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응 전화 바로 받으시네. 나야. 준이. 염천(炎天)을 건너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그런데 뭐 하나 물어볼게. 아버지는 인생의 영화가 뭐야? 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 문득 생각나서. 아버지가 나보다 영화를 많이 봤잖아.”
“내가 너보다 영화 많이 봤지. 30년을 더 살았는데. 술도 내가 너보다 30년은 더 마셨어. 그런데 넌 독주 좀 줄여. 몸이 남아나겠냐? 내가 전에 말한 <태양은 가득히>는 봤어? 알랭 들롱 나오는 거. 아직 안 봤다고? 아, 자식이 아버지 말 되게 안 들어. 아, 나는 영화 많이 봤지. 청량리 신도극장, 돈암동 동도극장, 신설동로터리 동보극장. 그리고 나 열일곱살 때 청계천 양복점에서 같이 일하던 형이 있었거든. 내가 한정이 형, 한정이 형 하고 불렀지. 아, 그 형 보고 싶네. 아무튼 그 형 애인이 신설동 동보극장 사장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는데 간혹 공짜표를 얻어다줘서 그땐 더 많이 봤지.”
“그래서 아버지 인생 영화가 뭐냐고. <태양은 가득히>야? 태어나서 처음 본 영화는 뭔데?”
“뭐 하나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 아름다운 영화가 한둘이냐? 처음 본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못 본 영화는 기억나. 내가 숭례초등학교 나왔잖아. 어느 날 학교에서 <벤허> 단체관람을 간대. 나는 못 갔지. 돈이 없으니까.”
“아버지. 나도 수학여행 못 갔네요. 돈 없어서. 그런데 다행인 것은 그때가 딱 IMF 때라 못 가는 친구들이 많았어. 다행이지. 가난도 묻어갈 수 있다니.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을 웃프다고 해. 웃긴데 슬프다고.”
“한번은 미아리극장에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최무룡씨가 나오는 영화를 보러 갔어. 너 최무룡씨 알지. 몰라? 그때 극장들은 로비에 벤처스(Ventures)류의 경음악을 크게 틀어놓았거든. 아, 신나지. 그리고 대형거울도 있었어. 그때는 어디 가정집에서 거울을 들이고 살았나? 극장이나 가야 거울이 있지. 극장 로비에 앉아 거울을 보는데 구석에 어떤 거지가 앉아 있더라고. 거지도 영화를 보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보니 그게 내 모습이었어. 그때가 양복점에서 일하기 전에 창동으로 고물 주우러 다닐 때니까 행색이 말이 아니었지. (울먹이시다 끝내 오열. 겨우 그치고) 그 영화 줄거리가 꼭 내 이야기 같았어. 주인공이 고아인데 나랑 처지가 비슷하더라고. 영화가 끝나고도 집에 갈 때까지 울었어. 당시 홀아비로 살던 네 할아버지가 나보고 왜 우냐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푸른 하늘 은하수> 보고 오는 길이라고 하니 네 할아버지는 먼저 그 영화를 보셨나봐 그러더니 나더러 더 울라고…(다시 오열).”
“아이참, 슬픈데 웃기네.”
“그런데 너는 어떤 영화로 글을 쓸 예정인데?”
“<박하사탕>에 대해 쓰려고. 전에 아버지랑 나랑 술 마시면서 같이 봤잖아. 내가 종종 집에서 틀어놓고 있는 영화. ‘나 돌아갈래’ 외치는 장면. 기억나지? 응, 맞아. 이창동 감독님 영화. 내가 지난주에 제천 지나 삼척 지나 동해로 여행 갔다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 영화에 나오는 장소들을 찾아간 거야. 영화에서 80년 광주로 나오는 공간은 집 근처 수색역이고. ‘삶은 아름답다’라는 게 영화의 큰 메시지인데, 아름다운 게 한둘이 아니야. 슬픈 것은 서넛이 넘고. 아무튼 긴 통화 고마워. 조만간 <태양은 가득히> 찾아볼게. 그리고 나중에 내가 고아가 되면 <푸른 하늘 은하수>도 구해봐야지. 그때는 내가 아버지처럼 엉엉 울게. 그래, 끊어요. 그만 울고.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