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오쓰카 에이지의 책들
2016-11-30
글 : 김일림 (대중문화 연구자)

이론서, 비평서, 실용서, 만화까지, 오쓰카 에이지는 전세계에 100권 이상의 책을 펴냈다. 이토록 왕성한 에너지를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인정하지 않는다. 스승으로 삼고 있는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와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가 워낙 괴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오쓰카 에이지는 만주에서 귀환한 공산당 출신 부친을 따라서 도쿄의 차별부락에서 자랐다. 중국인과 재일 조선인이 늘 함께였다. 마이너리티 의식은 세계인식의 바탕이 되었다. 성인이 된 후 30년 이상 안정된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생활비는 만화 원작을 써서 벌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비평으로 쓰곤 했지만 돈은 벌지 못했다. 시종일관 권위에 저항해온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인인 된 지금은 자신을 스스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리기도 한다.

<언러키영맨>

사실 오쓰카 에이지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본주의에 동원되기도 한다. 쿨재팬을 비판하지만 본의 아니게 쿨재팬을 확대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비판하면서 보수적인 국립연구기관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 몸담고 있는 것도 모순된다. 그러나 쿨재팬의 중심에서 쿨재팬에 일갈하는 것처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대중문화 연구가 국수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내고 있다. 가령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12세기에 시작되었다는 전통 기원설을 실증적 자료에 근거해 논파해온 것도 그다.

현실참여도 활발하다. 10여년 가까운 법정투쟁 끝에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이 위헌이라는 판례를 만들었다. 그 소송과정을 단행본으로 펴냈다. 천황제를 비판하는 책을 연이어 내고, 재일동포의 억울한 사건을 다룬 만화도 자비로 발표했다. 호응은 거의 없다. 한국에 출판된 그의 저서는 약 51권. 만화책 시리즈를 제외하면 약 9권이다. 대부분 만화 작법과 스토리 작법을 다루는 실용서다. 이론서와 비평서가 번역이 안 된 건 아쉽지만 ‘이야기’는 그가 집중하는 키워드다. ‘이야기’라는 키워드로 한국에 출판된 그의 저서들은 압축된다.

<사랑하는 민속학자>

이야기의 인과율

한국에 출판된 대표적인 저서는 <이야기 체조> <이야기의 명제> <캐릭터 소설 쓰는 법> <캐릭터 메이커> <스토리 메이커>. 이 책들은 일정한 훈련을 거치면 누구나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다는 전제로 집필되었다. 그에 의하면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집중하는 것은 현실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현실참여다. 9·11, 아프카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할리우드영화의 문법대로 전개 되었다. 현실이 엔터테인먼트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간다. 그래서 이야기는 현실을 재구축하는 인과율이다. 한국에 출판된 일련의 책들은 이야기에 구조가 있고, 이야기의 인과율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야기의 문법을 익히면 현실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세계를 인식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속죄하는 성자>

그가 유독 ‘이야기’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또 있다. 1980년대 후반 도쿄·사이타마 연쇄 유아납치 살해사건의 범인인 미야자키 쓰토무를 변호하면서다. 이 사건은 오타쿠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범죄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지만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착목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놓는 이야기의 형식성을 지녔을 때 자기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현실을 재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범죄 또한 줄어들 것이다. 곧 한국에서 발행되는 문화이론 계간지 <문화/과학> 2016년 겨울호에 그가 기고한 <범죄소년문학론>이 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의 구조는 ‘갔다가 돌아오기’. 한국에 출판된 책들은 모두 이 명제에 바탕한 방법론이다. 선정우와의 대담집으로 출판된 <오쓰카 에이지-순문학의 죽음, 오타쿠·스토리텔링을 말하다>는 스토리와 문학을 주제로 삼지만 현실에 대한 발언이 강하다. 그는 근대를 인류가 아직 달성하지 못한 목표로 보고, 개개인이 합의를 통해 공공성을 구축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요컨대 한국에서 출판된 책에서 오쓰카 에이지는, 이야기에는 구조가 있으며 그것을 누구나 이해하고 직접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본인이 어떤 논리 구성을 사용해서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가를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논거로 삼고 있는 취향의 틀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인과율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세계는 마치 이야기처럼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가 직접 나섰다. 한국에 출간된 스토리, 캐릭터, 만화 창작 실용서는 이런 배경에서 집필되었다.

<괴담전후>

국내 미출간 도서들

유감스레 그가 아끼는 저서는 모두 한국에 출판되지 않았다. 만화로는 <언러키영맨>(アンラッキーヤングメン), <쿠데타>(クウデタア), <사랑하는 민속학자>(恋する民俗学者)를 아끼는 작품으로 손꼽는다. 19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쓴 <속죄하는 성자>(贖いの聖者)도 빠질 수 없다. <속죄하는 성자>는 1979년부터 1980년에 걸쳐서 일본에 발생한 신앙집단‘예수의 방주’를 매스컴이 공격한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픽션이다. 종교란 무엇인지를 묻는 작품으로, 아내인 만화가 시라쿠라 유미와 함께 작업했다. 한편 <쿠데타>는 고마쓰가와 사건으로 알려진 재일 조선인 이진우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오쓰카 에이지는 만화가를 직접 고용해서 <쿠데타>를 인터넷에 연재했다. 한국에 꼭 알려졌으면 하는 작품이다.

<버려진 아이들의 민속학>

만화 이외에 아끼는 책은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와 관계된 저서들. 예컨대 메이지 문학에 대한 비평인 <괴담전후>(怪談前後), <버려진 아이들의 민속학>(「捨て子」たちの民俗学), <공민의 민속학>(公民の民俗学) 등이다. 그에 의하면 민속학은 요괴나 옛날이야기를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구승, 구술 자료를 엄격하게 조사해가는 역사학이다. 민속학은 공공성을 가능케 하는 개인, 퍼블릭(public)의 공민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옛날이야기나 전설, 요괴 연구로 민속학에 접근하는 것은 민속학을 타락시키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 최근에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방법론에 주목하여 노동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신간 <감정화하는 사회>(感情化する社会)에 언급된 ‘이야기 노동론’이다.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이 주류였던 1970~80년대 그는 굳이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과 경제관의 한계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문화기호론에 주목했다. 그러나 문화기 호론이 주류가 된 지금, 마르크스주의에 눈돌리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노동과 소외는 사회문제다. 사회주의국가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지나간 문제로 간주하는 시선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편 <감정화하는 사회>는 천황제를 감정노동과 결부시킨 흥미로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윤리적 공동체를 말한다.

<감정화하는 사회>

오쓰카 에이지는 ‘이야기’를 키워드로 방대한 사회문제와 대중문화를 압축하고 또 확대하는 발화자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집필활동은 운동이자 실천이며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