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두분이 2005년에 <포라, 아웃>이란 전시를 했고, 2012년에는 일본에서 <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열었다.
=페드로 코스타_ 두 프로젝트 외에도 지난해 코임브라의 카타콤베에서 <파밀리아>라는 전시 작업을 함께했다. 이번의 경우는 우리가 하는 일들이 더 과거로, 시간 속에서 멀어진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우리의 조상이나 아티스트들도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고대 혹은 오래전 세계의 존재들을 현재에 머물게 하려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둘 다 그 전통에 속해 있다고 본다. 그들을 보호하려는 의미다. 방이라는 건 존재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의식의 공간이다.
=후이 샤페즈_ 우리 이전에 있었던 조상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이전의 선배 같은 사람들을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잊지 않기 위해서 하는 행위다. 일반인일 수도 있고 위대한 사상가, 작가, 영화감독, 조각가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지금도 기억할 수 있게끔 살려놓고 싶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볼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데 이런 방에서 프로젝트를 하면 그들이나 그 이미지들을 좀더 명확하게 보이게 할 수 있다. 우리 이전의 선배가 아니어도 페드로 영화에 나오는 벤투라 같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과도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거리가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의 일은, 우리가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예전에 했던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고, 벤투라 같은 사람의 삶, 순간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영화는 목소리, 얼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영화와 조각 영역에서 서로에게 어떤 끌림이 있었나.
후이 샤페즈_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나 현실을 보는 방식은 내 기억과 관련이 있고, 내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과도 상관있다. 페드로 영화 중 처음 본 영화는 <뼈>(1989)다. 영화를 보고 흥미롭다고 느낀 건 그가 지나친 것이나 불필요한 걸 다 배제한다는 점이었다. 미니멀하다는 건 아니다. 바로 핵심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다. <뼈>는 저급한 장치를 쓰는 것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영화였다. 그 점이 내게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굉장히 급진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주 극소수의 요소를 가지고 핵심적인 이야기만 다룬다.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건 전부 빼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절벽 끝에 서 있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제목처럼 다 깎아내고 뼈에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조각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페드로 코스타_ 후이가 하는 일은 집중적인 축소다. 집중이 아니라 ‘집중적인 축소’이다. 예술로서뿐만 아니라 철학으로서도 그렇다. 후이의 작품을 처음 보고 느낀 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작품을 할수록 미스터리가 깊어진다. 요새 아티스트는 갈수록 더 많은 것을 나타내고 보여주는데 후이는 그 반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후이 작품 속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트라코라는 독일 시인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어두움을 더 어둡게 만들고 싶다”는 말.
-전시의 입구에는 후이의 감옥 문을 연상케 하는 조각이 공중에 떠 있다. 이어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용암의 집> 화산 이미지가 보인다. 2층에 가보면 네르발시에서 온 <불의 딸들>이란 제목의 영상물도 있다. 특별히 용암의 이미지를 전시의 출발점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
페드로 코스타_ 실제로 후이가 나보다 더 불을 가지고 작업을 많이 한다. 내가 불을 가지고 작업하는 건 은유적인 의미다. <용암의 집>을 만들면서 수집한 이미지를 보는데 ‘불의 딸들’이라는 이미지가 생각났다. 이 사람들이 사는 섬이 활화산이 있는 섬이다. 얘기한 시집도 떠올랐다. ‘불의 딸들’이란 표현을 그래서 사용했는데, 그런 아이디어를 이전에 누군가가 냈다는 것도 재밌었다. 그리고 여성들을 보면 가만히 서서 어딘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데, 왜 그렇게 서 있는 건지 연쇄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계속 보다보면 여성들과 화산의 연결점이 뭔지 생각하게 되고, 또 주인공 벤투라와 계속 들리는 목소리들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건 전시의 주제 같은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단순히 보면서 연상되는 것들이다. 이 여성들이 자기들끼리만 남게 됐는데, 연약한 여성들만 있고 주변에 (후안이 만든) 강철로 된 보초들이 지켜주는 양상이다. 무력에 의한 보초가 아니라 시적인 의미의 보초다.
