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백작, 서사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척추 - <아가씨> 하정우
2016-05-24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딱 케이퍼무비 같았다.” 하정우는 <아가씨>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사건의 설계자로서 백작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가 맡은 백작은 하녀 숙희(김태리)를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에게 보내 그녀의 상속 재산을 가로채려는 계획을 꾸민다. 백작의 계획에서 출발한 사건이 극적이고, 캐릭터가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캐릭터영화 같은 느낌도 받았다”고 한다. 또 “사건이 전개되면서 백작의 행동과 감정이 계속 변화한다는 점에서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마침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 등 두편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박찬욱 감독의 현장에서 무언가를 보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호기심도 작용”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하정우와 박찬욱 감독의 첫 만남이 성사되기까지 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멋진 하루>(2008)의 병운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아가씨>를 촬영하기 전, 하정우가 박찬욱 감독과 함께 나눈 백작에 대한 얘기다. <멋진 하루>의 병운이라면, 옛 여자친구(전도연)가 갑자기 나타나 돈 갚으라고 하자 호스티스부터 대학 시절 승마부 후배, 스키강사 시절 만난 제자까지 가릴 것 없이 찾아가 손을 벌렸던 남자가 아닌가. 제주도 머슴 출신이라는 자신의 정체와 속내를 감춘 채 일본 귀족으로 변신해 아가씨를 속여야 하는 백작에게 병운의 능청스러움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생존 무기다. 또, 일제강점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백작은 전작 <암살>에서 연기한 하와이 피스톨과 닮은 구석도 있다. “그건 하와이 피스톨뿐만이 아닌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과 뿌리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친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온 입양인 밥(<국가대표>(2008))이나 당장의 생활비도 없는 처지지만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으려는 호스트 재현(<비스티 보이즈>(2007)) 같은 인물과도 비슷하다. 그런 캐릭터가 매력적인 것 같다.”

백작은 숙희, 히데코, 아가씨의 이모부이자 후견인인 코우즈키(조진웅) 등 <아가씨>의 모든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유일한 남자다. 백작이 히데코에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코우즈키와의 관계를 공들여 쌓아놓은 덕분이고, 신분이 달라 만날 일이 없는 히데코와 숙희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백작의 계획 덕분이다. 모든 인물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백작이 인물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진심과 거짓을 묘하게 뒤섞어 드러내는 모습이 꽤 아슬아슬하다. 그 점에서 백작은 <아가씨>의 서사를 단단하게 지탱하는 척추이며, 사건을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동력인 데다가 히데코와 숙희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하정우가 <아가씨>로 칸국제영화제를 찾은 건 <용서받지 못한 자>(2005), <숨>(2007), <추격자>(2008), <황해>(2010)에 이어 다섯 번째다. 하정우에게 칸국제영화제 하면 <용서받지 못한 자>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칸 숙박비가 비싼 까닭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니스에서 묵었다. 한국 영화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막차가 끊겨 땀에 밴 턱시도를 입은 채로 윤(종빈) 감독과 함께 버스 정류장에서 밤을 샜다. 둘이서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마틴 스코시즈와 로버트 드니로처럼 좋은 감독, 좋은 배우가 되자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아가씨>가 경쟁부문에 초대받았을 때 그때 생각이 났다. 언젠가는 윤종빈 감독과 함께 경쟁부문에 갈 거다.”

칸 일정이 끝나면 하정우는 당장 김용화 감독의 신작 <신과 함께>에 합류한다. <신과 함께>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강림. 또, 김성훈 감독의 신작 <터널>도 여름 개봉(8월)을 기다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터널에 갇히게 된 평범한 가장을 연기한다. “동네 삼촌이나 형 같은 사람이다. <캐스트 어웨이>(2000)의 톰 행크스처럼 터널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려고 애를 쓰는 남자”라는 게 하정우의 귀띔이다. 감독으로서 세 번째 작품도 구상하고 있다. “미국 LA 코리아타운의 한인회장이 은퇴를 하려고 하와이로 건너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다.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 될 것 같고, 엔딩이 떠오르면 곧바로 시나리오를 쓸 계획이다.”

스타일리스트 이현하 실장·헤어 김태석 부원장·메이크업 조수민 부원장·의상협찬 닐바렛, 마르니by쿤, 지미추, 라르디니, 까르띠에, 돌체엔가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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