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영화人] 계춘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 <계춘할망> 장진 분장감독
2016-06-02
글 : 송경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영화 2015 <계춘할망> 2014 <신의 한 수> 2010 <포화 속으로> 2010 <이끼> 2008 <영화는 영화다> 2005 <연애의 목적> 2004 <내 머리 속의 지우개> 2002 <청풍명월> 1999 <송어> 1997 <패자부활전>

드라마 1994 <폭풍의 계절> 1993 <걸어서 하늘까지> 1992 <여명의 눈동자>

어떤 영화는 배우의 얼굴을 제대로 담아낸 단 한 장면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계춘할망>이 정확히 그렇다. 클리셰 덩어리라 해도 무방한 이 익숙한 신파가 가슴을 후벼파는 건 늙은 해녀의 주름진 눈가에 묻은 세월 덕분이다. 해녀 계춘(윤여정)의 모진 생명력은 세월의 풍파에 서서히 깎여나간다. 하지만 계춘이 감당해야 했던 세월의 무게는 엔딩에 이르러 12년 전 계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기 전까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자연스럽게 세월을 입혀가는 영화다. 배우의 얼굴에 세월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장진 분장 감독의 손끝에 담긴 진심에서 비롯됐다. 오직 윤여정 배우의 분장을 위해 이번 영화에 합류한 그는 배우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교감의 시간을 가졌다. “임팩트 있는 분장은 간단하다. 반면 생활의 시간을 표현해야 할 때는 이야기는 물론 그걸 표현할 배우까지 이해해야 한다.” 캐릭터의 삶을 보조하되 캐릭터보다 앞으로 나와선 안 된다는 철학으로 작업해온 그는 제주 해녀를 표현하기 위해 숱한 사진자료를 찾았다. “네 마음대로 망가트려보라”는 윤여정 배우의 신뢰와 이해를 이끌어내는 시간이야말로 당장의 기교보다 중요한 과정이었다. 배우의 연기보다 앞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깊이를 한층 증폭시키는 해녀 계춘의 얼굴은 그렇게 태어났다.

“<계춘할망>은 내게도 치유의 시간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 영화계로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여유를 안겨줬다.” 장진 분장감독은 1세대 분장감독이자 배우로 활동한 아버지(고 장인한 배우)를 따라 1987년 <우뢰매>로 업계에 첫발을 들였다. 관행이란 미명하에 현장의 부조리한 요구와 맞서길 29년, 문득 지쳐 있는 자신을 마주했고 2014년 <신의 한 수>를 마지막으로 잠시 쉬기로 했다. “이상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고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사실 그만둘 생각으로 인천에 카페를 차렸다. 1년 정도 지난 후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을 때 마침 윤여정 선생님 분장만 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왔다.” 이후 <계춘할망>의 스탭들과 그대로 <인천상륙작전>까지 함께한 장진 분장감독은 현재 중국영화계의 러브콜도 받고 있다. “작품과 배역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필요할 땐 충돌할 줄도 알아야 한다. 디테일은 함께 논쟁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앞으로도 기술이 아니라 삶을 표현하는 진심을 전하고 싶다.” 대를 이어 해온 직업을 대충 하고 싶진 않다는 소박하지만 당연한 다짐은 이제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커피, 음악 그리고 분장가방

장진 분장감독이 있는 곳에 늘 따라다니는 것이 3가지 있다. 좋은 음악과 커피향, 그리고 분장가방이다. “현장에서 커피 한잔은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다. 집중을 위한 일종의 의식이라 해도 좋겠다. 커피, 음악, 분장가방만 있으면 그곳이 어디든 온전히 내 공간이 된다.” 음악을 틀고 커피를 나누며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제대로 된 분장은 언제나 손끝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