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감독들이 돌아왔다. 개봉 2주차인 <미씽: 사라진 여자>의 이언희 감독과 12월14일 개봉하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홍지영 감독의 귀환은 반갑고 기꺼운 일이다. 극장가에서 여성감독이 연출한 상업영화가 2주차의 짧은 간격을 두고 개봉한 적은 흔치 않다. <…ing>와 <어깨너머의 연인>을 연출했던 이언희 감독은 여성주인공의 스릴러 드라마를, <키친>과 <결혼전야>를 연출했던 홍지영 감독은 남성주인공의 멜로드라마를 들고 극장가를 찾았다. 두 작품이 다른 성별의 주인공들로 전혀 다른 장르의 문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은 여성감독이 한정적 장르만을 다룰 수 있다는 기존의 편견을 넘어, 개성에 따라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인공의 성별도 장르도 달랐지만 영화 속 여성이 그려지는 방식에 대한 접근은 비슷했다. 이언희 감독은 제작 과정에서 ‘아이를 가진 여성은 응당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과 싸우며 영화 속 여성들이 가부장적 시선에 왜곡되지 않도록 지켜냈고, 홍지영 감독은 원작 각색 과정에서 여성 캐릭터를 관계를 주도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만들어냈다. 영화 밖에서의 고민도 비슷했다. 이언희 감독은 여성영화란 이유로 투자가 되지 않는 <미씽: 사라진 여자>의 예산을 깎아야 했고, 홍지영 감독은 “여성감독으로서 꾸준히 작업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결국 작품으로 보여줘야만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작품이 선례가 되어 앞으로 여성감독 영화들의 토양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영화 안팎으로 긴 대화를 나눴다. 이언희 감독과의 인터뷰로 지면을 연다.
-<미씽: 사라진 여자>가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개봉 2주차, 박스오피스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1주일간 84만9692명이 들었다.
=내 영화 인생에서 최고의 성적이다. (웃음)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견이 많았고 투자에서도 난항을 겪은 데다, 언론 배급시사 전까진 자체 평가도 좋지 않았다. 완성도에 있어서 개인적인 아쉬움도 남아서 최악의 경우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다행스럽다. 단순히 흥행 성적이 잘 나와서라기보단 내가 의도하고 원하던 방향으로 이 영화가 읽히고 있다는 점이 무척 기쁘다. 배우들도 신나 있다. 엄지원, 공효진 배우가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는 ‘관객 500만명 공약’이 이루어지는 걸 정말 보고 싶다. (웃음)
-한국 사회 속 여성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다. 현재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의식이 첨예해진 상황에서 나온 영화라 더욱 뜻깊다.
=원래 인터넷을 많이 ‘눈팅’하는 네티즌인데, 영화를 찍으면서 한동안 못 보다가 지난해 말부터 보니 페미니즘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더라. 여성들이 용기 있는 발언들을 하며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고, 그 맥락에서 이 영화를 둘러싼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기쁘다. <씨네21>의 여성 영화인 기획 대담도 잘 읽고 있다. 더 살벌하게 얘기할 수도 있을 텐데 다들 자제하는 게 보여서 조금 아쉽기도 했다. (웃음) 지난 여성감독 대담 때 일정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미씽: 사라진 여자>가 대담에서 해줬을 말을 대신하고 있잖나. 이 영화는 속한 계층과 환경이 대비되는 두 여성의 삶을 교직하며 한국 사회 속 여성의 현 좌표를 찾아간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중국 여성 한매(공효진), 능력 있는 워킹맘이지만 전남편과 시어머니의 폭언에 시달리며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지선(엄지원)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으로서 처한 처지는 비슷하다.
=이 영화는 좋은 여자 대 나쁜 여자, 전통적인 여성상 대 현대적인 여성상의 대립을 그려내는 영화가 아니다. 지선이 한매보다 나은 사회적 위치에 있고 좋은 조건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지선이 한매보다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선 역시 여성에 대한 편견과 폭력적인 상황에 계속해서 부딪치지 않나. 이 이야기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외부환경에 좌우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지선도 되고, 한매도 될 수 있다.
-워킹맘, 외국인 이주여성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조사와 취재도 했나.
