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젊음을 밑천 삼아 호주로 떠난 워홀러들의 웃픈 수난기 <홀리워킹데이>
2016-07-06
글 : 윤혜지
<홀리워킹데이>

“어서 와. 이렇게 싱싱한 고생담은 처음이지?” 맞다. 처음이다. <홀리워킹데이>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네 청년이 생고생, 아니 성스러운 노동의 현장을 경험하고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네 청년의 농장 노동기를 통해 한국의 청년들이 왜 그토록 열심히 낯선 땅, 남의 나라 일꾼이 되기를 자처하는지, 그 과정에서 그들이 알고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지 말하고 있다. 단순한 돈 벌기, 스펙 쌓기가 아니다. 호주에서 흘리는 그들의 땀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실망과 체념이 함께 묻어 있다. 이희원 감독을 만나 <홀리워킹데이>의 제작 뒷이야기와 삶의 지향에 관한 얘기를 함께 들었다. <홀리워킹데이>는 이희원 감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작품이자 2014년 옥랑문화상 수상작이다.

왜 청년들은 사서 고생하는 걸까. 저 먼 타국 땅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홀린 듯 ‘현대판 농노’의 삶을 자처하는 것인가. <홀리워킹데이>는 호주로 일자리를 찾으러 간 네명의 ‘워홀러’들이 지옥 같은 농장 노동을 체험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하며 거치는 과정이지만 지금까지 워킹홀리데이 동안의 생활상을 이토록 상세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는 없었다. 이희원 감독은 호주 한국문화원 인턴십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 시드니에 머물던 중 매해 3만여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 그 ‘대이동’의 기이함에 의구심을 느껴 카메라를 들게 됐다고 한다.

워킹홀리데이. 만 18살부터 30살까지의 청년들이 협정 체결국에 체류하면서 그 나라 문화와 생활양식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라고 하지만 실상은 단기간에 바짝 벌어서 한몫 챙겨올 생각이거나 취업 시 자기소개서에 한줄이라도 더 쓰려는 목적 혹은 저비용으로 어학연수를 대신하려는 의도로 가는 자발적 고생길인 경우가 많다. <홀리워킹데이>의 주인공인 곽주현, 박종대, 박종현의 호주 체류 목적도 이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현지 농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데다 자가용까지 소유한 ‘능력자’ 박종대, 외국에서의 자유롭고 생기 있는 삶을 꿈꾸는 분위기 메이커 곽주현, 고향 대구를 떠나 처음 밟은 타지가 호주가 되어버린 탓에 뜻하지 않게 고난도의 농작물 수확 스킬을 보유하게 된 ‘수확의 신’(이자 박종대의 사촌) 박종현은 세컨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88일간의 노동일수를 채우면서 단기간에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한다. 노동강도는 낮고 근무환경도 나쁘지 않으며 고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블루베리 농장이다. 이희원 감독까지 포함한 네명의 워홀러는 블루베리 농장 입사 면접의 순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다른 농장을 전전하며 체류 일수를 채워간다. 하지만 면접 기회는 쉽사리 오지 않고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진 네 사람은 힘든 노동을 요하는 다른 농장들을 차례로 거치게 된다.

<홀리워킹데이>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아

<홀리워킹데이>는 밝고 성실한 다큐멘터리이지만 냉소적인 블랙유머와 잔잔한 듯 강력한 촌철살인 내레이션이 독특한 감상을 전한다. 마냥 웃는 건 어렵지만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도 이상한 영화다. “그래도 외국에 나가보기라도 한” 청년들의 삶은, 비록 그 생활이 고된 노동으로 점철됐더라도 어쨌든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며 하다못해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면 영어라도 알아듣고 말할 줄 알게 된다는 데서 ‘워홀’을 가지 못하는 또래 청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반면 돈도 스펙도 없는 사람들의 삶은 어차피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기도 하거니와 차라리 제때 졸업해 일찍 취업 시장에 나서는 게 낫다는 의견으로 보자면 무용한 시간 낭비로 보이기도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라며 혹자는 자기연민을 버리고 더한 ‘노오력’을 할 것을 요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러움과 무용함, 자기연민은 다 어디에서 오는 것이란 말인가.

