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이진욱]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내 인생 그 자체”
2016-04-1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시간이탈자> 이진욱

곰살맞은 사람. 이진욱의 첫인상은 그랬다. 입을 시원스레 벌려 웃으면 덩달아 눈가의 부챗살 주름이 지그시 눌리며 비로소 완성되는 화사한 웃음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런 인상은 그간 극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돼왔다. 데뷔 초, 드라마 <연애시대>(2006)에서 좋아하는 상대에게 가감 없이 웃어 보이던 민현중이라는 남자부터였다. “멀리서 바라보고 주위를 맴돌고 행복을 빌어주고. 난 그런 바보 같은 사랑 안 한다”던 당돌한 청년이 짓는 미소는 쉽게 눈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때론 까탈스럽고 고집스러운 남자(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2>(2012)의 윤석현)였고, 때론 누구에게라도 소개하고 싶은 멋진 젠틀남(<뷰티 인사이드>(2015)의 우진)이었지만 그때마다 한결같았던 건 그의 다감한 웃음이다. 그렇게 이진욱은 로맨스물에서, 가장 로맨틱한 순간에 등장해 장면을 빛내왔다. “대중은 극에서 내가 나오면 어서 빨리 상대와 키스하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라는 이진욱의 너스레는 농담 이상의 사실처럼 굳어진 걸지도 모른다. 이처럼 배우에게 기대하는 선명한 이미지가 있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이진욱 자신이다. “원래 그렇게 밝은 성격이 못 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대화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도 못 된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합리적인 사람이다. 특히 일에 있어서는.” 연기에 도움이 된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나를 필요로 하는 수요가 있어야 배우로 살아갈 수 있다. 대중이 내게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좀더 대중에게 호소력 있고 영화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배우가 된다면 그땐 해보고 싶은 역할을 좀더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지금 중요한 건 “배우로서의 균형잡기”다. <시간이탈자> 역시 그 과정 속에서 선택하고 집중한 작품이다. 그가 맡은 형사 건우는 영화에 흐르는 두개의 시간 중 현재의 시간인 2015년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1983년에 살고 있는 지환(조정석)과 꿈을 통해 이어져 있는 건우는 지환이 사랑하는 여자 윤정(임수정)의 죽음을 막으려 분투한다. 캐릭터상으로 건우는 그리 돋보이는 역은 아닐 수 있다. “건우는 지환의 조력자랄까. 현재에서는 과거 지환이 앞으로 겪을 일들이 이미 기록돼 있다. 지환의 미래를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정보를 수집하고 위험에 처할 지환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건우의 역할이다. 일종의 ‘몸빵’인 셈이다. (웃음) 그게 아쉽진 않다. 건우가 영화에서 해야 할 일이 뭘까를 생각하는 작업이었으니까.”

곽재용 감독의 말에 따르면, “이진욱은 현장에서 모니터 앞으로 오지 않는 배우”다. 자신이 어떻게 찍히느냐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면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현장 전체의 분위기를 느끼고 즐기려는 의도다. 추운 겨울날 비를 맞는 장면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이진욱은 히터 앞으로 달려가기보다는 담요 한장 둘둘 둘러쓰고 스탭들 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쉴 때도 카메라 앞에 서 있는 편이다. “촬영 전 현장에 미리 와서 카메라 앞으로 간다. ‘소품은 이런 게 있구나, 현장 분위기는 이렇구나, 그럼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볼까?’ 하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움직여도 보고. 이런 게 촬영 때 도움이 된다.” 낯선 상황을 무턱대고 거부하기보다는 사전에 파악해두면 두려울 게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로 살아가는 데 이런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정석 형은 부러운 배우다. 재즈의 리듬감을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닌 것처럼 형은 연기의 리듬감을 타고났다. 반면 나는 타고난 재능은 없는 것 같다. 다만 호기심 많고 모험하길 즐기는 성향 덕에 배우로서 좀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지 않나 싶다.” 자신의 감정 상태를 꾸준히 살피려는 것도 그래서다. <표적>(2014)을 함께 촬영한 선배 류승룡의 조언이 컸다. “‘배우가 연기하는 데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있다면 그건 문제다. 슬픔을 표출할 때 자신이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고 있다면 고민이 부족한 것이다’라고 하셨다. 늘 내 상태를 확인해두려 한다.”

30대 중반을 넘긴 이진욱에게 책임감이라는 말의 무게가 크게 자리잡았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들으면 모든 게 내 책임 같다. 말을 내뱉으면 꼭 그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럽고. 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내 인생 그 자체니까. 쉼 없이 달리는 것밖에는 없다.” <시간이탈자>의 개봉 준비와 함께 MBC 드라마 <굿바이 미스터 블랙>(2016)의 촬영에 올인 중이다. “(아버지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려) 복수를 시도하는 남자이지만 결국 그가 알게 되는 건 사랑”이라는 그의 말에 기대본다면, 진중함 속에서도 사랑스러운 이진욱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전진하다보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다른 면면을 보여줄 때와 만나지 않을까. “영드 <셜록>, 미드 <브레이킹 배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류의 작품을 맡으면 정말 잘할 자신 있다. 완전 빙의돼서 할텐데!” 그렇게 이진욱은 또 한번 씨익, 웃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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