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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형 아닌 사람이 연기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2016-04-07
글 : 이화정
<아노말리사> 찰리 카우프먼, 듀크 존슨
영화 <아노말리사> 제작 현장에서 찰리 카우프먼, 듀크 존슨(왼쪽부터).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아노말리사>는 원래 찰리 카우프먼이 프란시스 프레골리라는 필명으로 쓰고, 두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으로 기획됐다. 작업은 이미 2005년부터 진행되었는데, 공동연출가인 듀크 존슨의 합류로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구체화됐다. 강연을 위해 신시내티를 찾은 중년 작가 마이클 스톤이 한 여성을 만나 겪는 이상한 밤의 기록으로 <존 말코비치 되기>(1999), <어댑테이션>(2002), <이터널 선샤인>(2004)과 같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접해온 찰리 카우프먼의 시선과 사고 그리고 뛰어난 구현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내용부터 구현, 수위 높은 베드신 묘사까지 어느 하나 ‘상업적’인 것이 없는 이 작품은 수익률을 고려할 때 선뜻 투자하려는 이들이 없는 어려운 프로젝트였다. 지난한 작업에 혀를 내두르며, 애니메이터들이 그만두고 교체되는 등 제작에 난항도 겪었다. 하지만 두 감독은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의 자본 없이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의도를 관철시키려고 킥스타터 펀딩 방식을 도입했고 결국 킥스타터 히스토리에 남을 최고 금액인 40만6237달러를 모아 제작에 착수했다. <시네도키, 뉴욕>(2007) 이후 7년 만에 연출한 찰리 카우프먼과 <아노말리사>에 함께 참여한 공동감독 듀크 존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아노말리사>에도 역시 찰리 카우프먼의 전작 <존 말코비치 되기> <휴먼 네이쳐> <이터널 선샤인>의 특징인 현실과 판타지의 모호한 지점이 표현된다. 마이클이 호텔 지하에서 겪는 판타지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경우 실사보다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이 주는 더 큰 자유로움이 있었을 것 같다.

=찰리 카우프먼_스톱모션애니메이션을 만들기는 했으나 애니메이션으로 국한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은 매우 성숙하면서 동시에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작업하는 내내 실사영화를 찍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사영화를 레퍼런스로 많이 사용했고 촬영방식도 거의 같았다. 조명의 경우 실사영화와 같은 조명을 사용해 최대한 실사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 그래서 <아노말리사>의 인형들은 더 리얼하게 보이는 것 같다.

-원래 연극으로 제작하기 위해 쓴 각본이다. 스톱모션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듀크 존슨_<아노말리사>의 제작을 한 스톱모션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대표가 찰리 카우프먼이 쓴 <아노말리사> 스크립트를 가져왔다. 놀라웠다. 보자마자 찰리에게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기존 스톱모션애니메이션과 달리 어른을 타깃으로 한 작품으로 이 상황과 주제를 풀고자 했다. 찰리의 전작들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 작업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인형들의 이마와 턱의 연결 부분을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오는 표정 변화가 독특하다. 어떤 의도로 만들었나.

=듀크 존슨_전형적인 스톱모션애니메이션영화와 차별화를 주려고 이마와 턱선의 연결 부분을 그대로 두었다. 이렇게 이마와 턱을 분리하면 좀더 절묘하고 작고 섬세한 표현이 가능해진다. 캐릭터들의 감정이 더 잘 드러나 인형이 아니라 사람이 연기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150개의 이마와 150개의 턱들은 감정선을 최대한 넓히기 위한 재료들이었다(<아노말리사>의 인형에는 1261개 얼굴, 1천개가 넘는 의상과 소품이 사용됐다).

-마이클(데이비드 튤리스)과 리사(제니퍼 제이슨 리)의 베드신이 정교하게 묘사된다. 베드신 촬영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고 하는데, 이 장면의 난점은 무엇이었나.

