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건은 개별 사건이 각각의 유형을 띠고 있어 대응방식이나 이후 상담과정도 피해자의 입장과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게 당연하다. 그런 만큼 성범죄를 범주화, 유형화하는 건 자칫 피해 대상을 타자화할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여기서는 영화계 내 성폭력 사례들에 대한 법률적인 대응 방안을 소개하려 한다. <씨네21>을 통해 들어온 제보(es@cine21.com)와 피해자들을 직접 취재한 내용을 취합하여 법률 자문을 거친 후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 살펴보기 위해 세 가지 사례로 재구성했다.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의 권리를 법이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를 아는 게 성범죄 예방의 첫걸음이다.
1. “A는 미술부 막내로 들어가서 첫 현장을 경험했다. 뒤풀이 술자리에서 연출부 B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섞어서 앉자고 제의했고 여자 스탭들이 사이사이에 끼어 앉았다.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B는 A에게 몸을 바짝 밀착하면서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고 허리를 감싸거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 등의 신체 접촉을 하면서 ‘살이 쪄서 허리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B는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라는 요구를 A가 거절 했음에도 등 뒤로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양손으로 A의 어깨를 주물렀고, A가 온몸에 소름이 돋고 혐오감마저 느껴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갑자기 감독이 불쾌한 언사를 했고 미술감독은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했다.”
▶▶ 성희롱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여 또는 업무 등과 관련하여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즉 성희롱은 ‘그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하여’ 이루어질 것을 요하는데, 가해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 혹은 업무 관련 이야기를 나누거나 업무 관련 활동을 위한 만남에서 이어지는 술자리 등도 업무 관련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으므로 회식 장소, 야유회, 출장지 등 사례에서도 성희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사례의 경우에 B가 회식 장소에서 A의 신체에 대한 평가를 하고 허리나 허벅지 등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거나 안마를 강요한 행위, 몸을 밀착하면서 술을 따르도록 강요한 행위 등으로 인해 A가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느꼈다면 성희롱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 A나 피해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혹은 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여 조사 및 구제를 받을 수 있으며, A가 근로자인 경우에는 지방고용노동지청 등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희롱 가해자의 육체적 행위 부분은 사안에 따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성폭력처벌법 제10조 제1항) 또는 강제추행(형법 제298조)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고소가 가능합니다. ‘추행’이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하고, 추행에 있어 신체부위에 따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어깨를 주무른 행위를 추행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가 있으므로 해당 사례에서 A는 추행을 이유로 B를 고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스탭 A는 영화현장에서 남자친구 B를 만났다가 헤어졌다. 이후 B와 다른 현장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영화 스탭들이 자신과 B의 성관계나 사생활을 다 알고 있었다. 알고 보니 B가 술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길 퍼트린 거였는데, 심지어 감독을 포함한 다른 스탭들이 그 자리를 계기로 여성 스탭들의 성적 매력에 대한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른 별명을 붙인 후 빈번하게 그 별명으로 현장에서 불렀다. 이에 A는 회의에서 문제를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주변에서는 농담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불만과 질타가 이어졌고, 갈등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이번 영화에서 빠져야겠다는 통지를 받았다.”
▶▶ 외모나 신체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를 하는 행위, 성적인 사실 관계를 묻거나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 등과 같은 언어적 행위도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 사례에서도 동료의 성적인 소문을 유포한 행위,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직원에 대한 성적 발언을 한 행위, 사업주가 성희롱을 당한 직원에 대한 조사 및 보호조치를 미흡하게 한 행위 등을 성희롱으로 인정한 바 있습니다. 해당 사례의 경우 B가 공공연히 A와의 성관계 사실을 말한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할 뿐 아니라, 그 발언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될 가능성이 있고 A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인정된다면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 스탭들의 성적 매력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른 별명으로 현장에서 호칭한 행위는, A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추상적 판단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 모욕죄(형법 제311조)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사업주가 성희롱 피해에 대한 조사 및 보호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A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준 행위 등도 성희롱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A가 근로자라면 가해자에게 징계나 이에 준하는 조치 등이 없는 점, 성희롱 피해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불리한 조치를 받은 점 등에 대해 지방고용노동지청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으며, 고용상 불이익을 받은 점에 대하여는 고소도 가능합니다(남녀고용평등법 제 37조 제2항 2호).
3. “최근 영화계 성폭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면서 새로 들어가는 현장에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지 문의했다. <걷기왕>의 자발적 성희롱 예방교육 이야기도 들어서 ‘우리는 그런 것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피곤하게 만들지 말라는 핀잔만 들었다. 영화 촬영현장에서는 이와 같은 교육을 실시하는 곳이 없는지. 제도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상시근로자를 1인 이상 사용하는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 하고 근로자가 안전한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직장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교육을 연 1회 이상 실시하여야 합니다(남녀고용평등법 제13조). 예방교육에는 성희롱 관련 법령, 해당 사업장내 성희롱 발생 시의 처리절차와 조치기준 등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다만 상시 1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 사업주 및 근로자 모두가 남성 또는 여성 중 어느 한 성(性)으로 구성된 사업의 경우 교육자료 또는 홍보물을 게시하거나 배포하는 방법으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성희롱 예방교육의 의무가 있음에도 그러한 교육을 하지 않은 자에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따라서 위 의무가 인정되는 사업장인 경우에 예방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면 누구든 익명으로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어 사업주에게 법적 의무가 있음을 인지시킴으로 써 예방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촬영현장에 ‘근로자’로 인정되는 사람이 몇명인지에 따라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하는 법적 의무가 있는지, 그 의무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달라지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예방교육의 의무가 없다고 하더라도, 노동조합이나 영화인모임 등 단체 차원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현황 등을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법 등을 활용하여 각 현장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것을 촉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