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부산영화제가 지금껏 보여준 가치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2016-03-25
글 : 김성훈
사진 : 씨네21 사진팀
영화인들의 말·말·말

최후통첩이다.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지난 3월2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시에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획득을 촉구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의 조직위원장 사퇴 약속을 이행하고, 부산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정관을 개정하며, 신규 위촉 자문위원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부산시가 영화계의 요구 조건에 대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영화계는 “올해 영화제를 보이콧하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씨네21>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영화인들의 생각을 한데 모았다.

박찬욱

박찬욱 감독

“이제 부산영화제와의 인연은 영영 끝인 건가. 더이상 부산으로 갈 순 없는 건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니 부산영화제에서 있었던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해외 영화인들을 만난 뒤 헤어질 때 ‘조만간 부산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인사했는데, 그런 인사를 다시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또 나의 조감독들을 포함한 후배 영화인들이, 선배들이 겪었던 부산영화제를 경험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안타깝다. 사태가 잘 마무리되면 영화제가 예년처럼 운영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으로선 걱정스러운 마음뿐이다.”

이준익

이준익 감독

“부산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를 위해 지금까지 많은 영화인과 함께 고민하고 움직였다. 그러나 막장으로 치닫는 사태를 지켜보니 더이상 할 말이 없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은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영화계가 부산시에 요구 조건을 전달한 현재, 한국영화제작가협회에서 내놓을 수 있는 얘기는 더이상 없다. 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는 게 중요한데, 정치인들의 정치적 논리에 길들이기 당하는 순간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진 모르겠지만, 영화인들은 20년 전 부산영화제를 처음 만들 때 마음가짐으로 현재 상황을 대처해야 할 것 같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성을 존중할 수 있는 초심 말이다. 그런 원칙을 어기는 순간 영화제가 사라질 수 있으니까. 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인, 관객 모두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예년만큼 화려한 규모는 아니더라도 부산영화제가 지금껏 보여준 가치들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춘연

이춘연

씨네2000 대표, 영화인회의 이사장,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고문

“그동안 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능하면 영화제와 부산시가 사태를 해결해 영화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그래서 영화계 각 단체, 개인들이 저마다 생각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목소리를 내며 의견을 건의해왔다. 부산시청에서 열린 지난 총회에서 한 원로가 왜 칸이나 베를린에서 부산영화제 사태를 언급하고 있냐고 말씀하셨는데, 부산영화제는 향토영화제가 아니라 국제영화제다. 그동안 아시아 각국의 많은 영화제들이 아시아 넘버원인 부산을 넘어서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영화인들은 그런 부산영화제를 버리겠다는 게 아니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영화계 각 단체 회원들을 설득할 명분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읍소하는 것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부산 시민과 영화인들의 편 가르기를 계속하려 한다면 다음엔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이다.”

이준동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 부산국제영화제 자문위원

“영화제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훼손시키고 있는 이 사태가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부산영화제? 부산 시민? 행정기관으로서의 부산시? 아니면 한국영화계? 서병수 부산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시키는 것 외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자해 행위다. 자해 행위는 미친 짓이다. 당장 그만둬야 한다. 하지만 지난 1년 반 동안 이 사태가 이어진 걸 보면 서병수 부산시장이 절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영화계뿐만 아니라 미술계, 연극계를 포함한 문화계 곳곳에서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일 중 하나다. 정치인의 그릇된 정치적 욕망 때문에 영화인들은 영화를 만드는 데 써야 할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영화인들은 정부를 믿고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뒤에서 든든하게 지원해줘야 하는데, 그런 관계여야 할 영화인과 정부가 맞서 싸우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현재로선 부산시장의 정치적 보복을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부산 시민밖에 없다. 그들은 아직까지 부산영화제를 사랑하니까. 부산영화제가 정상화될 때까지 영화제를 사랑하는 부산 시민과 함께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영화제를 시도해보는 것도 지금으로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영재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대표, 부산국제영화제지키기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앞으로 비대위에서 할 일은 없다. 공은 부산시장에게 넘어갔다.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 부산영화제를 좌지우지한다’고 영화인들 핑계를 대는 건 행정기관인 부산시정의 수장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본인의 안을 가지고 얘기해야지. 이제 영화인들이 할 일은 없다. 부산시장이 결정할 때다.”

안영진

안영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최근 몇년 동안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계 전반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부산영화제 사태는 그 정점을 찍은 사건이라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문화 다양성 보장은 훼손되는 게 순식간이다. 그 점에서 서병수 부산시장과 부산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현재 조합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부산영화제가 이렇게 훼손되면 우리가 부산에 갈 필요가 없지 않냐, 영화제가 처음 시작됐을 때 남포동 길바닥에서 맥주를 마시며 한국영화 발전을 논의하던 선배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던 초심으로 돌아가 정부 지원 없이 영화제를 운영할 수도 있지 않냐, 정부가 이 정도로 부산영화제에 개입하면 (영화제를) 그만 끝내야 하는 건 아닌가 등등. 그럼에도 영화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아직 하지 않고 있는 건 그동안 공들여 쌓은 문화적 자산과 아직도 영화제를 사랑하는 부산 시민, 관객 때문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