=주변에 널린 게 워킹맘이라 취재 대상이 많았다. (웃음) 한매의 경우도 많은 취재를 거쳤다. 예전에 한국인 남편의 폭행으로 사망한 베트남 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 남편이 한국말을 안 가르쳐줬는데, 그가 남편에게 쓴 베트남어 편지를 보니 문장력이 뛰어나더라. 모국어로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지적인 사람인데 언어를 알려주지 않음으로써 사회 밖으로 배제시키고, 인간으로서 인정을 해주지 않은 사례였다. 요즘도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은 달라지지 않았다. 조선족 여성에게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부탁했는데 처음엔 또 우리를 범죄자로 그리는구나 싶어서 화가 났지만 뒤로 갈수록 달라서 좋았다고 하더라. 여성 혐오뿐 아니라 외국인 혐오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었다. 지선이 차이나타운을 찾아갈 때 중국인들이 칼부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있나. (웃음)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건데 지선이 겁먹는 정도의 묘사면 충분했다. 대사도 욕이나 협박이 아닌 한국인은 없으니 가라는 내용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을 지우는 것도 인상적이다. 두 여성의 삶이 교차 되면서, 그들은 가해와 피해의 틀에서 벗어나 연민의 능력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릴러의 문법대로 선명한 이분법에 머물지 않고 연대로 확장해나간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편은 여자’인 영화를 찍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점은 투자가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다. 스릴러에선 확실한 악인이 있어야 하고 쾌감이 있어야 하니까. 대중에게 소구하기 위해 장르적으로 포장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했다. 이 영화의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에겐 좋은 영화겠지만, 그렇지 못한 관객에겐 재미없는 영화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전형적인 신파나 선악구도의 장르영화로 찍었다면 너무 고루한 영화가 될 것 같기에 일반적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영화에 악인이 없다. 유일한 악인이 있다면 ‘시월드’랄까. (웃음)
-맞다. 이 영화 속 시어머니들은 가부장적 체계를 깊이 내면화한 ‘명예남성’들이다.
=그런데 그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으면 오히려 너무 슬플 것 같다. 왜 그렇게 됐겠나.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아들밖에 없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학습되며 자라왔겠지. 결국 이 영화에서 나쁜 인물을 찾자면 사회인 거다.
-이 영화의 부제는 사라진 ‘아이’가 아니라 사라진 ‘여자’다. 모성보다는 여성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그들의 모성은 숭고하게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냉대와 편견 속에서 애착을 갖고 의지할 대상이 아이뿐이기에 발생하는 후천적인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모성에 대한 이야기로 오독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렇다. 한매가 아이에게 집착하는 건 특별한 모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매 인생에서 지키고 싶은 것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매의 모성을 찬양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엄지원, 공효진 배우가 정말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건 여성의 이야기였다. 내게 많은 힘을 준 이현미 편집감독님이 이 영화는 여성의 모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휴머니즘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 말이 와닿더라.
-감독님과 엄지원, 공효진 배우와 남성 스탭들 사이에 여성을 그려내는 방식에 대한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관련해서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 수준이다.
=그 토론의 과정 자체가 곧 영화의 주제였다. (웃음) 모성이 있는 여자 대 없는 여자, 즉 전통적이고 숭고한 여성상과 반성해야 할 현대 여성의 대립구도로 만들고 싶어하는 점에서 의견이 갈렸다. 우선은 지선을 반성해야 하는 인물로 설정해야 한다는 시작점 자체가 달랐다. 일 때문에 보모를 고용했다는 것이 반성해야 할 일은 아니지 않나? (웃음) 그들은 일을 우선하다 애를 잃은 엄마는 책임감과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지선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이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고 알고 있다.
=지선이 비호감으로 비칠 수 있다더라. 드라마 홍보사 직원이라는 연예인을 대하는 직업을 갖고 있고, 이혼했지만 의사 남편을 뒀었다는 점에서 허세가 있는 여자로 보일 수 있고, 애보다 일이 우선이라 보모를 고용했다는 점이 이기적인 여자로 보인다는 거다. 과연 그런가? 지선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는 여자다. 외주 홍보사 직원으로 치열하게 살고 있고, 그 와중에 애도 잘 키우면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왜 비호감일까. 애를 업고 일해야 호감이라는 건가. (웃음) 그러면서 애 엄마니 의상과 헤어를 수수하게 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염색을 한 헤어스타일이면 모유수유를 할 수 없다, 화려한 원피스는 입으면 안 된다 등등. 지선은 제작발표회 당일 사건이 터져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한벌만 쭉 입는데, 제작발표회 날은 보통 차려입으니 펀칭 디테일이 들어간 푸른 원피스를 입었다. 너무 야하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렇게 갔다. 사실 그 옷이 뭐가 야한지도 모르겠고. (웃음) 엄지원씨의 제안이었는데, 무장한 느낌도 아니고 점차 남루해지면서 사건의 전개를 잘 보여주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선 캐릭터를 비호감의 잣대로 검열하는 것은 결국 이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매 캐릭터와 관련해선 비호감의 검열이 없었나.