후이 샤페즈_ 페드로가 하는 작업은 빛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사를 하니까. 그런데 빛으로 만든 실체가 아닌 것들이 굉장히 물질적인, 실체가 있는 강철로 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또 내 조각은 강철이 아닌 것처럼 위장되어 있고 그림자의 색깔을 하고 있다. 페드로의 작품은 실제 물질이 아닌 것들이고, 내 조각의 강철도 물질이 아닌 것처럼 나타나고 있어 마치 굉장히 연약한 것처럼 보이게 되어 있다. 우리 둘 다 작품을 하며 두 가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면 아티스트들은 작품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메시지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와서 보고 의미를 부여할 때 의미가 생기는 거다. 작품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물체, 물질이 아닌 빛(페드로의 영화)과 물질인데 위장이 된 것(나의 조각)이 합쳐져서 네거티브한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공간이 사람들의 눈으로 가득 차게 되고. 여성과 화산 같은 것들이 서로 연결된다.
-전시의 제목 ‘멀리 있는 방’(Distant Rooms)의 ‘디스턴스’는 일종의 기억을 촉발시킨다. 영화를 본 나로서는 3층에 자리한 영상에서 1층에 있던 <용암의 집>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당신의 영화를 기억하게 된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다른 결합을 떠올릴 것이다. 3층에 있는 샤페즈의 조각은 보초 같다 말했지만, 사실 바람에 흔들리는 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이 샤페즈_ 1, 2, 3층이 분위기가 서로 다르다. 1층은 폭력적이고 언밸런스하고 정리가 안 된 분위기다. 노이즈도 많고 화산이 출현한다. 벤치들도 여러 개 있는데 정리정돈된 게 아니고 상처도 있다. 상처와 불과 노이즈가 주된 것이 1층의 컨셉이다. 2층은 풍경을 나타내는데, 수평으로 놓여 있고 계곡, 그림자와 목소리로 이뤄져 있다. 3층은 하모니로 이뤄져 있는데 하모니 혹은 완벽함으로 인식할 수 있다. 어떤 얼굴이 있는데 움직이진 않는다. 그리고 커튼처럼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그냥 떠 있기만 한다. 빛으로 이루어져 있고 물체는 없는 것과, 실제 물체인데 천처럼 가벼워 보이는 것, 이 두 가지가 같이 있다. 그리고 또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날리는 게 보이는데, 같은 바람 때문에 천처럼 보이는 철이 날리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조화를 이룬 것같이 보이지만 한계가 있다. 방 끝을 보면 원형으로 된 공이 있는데, 그게 바로 이런 완벽해 보이는 하모니에 한계, 경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중요한 조각이다. 이번 프로젝트 제목에 ‘기다림’(Erwartung), ‘기대’라는 뜻의 독일어 단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페드로의 작품을 보면 액션영화가 아니고, 또 강제로 행위를 일어나게 하는 게 전혀 없다. 카메라를 들고 어디 가서 그냥 기다리는 식이다. 사냥꾼처럼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자기의 눈 혹은 카메라의 눈을 가지고 기대를 갖고 기다린다. 실제로 시간 속, 공간 속에서 일들이 일어나는데 무력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페드로 코스타_ 독일어로 된 제목은 아놀드 쇤베르크가 썼던 오페라의 제목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는데 절박함은 없는 거다.
-<행진하는 청춘>(2006)에서 보면 주인공 벤투라가 리스본의 칼루스트 굴벤키안 미술관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있다. 전시를 보면서 벤투라를 다시 미술관에 배치시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를 미술관에 배치시키는 것에 대해서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는 건가.
페드로 코스타_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서 보여주는 게 영화는 아니다. 후이가 얘기했듯 이런 도구, 수단, 소재로 작업하게 되면 관람객의 눈을 통해 뭔가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들을 보면서 이게 왜 얼굴과 같이 있지, 왜 이런 느낌이 들지, 왜 이런 감옥의 면회실 같은 것을 통해 벤투라를 봐야 하지,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진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이게 다큐다, 픽션이다 생각하지 않듯 박물관에 와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머릿속 혹은 눈 속에서 몽타주와 콜라주를 만드는 거라 생각한다. 1층에서 봤던 게 2, 3층에서 생각날 수 있고 3층에서 봤던 커튼과 같은 이미지가 2층이나 1층에서 기억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오는 사람들은 후이의 작품을 보러 박물관, 미술관에 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후이 샤페즈는 조각가이기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서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반면, 코스타 감독은 영화관을 떠나서 미술관,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페드로 코스타_ 기대는 전혀 없다. (웃음) 가능성이라든가 그런 걸 생각한다면 관객이 자신만의 편집을 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한다. 극장과 다른 것은 무엇과 다른 것을 연관 짓거나 아니면 더 분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극장보다는 박물관에서 관객이 그런 걸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극장에서와는 다른 감각을 사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극장과 비슷하게 관객에게 조금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에서든 극장에서든 마찬가지다.
