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였더라면 선택이 더 빨랐을 거다.” 강동원이 말했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작품에 대한 취향이 명확한 그에게도 쉬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우선 ‘물리적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시간 속에 오랫동안 갇혔던 소년이 홀로 어른이 되어 또래 소녀 앞에 나타난다는 설정이다보니, 아무래도 더 젊은 2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다.” 하지만 엄태화 감독은 <검사외전>의 촬영지였던 부산까지 내려가 강동원을 설득했다. 엄태화 감독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들고, 소년과 어른이 경험하는 시간대를 폭 넓게 보여주어야 하며, 진실을 말하는 순간에도 모호함을 잃지 않는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떠올렸을 때, 강동원은 여전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선택지다. <M>(2007)과 <전우치>(2009), <초능력자>(2010)와 <검은 사제들>(2015) 등 강동원이 있었기에 특유의 신비로움과 미스터리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영화들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강동원 자신이 이처럼 쉽지 않은 환경 속으로 자신을 밀어넣기를 두려워하지 않기도 한다. 결국 고심 끝에 <가려진 시간>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워낙 재미있었고,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부분도 많았고, 관객에게 끝까지 궁금증을 주는 영화라는 점에서 출연을 결심했다.”
강동원이 연기하는 주인공 성민은 어린 시절 동굴에서 미스터리한 알을 발견한 뒤 실종됐다가(어린 성민은 아역배우 이효제가 연기한다) 어른의 모습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성민은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든 것이 정지된 시간 속에 갇혀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한 채 외롭게 살아온 인물이다. 영화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장치들이 많지 않다 해도 그런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서는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어떤 것들이 있었다고 강동원은 말한다. “십년 넘는 세월 동안 산에서 혈혈단신으로 살다가 돌아온 사람의 느낌은 아니었으면 했다. 멈춰진 시간 안에서 누군가와 소통을 하지 못했을 뿐 지적인 능력은 어른으로 성장하는 소년들의 수준과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소년성을 가지고 있되 너무 소년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할까.”
이재용 감독의 <두근두근 내 인생>(2014)에서 조로증을 앓는 소년의 아버지로 출연한 적은 있지만, 강동원이 보호해야 할 존재가 아닌 동등한 조건의 상대 캐릭터로 아역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건 <가려진 시간>이 처음이다. 그는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 신은수로부터 자신의 데뷔 적 모습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첫인상은 굉장히 시크했다. (웃음)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니고 낯을 좀 가리더라. 나도 현장에서 먼저 살갑게 말을 거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은수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슛 들어가면 클로즈업이 너무 좋은 거다. 일단 흡인력 있는 마스크를 가지고 있는 데다 카메라 앞에서 쭈뼛쭈뼛거리지 않고 생각보다 훨씬 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 어른처럼 보이려 하지 않는 점도 좋더라.”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배우 강동원은 세편의 영화- <검은 사제들> <검사외전> <가려진 시간>- 를 동갑내기 감독들(장재현, 이일형, 엄태화)과 연달아 작업했다. 이건 흥미로운 우연이기도, 늘 고여 있지 않고자 하는 배우 강동원의 신조와도 맞닿아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데뷔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선배님들이 만들어놓은 좋은 길로만 가고 싶지 않다고. 당연히 재능 있고 좋은 감독님들과 작업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세대 영화인들만의 장점과 매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후발주자로서 더 열심히 해야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그의 올해 목표는 ‘가장 흥행적으로 성공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욕심은 있는데 공유 형이 버티고 있어서…. (웃음) 형을 잡아야 하는데, 하하하!” <가려진 시간>과 <마스터>, 올 상반기의 <검사외전> 이후 아직 두편의 영화를 개봉 대기 중인 배우 강동원의 야심찬 출사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