핵심과 신규 자문위원 효력 다툼
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부산시에 거듭 촉구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3월2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에 최후통첩을 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 약속을 이행하고,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정관을 개정하며, 신규 위촉 자문위원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 부산국제영화제 참가감독 146명은 3월24일 오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부산시가 이 요구들에 대해 의미 있는 조치를 내놓지 않으면 영화인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부산지검 형사2부(유병두 부장검사)는 3월24일 오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소환해 조사했다. 조종국 편집위원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태를 정리했다. 영화계 각 단체장, 박찬욱, 이준익 감독,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등 주요 영화인들에게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씨네21>은 1049호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영화인들의 지지 캠페인을 매주 실을 예정이다.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2월18일 서병수 부산시장(이하 서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했지만, 이후 도리어 불길은 더 크게 번졌다. 서 시장이 물러난다고 발표만 해놓고 바로 일주일 후에 열린 정기총회에서 정관 개정 등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이용관 집행위원장(이하 이 위원장)의 연임 승인안도 올리지 않아 2월26일로 임기가 끝난 이 위원장의 퇴임이 현실화되고 만 것이다.

부산시의 편 가르기와 지역감정 조장

영화인들은 이 일이 단순히 이 위원장의 거취 문제가 아니며, 부산영화제에 대한 부산시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반드시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 자문위원 등 총회원 106명은 지난 2월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총회 소집요구서를 냈다.

서 시장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고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거창하게 발표는 했지만, 정관을 바꾸지 않고는 물러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이라는 정관을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서 시장은 정관 개정 일정에 대해서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하면 된다며 짐짓 미루면서, 지난 2월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정관 개정안도, 집행위원회가 요구한 이 위원장 승인안도 올리지 않았다.

이 위원장의 연임 요구가 빗발치고, 해외 영화인들까지 가세하는 등 여론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서 시장 자신이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2월26일 임기가 만료되는 이 위원장의 퇴임도 기정사실화하는 잔꾀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위원장의 재위촉 거부는 부산시가 이미 공공연히 밝혀왔기 때문에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지만, 서 시장 스스로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나겠다고 천명해놓고 정관을 개정하는 등 이를 실행하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련의 흐름이 불리한 쪽으로 기울자 부산시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나는 편 가르기와 지역감정 조장이고, 또 하나는 신규 위촉 자문위원의 자격과 효력에 대한 시비였다. 부산시의 공식 간행물을 통해서 ‘서울의 일부 영화인들이 부산영화제를 독점해서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흑색선전을 하는가 하면, 신규 위촉한 자문위원을 두고 서 시장이 직접 ‘영화제 발전에 기여한 바도 없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일부 서울 영화인들이 자문위원을 대거 위촉해 이 위원장을 집행위원장으로 재위촉하고, 정관을 개정해 부산영화제를 사유화하려 하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지난 3월8일에는 조직위원장(서 시장)이 뜬금없이 임원회를 열어, 부산시가 제시한 일방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신규 위촉한 자문위원을 해촉’하고, ‘2월25일 소집요구한 임시총회 연기’하고, ‘다양한 의견수렴을 위해 라운드테이블을 구성·운영’하자는 등의 결의안을 내는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임원회는 부산영화제 초창기 총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았던 1998년 이전에 다섯번 열린 적이 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단 한번도 임원회를 별도로 열지 않고 총회에서 모든 사안을 처리해왔다. 이번에 열린 임원회는 무려 18년 만에 열린 대단히 이례적인 임원회였다.

부산시는 본질을 호도하는 이런 다각적인 여론전을 펴는 한편, 마치 정관 개정을 위해 적극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부산영화제쪽에서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약자 코스프레’까지 연출하고 있다. 하나같이 ‘개정’하자고 떠들지만 내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정관 개정 방향의 쟁점을 살펴보면 다수의 부산영화제 총회원과 부산시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행 정관에는 조직위원장은 부산광역시장, 부조직위원장은 부산광역시 영상문화산업 업무소관 부시장 외 부산광역시 교육감, 부산광역시의회 영상문화산업담당 국장,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한국예총 부산연합회장, 민예총 부산지회장,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 등을 당연직 임원(조직위원)으로 정해두고, 당연직 이외 임원과 감사는 총회에서 선출한다고 되어 있다. 어떤 선출 과정도 없이 부산시장은 당연히 조직위원장이고, 부시장과 국장도 당연직 임원이 되는 것이다.

지난 2월25일 정기총회에서 회원 106명이 연명으로 제출한 임시총회 소집 목적으로 제시한 정관 개정 방향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명칭을 ‘사단법인 부산국제영화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조직위원회’라는 명칭이 통상 어떤 행사를 위해 여러 기관이나 관련자들이 모인 ‘관제’조직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니, 영화제를 운영하는 조직의 이름도 이참에 민간 자율법인의 정체성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바꾸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직위원과 조직위원장, 임원회의 명칭을 이사와 이사장, 이사회로 각각 변경하고, 부조직위원장, 당연직 임원을 폐지하고, 이사장을 포함한 임원을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 집행위원장이 대외 교류와 협력, 해외 네트워크 강화에 주력할 수 있도록 영화제 운영 전반의 집행력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상임임원으로 사무총장제를 도입하고, 집행위원회의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상임집행위원회의 기능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 등이 개정 방향의 요지다.