-아쉽게 느끼는 게 당신의 영화가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극장에서 공개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극장 개봉보다는 전시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페드로 코스타_ 내가 이런 박물관 전시를 자주 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얘기한 게 사실이긴 한데, 배급사나 관계자들이 ‘영화를 상영해줄 수가 없다, 그럴 예산이 없고 돈이 없고 관객이 오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만약에 박물관에서도 그렇게 해줄 수 없다고 하면 안타까운 일이 될 거다. 그 부분에 대해선 딱히 할 말이 없다.
후이 샤페즈_ 페드로의 작품은 무척 밀도가 높은 영화이기 때문에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전시가 되고, 간혹 극장에서 볼 수 있기도 하지만 페드로의 작품은 ‘영화’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상영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갤러리나 박물관에서 상영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영화다.
-여전히 영화관에서 당신의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일이 과거의 것처럼 계속 지속될 거라 생각하나.
페드로 코스타_ 언젠가는 사라질 것 같은데, 내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무속인이 아니라서 알 수는 없다. 지금은 모든 게 다 디지털화돼 영화 보는 것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바뀌었고, 어디 모여서 같이 본다든가 하는 집합적인 경험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진 거 같다. 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 영화 아카이브라든지 시네마테크 같은 데서 고전영화를 보는 게 아닌 이상, 모든 게 앞으로는 거대한 유튜브처럼 될 것 같다. 유튜브에 들어가서 찾아서 보는 게 아니라 개개인이 보고 싶은 것, 그들의 필요에 맞춰서 바로 볼 수 있는 형태가 될 것 같다.
-지난해 전시인 <파밀리아>는 카타콤베에서, 일본에서의 <무>의 전시도 유서 깊은 건물에서 열렸다. 반면, 서울에서의 전시는 그런 역사나 기억이 부족한 미술관에서다.
후이 샤페즈_ <파밀리아>의 카타콤베는 포르투갈 중부 도시 코임브라에 있는 로마시대의 지하 회랑이다. 한 사각형 안에 또 한 사각형이 있고, 그 두개가 여러 가지 아치로 연결된 구조라서 처음 들어간 사람에겐 굉장히 복잡해 보인다. 그 공간이 완전히 텅 비어 있었는데, 우리가 갔을 땐 많은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예전엔 거기가 사람들이 와서 떠들고 얘기하고 논쟁하고 아이들이 뛰놀고 하는 활발한 곳이었단 생각을 했다. 지금은 침묵이 흐르는 곳이지만, 1천년 전에는 목소리들로 가득 찬, 활기로 가득찬 곳이란 생각이 들어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공간을 오히려 우리는 미니멀하게 접근하자고 생각했다. 페드로는 돌에다 얼굴만 투영하는 작품을 선보였고, 그래서 얼굴이 마치 돌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기 때문에 아무런 기억도 없고 목소리도 없다. 그리고 그냥 흰 벽만 네개 있다. 박물관이라는 자체가 컨셉이 중립적이다. 그래서 하얀 큐브라고 생각한다. <파밀리아>와 달리 이번 미술관 전시는 반대의 경험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목소리, 기억으로 가득 찬 곳에서 전시했다면 결과가 무척 달랐을 거다.
-지난 2013년 서울아트시네마 강연에서 코스타 감독은 점점 더 영화 작업을 해나가는 것에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여전히 비관적인지, 혹은 영화 작업에서 어떤 확신과 믿음을 갖고 있나.
페드로 코스타_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비관적이다. 영화를 만들려면 돈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고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조각을 하려면 강철이나 돌 같은, 재료만 있으면 되는데 영화를 제작하려면 많은 수의 스탭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일반적인 영화산업에서 하는 것과 달리 스탭도 소수 인원으로 하고 예산도 말 그대로 저예산으로 할 수 있게끔 한다. 내가 하는 영화들은 그래서 손해를 본다거나 하지 않고 자체 제작이 가능하게끔 만든다. 영화 시장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산업이나 제작에는 비관적이고, 이런 영화산업은 20, 30년 후면 끝나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래서 조각가들이 우리를 재앙으로부터, 심연으로부터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시인 횔덜린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우리는 모두 심연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