패기만만한 청춘들이 해외에서 겪는 좌충우돌을 다루는 영화로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2013)도 있다. 영상 제작을 전공한 잉여 청년 네명은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겨우 80만원만 손에 쥔 채 훌쩍 유럽으로 떠난다. 그나마 아는 걸 활용해 뮤직비디오 등을 촬영하는 일을 하며 유럽을 전전하는데, 마냥 허황돼 보이던 그들의 계획은 모 호스텔 PR 영상이 대박을 치며 점차 구체적인 현실이 되어간다. <홀리워킹데이>의 워홀러들과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의 잉여들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혀 해외로의 ‘도피’를 감행하게 되었다는 출발 계기는 비슷하다. 하지만 두 집단이 향하는 방향과 목적은 사뭇 다르다. 잉여들은 여행 중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창의적 자립 방식을 모색한다. 반면 워홀러들은 여행 중 보고 듣고 얻은 것들 덕택에 한국이 자신들이 머물러야 할 최종 목적지가 아니어도 괜찮을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그들에게 이제 한국은 일종의 경유지다. 이희원 감독은 말한다. “19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며 자라온 세대는 ‘너희가 원하면 뭐든 할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노력하라’고 교육받으며 컸다.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보면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임을 금방 깨닫게 된다. 그건 개인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다. 거기서 청년들은 큰 부조리와 배반감을 느끼는 거고 그래서 이 땅을 떠나려 마음먹는다.” 현재 박종대는 호주 이민을 준비 중이고, 곽주현은 유학원 강사로 일하며 “한국이란 나라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러내고 있다. “제정신을 갖고는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이희원 감독도 미국으로 가 새로운 일을 찾으려 한다.

<홀리워킹데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는 과정

하지만 <홀리워킹데이>가 무책임한 아웃백 드림을 종용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워홀러들은 낯선 땅에서 더 나은 삶에 관한 약간의 실마리만을 찾은 것뿐이다. <홀리워킹데이>는 호주 워킹홀리데이의 부족하고 어두운 면을 감추지 않는다. 더 많은 워홀러를 수용하기 위해 엉성하게 만든 집이 부동산법에 걸려 워홀러들이 하루아침에 숙소를 잃게 되거나, 애써 모은 돈을 통째로 사기당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한국인 워홀러들은 호주 현지에서 그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감수한다. “크게 보도되지 않아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이희원 감독이 호주에 있던 서너달 동안 한국인 워홀러가 세명이나 죽었다고 한다. “새벽 청소 일을 하고 퇴근하던 중에 이유 없이 둔기에 맞아 살해당한 사람도 있고, 1천만원을 모은 뒤 귀국하기 위해 사설 환전소를 찾았다가 같은 한국인들 서넛으로부터 돈을 빼앗기고 죽임당해 암매장된 채로 발견된 사람도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열차 사고로 사망했다.” 하지만 한국은 그들의 죽음을 모른다. 워홀러들은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비일상을 일상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과 종종 만난다.

청년들이 이 나라에 절망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이뤄지지 않는 부조리를 거듭 마주하는 데 지쳐 이 땅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내가 틀린 선택을 한 건가 스스로를 의심할 때가 많았다. 호주 생활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받는 과정이었다. 이상하게 살아도 괜찮고, 못나게 살아도 괜찮다고. 호주에서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던 주현은 한국에 돌아와선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살을 빼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데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았나보다. 나는 여기서 결혼하고 애를 키우는 건 상상도 못하게 됐다. 한국에서 나는 막연한 죄책감을 느끼고 산다. 세월호 참사나 고리 원전 케이스, 그 밖의 숱한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수습되는 과정들을 보고 있자면 그 비상식이 이해도 가지 않고 마음도 무겁다. 왜 내가 사회에 빚진 사람이 되어야 하나.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계속 날카로운 걸로 나를 찔러대는 것 같다. 무엇도 시작조차 안 했는데 나는 벌써 절벽에 선 기분이다. 그런데 가진 게 없으니 발에 줄이라도 묶고 뛰어내리려고 줄을 찾은 거다. 그게 생명줄일지 썩은 동아줄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런 면에서 <홀리워킹데이>는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와도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청년은 고국에서조차 “2등 시민”이다. 주인공 계나는 한국에서 마주하는 명백한 불행들보다 호주에서의 짐작할 수 없는 행복을 선택했다. 적어도 호주에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홀리워킹데이>

“자기 맨살과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다”

여성영상집단 반이다의 <개청춘>(2009) 속 20대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평범하고 시시한 매일이지만 그들의 선택과 기록의 끝에는 희미한 긍정이 존재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어쨌건 그들은 자의로 신변의 변화를 택했다. 그것으로 그들의 삶은 이미 달라졌다. 희원, 종대, 주현, 종현에겐 <홀리워킹데이>가 남았다. 자신들의 가장 고되고 비루했던 기억은 그 이후를 견디어내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자기 맨살과 만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이희원 감독은 말한다. 해외에서의 홀로서기는 집, 학교, 친구, 직장 등 익숙하게 뿌리내린 땅을 벗어나 보다 완전한 자립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워킹홀리데이가 비싼 값에 해외 경험을 사오는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하지만 돈이든 희망이든 무언가를 얻어올 수만 있다면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등떠밀려 시작한 워킹홀리데이였어도 광활한 양파밭을 버텨낸 튼튼한 일꾼들에겐 이제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갈 수 있다는, 비로소 지금이야말로 노력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겨난 것이다. 아직은 젊음이란 기댈 데가 있기에 그들은 여러 번이라도 “기꺼이 희망에 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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