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녀와 야수”라는 마동석과 “야수라기엔 너무 멋있다”는 정유미, <부산행>에서 부부를 연기한 이들이 서로 칭찬을 쏟아낸다. “평소 좋아하는 배우인데, 내 남편 역할을 맡았다니 얼마나 반갑던지! (웃음)” 하지만 두 배우 모두 서로 부부로 호흡을 맞추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간 서로 완전히 다른 캐릭터들을 연기해왔으니까. (웃음) 예상치 못한 인연이어서 더 좋았다”는 정유미의 말에, 마동석이 “공유와 정유미가 부부면 너무 뻔하지 않았겠나. 색다른 재미를 준 것 같다”고 덧붙인다. ‘뻔하지 않게’ 만난 두 배우는 서로를 “마요미”와 “정요미”라고 부르며 호흡을 맞췄다. 마동석이 “정유미는 항상 진심으로 연기하는 배우다. 마음이 잘 통했다”고 말하니, 정유미가 “연습 없이 즉석에서 맞춰도 어색하지 않고 합이 맞더라”고 받는 두 배우의 호흡이 영화 속 못지않다.
<부산행>에 탑승한 남편 상화(마동석)와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부부는 재난 속에서 서로를 지켜낸다. 아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 애처가에, 근육질의 두팔로 좀비들을 해치우는 듬직한 상화는 명실공히 이 영화의 해결사다.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선한 것. 각박한 세상에서 좀처럼 엮이지 않는 두 속성을 한데 배치한 데서 ‘마요미’의 사랑스러움은 탄생한다. 그는 영화에서 자신의 연기와 액션이 주목받는 공을 캐릭터에 돌렸다. “초반부 소소하게 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나중엔 사랑하는 아내를 지키려 분투하는 남편의 모습이 보편적인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 “이런 영화에 재미도 빠질 수 없지 않나. 내 캐릭터는 통쾌한 재미를 주는 기능적인 역할도 했다. 전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설정이라 드라이하게 표현하려고 한 부분도 있다.”‘마요미’ 그 자체를 구현한 듯한 상화와 실제 마동석 간의 상관관계는 어떨까. “상대방을 배려하고 챙겨주려 하지만 붙임성이나 애교가 있진 않다. (웃음)” 뭐가 됐든, 자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적어도 가족은 지킬 것”이라는 그의 말이 미덥다. 마동석은 좁은 공간에서 액션을 소화하다 손가락이 찢어지는 등 부상 투혼을 발휘했지만, 임부 분장을 한 채 뛰고 기어야 했던 정유미도 몸을 혹사한 건 마찬가지였을 터. 그러나 그녀는 “고되지 않았다”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감염자 역으로 많은 배우가 등장한다. 나는 임부 분장을 한 채 뛰기만 하면 됐지만, 그 무더위에 특수분장을 한 그분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나. 오랜만에 현장에서 숭고함을 목격한 것 같다.” 마동석도 “감염자 연기는 잠깐만 해도 진이 빠지는데, 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며 거든다. 두 배우가 주변을 먼저 돌아보듯, 상화와 성경 또한 서로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이들을 향해 손을 내밀 줄 안다. 상화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려 하고, 성경은 임신한 몸으로 자신만을 돌보지 않고 수안(김수안)을 챙긴다. 정유미는 그 마음을 “모성이라기보다는 동료애”라고 말한다. “열차 안에서 수안이는 함께 가야 하는 동료였다. 같이 걸어가는 중에 수안이가 손을 꼭 잡아주는데 갑자기 울컥하더라. 지금 떠올려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웃음)”
마동석은 원래 장르영화의 팬이다. “B급 무비도 좋아하고, 판타지나 SF물도 좋아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장르영화를 찍을 기회가 별로 없지 않나. 이번 기회는 드디어, 라는 느낌이었달까.” 그는 현재 촬영 중인 <신과 함께>의 성주신 역을 맡아 장르영화에 대한 갈망을 계속 채워가는 중이다. 장르물의 팬은 아니라는 정유미는 그 대신, 한국에서 “예산이 큰 블록버스터이자 장르영화가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괴물>(2006)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데, 이런 큰 영화들은 많은 관객에게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줄 수 있는 면이 있지 않나. 그걸 연상호 감독님이 해낼 것 같아서 좋다. 좀 거창한 말이지만, 이 영화에 조금이라도 힘입어 인간답고 살 만한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웃음)” 정유미는 그녀를 비롯한 4명의 배우가 각각 1, 2회차를 소화한 김종관 감독의 신작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의 촬영을 마쳤다. “영화를 찍으며 논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이런 작은 영화를 만들 때는 함께 연대한다는 기분이 들어 좋더라.” ‘인간다운 세상’과 ‘연대’를 꿈꾸는 그녀는 성경과 닮은 구석이 참 많다. 상화처럼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던 마동석은 한마디로 영화를 정리한다. “<부산행>도 결국 그런 연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다. 가족애, 우정, 나아가 인류애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부산행> 속 가장 정 많은 부부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