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미국의 얼굴' 톰 행크스라는 아이콘
2016-10-05
글 : 조재휘 (영화평론가)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은 2009년 허드슨강에 수상 착륙해 승객들의 목숨을 구한 체슬리 설렌버거 기장(애칭 ‘설리’)의 실화를 다룬다. 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한 155명을 태우고 뉴욕의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으로 가던 US 에어웨이스 1549편은 850m 상공에서 날아든 새떼와 충돌해 엔진 2개가 정지되는 사고를 당한다. 그러나 인근 공항까지 닿는 건 무리라 판단한 설리 기장의 침착한 대응으로 여객기는 허드슨강 수면 위로 무사히 불시착했고 승객 전원은 무사히 구출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설리 기장의 수기 <최고의 의무>(Highest Duty)를 손에 쥐고 <아버지의 깃발>에서처럼 영광스러운 사건 당시의 경험과 이를 둘러싼 이면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톰 행크스가 연기한 설리 기장은 숙련된 조종사로서 자긍심과 책임감이 투철한 직업의식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설리가 뉴욕 시내를 조깅하는 장면을 보자. 수직이 강조되는 1.90:1 비율과 넓은 화각으로 강조되는 주변 건물의 위압적인 풍경,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방송의 사운드 몽타주, 수직 하강하며 인물을 짓누르듯 다가가는 카메라 움직임은 인물의 어깨에 지워진 조종사로서의 임무와 책임감의 무게를 암묵적으로 웅변한다. 그러나 <설리>의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바로 톰 행크스의 얼굴이다. 톰 행크스는 오랜 경력으로 신념과 확신에 차 있는 한편으로, 자신의 결정이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는지를 자문하며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베테랑의 내면을 담담함 속에 거센 흔들림을 담는 안정적인 연기 감각으로 소화해낸다. 아이맥스 카메라는 특유의 심도로 넓은 풍경을 조망하기보다 배우 톰 행크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그 안에 투영되는 감정의 결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설리>에서 톰 행크스의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자 아이콘(icon)인 것이다.

‘미국의 베테랑’이자 ‘가부장’ 톰 행크스라는 이미지

조종사 설리를 연기하는 톰 행크스의 모습은 은연중에 배우로서 그가 걸어온 필모그래피의 중요한 이력들을 환기시킨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까지 다수의 멜로드라마와 로맨틱 코미디에서 활약해온 톰 행크스는 차별에 항거하는 동성애자 앤드루 베켓으로 열연한 <필라델피아>(1993)에서 진지한 정극에 일가견이 있음을 입증한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명배우 제임스 스튜어트 이래 ‘미국의 얼굴’로서 친근한 인상과 생활 연기를 장기로 삼아온 톰 행크스의 소시민적 이미지가 정점에 달한 건 그의 인지도를 대중적으로 끌어올린 <포레스트 검프>에서일 것이다. 여기서 그는 지적장애가 있지만 순박하고 성실하며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임하는 우직한 인물 포레스트 검프를 맡아 미국적 소시민의 이상형을 한몸에 응축해낸다.

그런 톰 행크스의 이미지가 다시 한번 일대 성숙의 전기를 맞는 기점은 아마도 론 하워드의 <아폴로 13>(1995)에서부터일 것이다. 달 탐사 실패의 실화를 그린 이 영화에서 톰 행크스는 우주선의 산소탱크 2개가 손상을 입어 지구로의 귀환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침착한 대응과 팀간의 협력으로 아폴로 13호를 무사 귀환시키는 나사 우주비행사 짐 러블을 연기한다. 우주선은 항공기로, 동료 파일럿과 가족, 나사의 구성원은 승무원과 승객으로 치환될 수 있으며, 관록 있는 중견의 베테랑이 중심이 되어 팀 또는 공동체의 방향을 이끌고, 종국에는 위기를 극복해낸다는 점에서 <아폴로 13>의 기본적인 플롯은 <설리>와 많은 일치점을 보인다. 위기 상황에 능숙히 대응하는 든든한 리더의 역할이 본격적으로 톰 행크스의 배우 이미지에 덧씌워진다는 점에서 <아폴로 13>의 짐 러블은 <설리>에서의 설렌버거 기장의 원형(原型)을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베테랑이자 가부장적 인물로서 톰 행크스의 이미지에 정립되는 데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은 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의 밀러 대위는 임무에 충실한 군인정신의 화신이면서, 전장에서는 부하의 죽음을 남몰래 슬퍼하는 아버지와 같은 역할로 분대원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된다.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에서 톰 행크스는 집요한 추적 끝에 사기꾼 청년 프랭크를 체포하지만, 극의 말미에선 일종의 멘토처럼 그를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이끌어주는 FBI 요원 칼 헨렌티 역을 맡았으며, <스파이 브릿지>에서도 그의 배역은 이러한 인물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제임스 도노반은 법률 지식과 사전 교섭에 이골이 난 변호사이며, 헌법적 가치라는 법조인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매카시즘에 맞서는 한편, 가족의 위기에 직면해 그들을 지켜야 하는 평범한 가부장으로 제시된다.

폴 그린그래스의 세계로 옮겨온 <캡틴 필립스>(2013)에서도 톰 행크스는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인질 되기를 자청하는 머스크 앨러배마호의 선장 리처드 필립스로 열연한다(공교롭게도 영화의 원작인 필립스 선장의 수기 제목은 <선장의 의무>(A Captain’s Duty)이다). 선장으로서의 의무와 본분에 충실하고 자기 사람의 목숨에 책임을 지는 우직한 뱃사람. 다양한 직업군을 연기해왔지만 베테랑 직업인이자 대리 가부장, 미국 사회의 정상적 가치에 대한 수호자로서 일관해온 톰 행크스의 필모그래피 발전상은 <설리>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스트우드의 세계에 편입되다

<설리>는 실화라는 맥거핀을 뒤집어쓴 서부극과 같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세계 이면에는 서부극의 윤리의식이 투영되어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데,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현대판 총잡이를 통해 미국의 국가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수정주의적 접근법을 취한다면, <설리>는 존 포드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대 배경의 고전에 가깝다.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짊어진 보안관과 그의 조력자 부보안관이 위기 상황에서 마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협력하고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몫을 다하는, <황야의 결투>(1946)나 <리오 브라보>(1959) 등으로 대변되는 정통 서부극의 구도가 조종사와 부조종사, 비행기에 탑승한 승무원과 승객의 이야기로 옷을 바꿔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대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건 실로 의미심장하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남성의 등장이라는 점에서 이스트우드가 <설리>에서 추구하는 정통 서부극의 윤리와 톰 행크스의 캐릭터는 정확한 일치점을 찾고 있다. 이스트우드는 시스템을 신뢰하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어떤 위기가 와도 구조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직분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면 다소 역경이 있더라도 기어이 인정받고 보답받는 ‘완벽한 세상’(perfect world). 영원한 베테랑 톰 행크스의 캐스팅은 이스트우드의 비전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방점이자, ‘보수’(保守)할 가치가 있는 미국 사회에 대한 신뢰의 표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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