반면 부산시가 생각하는 정관 개정의 방향은 영 딴판이다. 부산시가 비공식으로 내놓은 안은, 부산시장이 당연직 조직위원장이 되는 지금의 정관을 시장이 조직위원장을 임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거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임원회 또는 총회에서 2~3명을 추천하면 시장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하거나, 별도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추천하는 사람을 시장이 임명하는 안도 거론한다. 또 당연직 임원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원회 개최를 의무화하는 조항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원회를 굳이 되살리려는 것은 당연직 임원과 부산시의 입장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현재 임원회가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임집행위원회를 폐지하고, 현재 총회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조직위원회 자문위원과 집행위원회 자문위원을 총회 구성원에서 빼고, 일반 회원의 가입 요건도 집행위원장 승인에서 총회 승인으로 바꾸자고 한다. 또 집행위원장이 위촉하게 되어 있는 자문위원도 수를 제한하고, 조직위원회 자문위원은 조직위원장이 위촉하도록 해 집행위원장의 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정관보다도 부산시가 더 많이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개악’하자는 주장이다.

또 하나 뜨거운 쟁점은, 부산시가 3월15일 부산지방법원에 신규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낸 것이다. 부산시의 주장은, 집행위원장이 68명이나 되는 자문위원을 조직위원장(시장)의 승인이나 총회 의결도 없이 위촉한 것은, 절차에 하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일이라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부산영화제쪽의 입장은 단호하다. ‘지난 20년간 자문위원 위촉은 정관에서 정한 바에 따라 집행위원장의 권한과 책임 아래 이루어졌고, 자문위원 위촉에 있어 조직위원장의 결재나 지시를 받은 바 없고, 정관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위촉’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설명한다. 자문위원 위촉은 조직위원장이나 총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고 ‘정관에 명시된 집행위원장의 권한’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 2월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안건 의결 전에 정식 보고까지 했는데 부산시가 이를 뒤늦게 문제삼는 것은 다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관 개정 가능할까

한편, 지난 21일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부산시를 성토하고, ‘서병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 실행과 부산국제영화제의 자율성,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정관 개정에 전향적 자세로 나설 것’, ‘신규 위촉 자문위원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철회 및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 중단’, ‘집행위원장 사퇴 종용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부산시가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모든 영화인들은 단체별로 총의를 거쳐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참석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강력히 결의할 것이다.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부산의 레드카펫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텅 비게 될 것이며, 부산을 찾는 전국 관객의 발걸음 또한 뚝 끊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날, 부산지방법원 309호 법정에서는 부산시가 낸 ‘자문위원위촉 효력정지가처분신청’에 대한 심리가 열렸다. 만약 법원이 부산시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다면, 총회원 106명이 낸 소집요구에 따른 임시총회도 당장 열 수 없다. 가처분이 아닌 자문위원 위촉의 효력 여부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몇달은 물론 몇년 동안 지리한 법정 공방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법원이 가처분신청이 이유 없다는 결정을 내리면, 106명의 총회원들이 직접 임시총회를 열어 정관 개정에 나설 수도 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이다. 20년 공든 탑이 무너질 위기다. 복원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소한 무너지지는 않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이미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부산시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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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사태 타임라인

2014년 9월 서병수 부산시장,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 상영 철회 요청 영화제, 요청 거부 2015년 1월 부산시, 이용관 집행위원장 사퇴 권고 2월 부산시, 영화제 인적 쇄신 요구 4월 영진위, 영화제 지원 예산 40% 삭감 7월 강수연 공동집행위원장 선출 9월 감사원, 부산시에 정부 지원금 실태 감사 결과 통보 12월 부산시, 감사원 권고로 이용관 집행위원장 검찰 고발 2016년 2월16일 부산시, 이용관 집행위원장 재신임 불가 입장, 사실상 해촉 2월19일 서병수 부산시장, 조직위원장 사퇴 기자회견 2월25일 이용관 집행위원장 재신임 논의 없이 영화제 정기총회 개최 신규 자문위원 등 영화계, 정관 개정을 위한 임시총회 개최 요구 3월2일 서병수 부산시장, 신규 자문위원 자격 인정 거부 기자회견 3월15일 부산지법, 신규 자문위원에게 효력 정지 가처분 심문기일통지서 발송 3월21일 부산국제영화제 지키기 범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 부산시에 영화제 보이콧 최후통첩 3월24일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검찰 출석 부산국제영화제 참가 146인 지지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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