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촬영도 척척, 묻는 말에 대답도 척척, 신은수는 똘똘하다. 연기 경력이 전혀 없는 생짜 신인이라는 사실을 깜빡할 정도다. 지난겨울, 남양주촬영소 촬영장에서 <가려진 시간>을 찍는 엄태화 감독을 잠깐 만난적 있다. 그는 자신의 히든카드인 신은수를 두고 “강심장”이라고 표현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긴장을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 신인답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어른 같다는 얘기가 아니다. “긴장을 잘 안 하는 편인가보다. 그런데 인터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전날 밤에 매니저 언니와 예상 질문을 만들어 연습했다”고 해맑게 웃는 모습이나 “운동하기 싫어하고 TV 앞에 앉아 <짱구는 못 말려> 시리즈를 즐겨”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게으름형”에 속한다고 소개하는 모습은 또 영락없는 14살 소녀다. 어쩌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한달 동안 진행된 오디션을 3차까지 모두 통과해 300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수린 역을 꿰찰 수 있었던 비결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연기한 수린은 동화 속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을 겪는다. 수린은 유일하게 의지했던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새아빠(김희원)와 단둘이 연고도 없는 섬으로 이사 간다. 모든 게 낯선 그곳에서 또래 친구 성민을 만나 가까워진다. 어느 날, 성민과 그의 일행을 따라 공사장 발파 현장을 구경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어떤 사건을 겪는다. 소년들 모두 실종된 채 혼자서 마을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난 뒤 어른이 된 성민(강동원)을 만난다. 꼬마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모험을 떠났다가 판타지 같은 일을 겪는다는 점에서 <구니스>(감독 리처드 도너, 1985), <슈퍼 에이트>(감독 J. J. 에이브럼스, 2011) 같은 영화나 최근의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감독 더퍼 형제, 숀 레비, 2016)가 떠오른다. 하지만 특정 장르가 편중된 한국 시장을 감안하면 이러한 시도는 과감하고, 그래서 더욱 반갑다. 신은수가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로부터 시나리오를 받은 뒤 오디션에 지원하겠다고 나선 것도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이야기”에 끌렸기 때문이다.
신은수에게 수린은 “말보다 표정이나 행동이 우선하는 친구”다. “어릴적부터 엄마 없이 자란 탓”에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눈빛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다. 오디션은 겁 없이 부딪혔지만 실전은 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했다. 촬영 전, 다른 아역배우들과 함께 엄태화 감독에게서 추천받은 “<스탠 바이 미>(감독 로브 라이너, 1986), <구니스>를 감상”하며 작품의 톤 앤드 매너를 파악했다. “호주 출신의 가수 시아(Sia)의 <샹들리에> 뮤직비디오를 감상해 그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소녀 댄서 매디 지글러만큼 미쳐야 한다”는 주문을 받았다. (웃음)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고 당당하게 연기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연기 선생님과 단단히 준비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막상 잘 풀리지 않았던 부분은 눈빛이나 표정보다는 대사였다. “특히 성민이한테 길게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잘되지 않더라. 왜 이렇게 안 되지 하며 스스로에게 짜증이 났다. 앞으로 대사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게 신은수의 얘기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연기지만 서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야 하는 중책을 맡은 만큼 내심 승부욕이 생겼나보다.
JYP 연습생 신분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은수는 아직 꿈 많은 십대 소녀다. 이제 상업영화 한편을 경험한 만큼 연기라는 한 우물만 팔 법도 한데, 그녀는 “연기와 노래 모두 하고 싶단”다. “아직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기를 해보니 여러 감정을 드러내는 게 재미있다.” 그녀의 다음 선택 역시 연기다. 11월 방영될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의 아역을 맡았다. “전지현 선배님과 닮은 것 같다고? 음, 그건 잘 모르겠는데 매니저 오빠는 닮았다고 하더라. 정말 닮았나?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