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 스토리는 어떻게 만들까
2016-09-19
글 : 장영엽 (편집장)
<드라마월드>

어떤 콘텐츠가 매력적인 콘텐츠이며 어떤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까.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미국 드라마(이하 미드)의 제작자들이 생각하는 ‘되는 콘텐츠’의 조건을 듣기 위해 2016 방송작가 국제포럼에는 수많은 국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오갔던 얘기 중 핵심적인 내용만 간추려 소개한다.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져라

TV와 영화의 크로스오버는 최근 미국 영상계의 중요한 화두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데이비드 핀처, <보드워크 엠파이어> <바이닐: 응답하라 록앤롤>의 마틴 스코시즈, <센스8>의 워쇼스키 자매 등 영화감독들이 TV시리즈를 제작하는 사례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TV가 영화 연출자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뚜렷한 자기만의 세계관과 개성을 지닌 영화감독들이 기존의 TV 콘텐츠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스타일과 활력을 불어넣길 바라기 때문이다. 마이클 엘렌버그는 “형식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신천지, 개척지가 될 것”이라며 작품의 톤은 일관성 있게 유지하되 신선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많은 경우 연출자의 개성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엘렌버그는 <트루 디텍티브>가 주인공 러스터 콜(매튜 매커너헤이)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영화적인 시각”으로 공들여 표현하는 장면을 예로 들었다.

<기묘한 이야기>

기존의 규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라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말라.’ 미드 제작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통용되던 원칙이었다고 한다. 올해 여름 네 아역배우를 주연으로 내세워 대성공을 거둔 넷플릭스의 SF 미드 <기묘한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HBO>의 드라마개발부문 수석부사장 마이클 엘렌버그는 때때로 대중이 TV의 공식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을 과감하게 깨야만 다른 콘텐츠들과의 치열한 각축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이 죽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깸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선사한 미드 <왕좌의 게임>이나 ‘시골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인기가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깬 미드 <트루 디텍티브>의 성공이 엘렌 버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리메이크작의 경우 오리지널과 다른 새로움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오리지널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국판 <슈츠>의 컨설팅을 맡은 오리지널 <슈츠>의 프로듀서 진 클라인은 리메이크작의 경우 원작과 다를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원작의 캐릭터가 사랑받을 수 있었던 특성을 유지하되 리메이크작에 합류한 배우와 제작자, 작가의 경험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얘기다. 동명 원작 웹툰의 드라마화를 시도했던 <미생>의 김원석 프로듀서는 비슷한 맥락에서 각색 작품에 대한 한국 영상업계의 인식 또한 재고되어야 한다고 첨언했다. 오리지널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갖춘 각색 작품의 필요성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슈츠>

강력한 캐릭터를 만들어라

“뛰어난 캐릭터를 찾는 것이 뛰어난 플롯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방송작가 국제포럼에 참석한 콘텐츠 전문가들은 마이클 엘렌버그의 이 말에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미드 <슈츠>를 제작한 프로듀서 진 클라인 역시 “(법정 드라마인) <슈츠>의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휴먼 드라마를 법이나 사건 소송보다 더 우선적으로 구성”했으며,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진짜 사람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이 드라마 성공의 판단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했다. 콘텐츠를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이 뛰어나더라도 결국 시청자들이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지 못하면 다른 콘텐츠로 눈을 돌리게 될 거라는 얘기다. 진 클라인 프로듀서는 <슈츠>의 주요한 성공 이유 중 하나로 주인공 하비(가브리엘 막트)와 마이크(패트릭 J. 애덤스)가 맺고 있는 ‘브로맨스’를 예로 들며 이들의 관계는 언제나 이 쇼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일관성을 유지하라

미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한 시즌을 제작하는데 수많은 작가와 감독들이 참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에피소드마다 연출자들의 각기 다른 개성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마이클 엘렌버그는 미드 <트루 디텍티브>의 시즌1을 제작할 당시 닉 피졸라토라는 한명의 작가와 캐리 후쿠나가라는 한명의 감독을 기용함으로써 일관성에 대한 문제를 돌파해나갔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한국 드라마와 비슷한 제작 방식으로부터 일관성에 대한 해법을 찾은 셈인데, 이런 경우에는 연출자에게 업무가 지나치게 과중하게 부과될 수 있으므로 감독의 ‘번 아웃’을 막는 작업 또한 필수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고 엘렌버그는 말했다.

대중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 주목하라

북미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아카데미나 다름없는 에미상 시상식은 올해부터 회당 15분 정도의 상영시간으로 이루어진 ‘숏폼’(shortform) 부문에 여섯개의 상을 신설했다. 숏폼 부문의 등장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주로 모바일을 통해 콘텐츠를 접하는 젊은 시청자 계층,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미국에서 1982~2000년 사이에 태어난 신세대를 일컫는 말)에 대한 고려처럼 보인다. 한•중•미 합작 웹드라마 <드라마월드>의 프로듀서 숀 리처드는 ‘숏폼’으로 드라마를 제작한 이유에 대해 “(요즘 시대 대중에게) 딱 한번에 씹어먹을 수 있는 드라마를 제공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변화하는 대중의 콘텐츠 소비 방식에 따라 콘텐츠의 서사 전개 방식이나 캐릭터 구축 방식이나 포맷 또한 유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 콘텐츠의 장점을 부각시키자

“미국 드라마는 형사가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일본 드라마는 형사가 나오면 교훈을 주고, 한국 드라마는 형사가 나오면 연애를 한다.” 드라마 팬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전하는 각국 드라마 콘텐츠의 차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 콘텐츠의 특성은 드라마 팬들이 특정 지역의 콘텐츠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류 드라마팬이 한국 드라마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룬 웹드라마 <드라마월드>의 프로듀서 숀 리처드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특유의 낭만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외모의 주인공들이 낭만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에서부터 시청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한국 드라마로부터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키스”를 원한다면, 이러한 클리셰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식도 지속적으로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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