=듀크 존슨_어려운 점이 많았다. 첫 번째 어려움은 이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황홀한 경험을 주는 것이었다. 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정사 장면까지 모두 잘 이어지는 연장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정사 장면을 너무 이질적이지 않게 보이게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인형으로 그런 장면을 연출하게 되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걸 표현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정사 장면에는 대사가 거의 없고 숨소리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모든 움직임을 세세하게 작업해야 했다. 두 번째 어려움은 기술적인 문제였다. 질감, 구조, 이불, 옷 벗기는 장면, 벗은 인형, 벗은 인형이 서로 접촉하는 장면 등 모든 것들이 스톱모션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기에 매우 힘든 작업이다. 예를 들어 두 인형이 접촉하는 장면에서는 세트의 모든 것들을 인형에 맞추어 바꿔야 한다. 계속되는 밀고 당기기 장면들을 스톱모션으로 만들려고 하니 어려웠고 시간도 많이 걸리더라.

-유명 작가 마이클 스톤은 유명세와 지적 교양을 겸비하고 있지만,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꺼려하며 다소 신경질적인 인물이다. 또 가정이 있는데도 하룻밤의 일탈을 시도하는 비도덕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현대인의 소외나 고독을 핑계로. 하지만 씁쓸한 인상도 안겨주는 캐릭터다.

=찰리 카우프먼_오래전에 써서 정확히 어디서 설정을 따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일하기 전 젊은 시절에 서비스업계에서 많은 일을 해봐서 그쪽 분야에 경험이 많았다. 따라서 서비스업 강연과 서비스업종의 베스트셀러 작가 설정을 마이클 캐릭터에 접목시키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국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강연을 위해 묵는 호텔은 그러한 환경을 만들기에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이클은 리사의 목소리만 다르게 인지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한 사람(톰 누난)이 연기하는데, 이렇게 독특한 설정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찰리 카우프먼_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두 같게 들린다는 설정이 상당히 독특해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책에서 ‘프레골리 딜루전’(Fregoli delusion)에 대해 알게 됐는데, 만나는 사람들을 같은 사람으로 인지하는 증상이다. 나는 이것이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공통적인 문제라는 데 공감했다. 또한 영화 속 주인공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 역시 이와 같다면 대단히 흥미 있는 메타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한명이 여러 명의 목소리를 연기하게 했다.

-배우 톰 누난은 <시네도키, 뉴욕> 때도 함께했다.

=찰리 카우프먼_2005년에 이 작품을 희극으로 연출할 때 같은 배우들과 함께 일했다. <시네도키, 뉴욕> 전부터 함께했던 것이다. 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감독 겸 배우, 작가이기도 한데 그가 감독으로 참여한 영화 <왓 해픈드 워즈>(1994) 이후에 서로 알고 지냈다. 톰 누난은 그만의 독특한 억양이 있었고 영화에서 주인공 외에 나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같기 때문에 좀더 쉽게 알 수 있는 목소리로 하고 싶어 캐스팅했다. 키가 2m가 넘고 손도 정말 큰데,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이클이 다른 사람들과는 ‘예외적인’ 여성 리사를 만나고 사랑에 빠졌다 깨어나는 하룻밤을 통해 말하고자 한 사랑의 본질, 특별함은 무엇인가.

=찰리 카우프먼_영화의 내용을 감독의 해석대로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인생을 통해서 작품과 교감하게 되면 이로써 다양한 영화에 대한 해석이 나오게 된다. 그 해석이 맞는지 틀렸는지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는 <이터널 선샤인>이 재개봉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에 관객이 끊임없이 호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찰리 카우프먼_<이터널 선샤인>은 관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영화다. 모든 경험은 한 가지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복합적인 감정들이 다양한 색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이터널 선샤인>도 거짓으로만 느껴지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공식이 아닌 관계에 대한 깊은 해석을 하려고 노력했던 게 통한 것 같다. <아노말리사>가 대중적으로도 사랑받기를 원한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라 픽사 애니메이션처럼 아이와 가족을 위한 영화와 비교할 만큼 흥행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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