=모성을 갖춘 여성상으로 여겨지는 한매였지만, 그에게도 태클이 들어왔다. 한매가 현익과 함께 있을 때 로맨틱하게 찍자고 했는데, 아픈 애를 둔 힘든 엄마가 외간 남자와 다정하게 있다가 애를 돌보러 가는 게 비호감으로 보일까 우려하는 의견이 있었다. 왜 그가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비극적이어야 하나. 피해자 혹은 피해자 유족들도 밥을 먹고, 웃기도 하며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그들은 피해자이지 죄인이 아니다. 나는 한매에게도 그런 위안이 될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현장에서 엄지원, 공효진 배우가 큰 힘이 됐다고.
=든든했다. 배우들 오기만 목 빼고 기다렸다. (웃음) 두 배우와 함께 연출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장에서도 큰 힘이 됐고, 배우들 방에서도 같이 술 대신 떡볶이를 먹으면서 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깊게 나누곤 했다. (웃음)
-두 배우의 캐스팅도 한수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이 영화에서 캐스팅이 제일 쉬웠다! (웃음) 두 배우 모두 여성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깊었던 것 같더라. 각본 단계에서부터 떠올린 엄지원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줬는데, 이틀 만에 연락이 왔다. 얼마전 그가 “좋은 여성배우가 없다고 하는데, 정말 그게 없어서였을까. 역할이 없어서 쓰이지 않은 게 아닐까”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듯하다. 공효진 배우도 금방 답이 왔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의 드라마와 영화 선택 기준이 다르더라. 드라마에선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영화 취향은 좀 삐딱한 구석이 있다. (웃음) <미쓰 홍당무>(2008)나 <러브픽션>(2012)에서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어 한다. 예산이 많이 깎여서 개런티가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두 배우가 선뜻 출연해줘서 고맙다.
-제작 과정도 순탄치 않았는데, 여성영화라는 이유로 투자도 안 되어서 한참 고생했다고. 예산도 그 과정에서 깎인 건가.
=여성영화라 투자가 어렵다고 해서 예산을 낮춘 거다. 한 대형 투자·배급사에서 투자를 하기로 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엎어졌다. 대부분의 결정권자가 남성이니 그들의 취향을 따르게 되더라. 한 투자사의 여성 영화인이 이 영화를 무척 하고 싶어 했는데, 여성영화라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남성 대표의 말에 크게 실망해 이직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배우까지 캐스팅된 상태에서 오래 떠돌았고, 원래 예산에서 10억원이 깎였다. 관객수를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영화는 <세븐 데이즈>(2007)와 <화차>(2012) 정도가 맥시멈이었고, 그에 맞춰 제작비를 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미씽: 사라진 여자>가 잘됐으면 좋겠다. 이후에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개봉할때 좋은 사례로 남았으면 한다. 엄지원, 공효진 배우도 사명감이 엄청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성영화도 된다는 증명이 됐으면 한다는 공감을 나눴다.
-그만큼 극장가에서 여성영화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영화가 극장가에 잘 등장하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봤는데, 성별에 따른 사회적 학습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남성주인공이 디폴트인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라온 여성들은 남성 캐릭터에 이입해서 볼 준비가 되어 있는데, 남성은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인 순간 여자 이야기, 마이너한 영화로 인식하며 진입 장벽에 부딪히는 거다. 여성은 남성 중심적 세계를 이해해야 살아남는 거고, 남성은 그런 위협이 없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여성 영화인 대담에 나오지 못한 게 아쉽다. 여성 이슈에 대해 못다 한 말들을 풀어보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 시절, 남자 동기의 반대로 한번도 촬영과 조명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늘 연출팀과 미술팀, 동시녹음팀만 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는데, 결혼을 하고 사회에서 요구받는 역할이 생기면서 불합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내 조모 제사엔 안 가도 되는데 시댁 조모 제사에는 가야 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이 영화를 준비할 때 어떤 남성 영화인이 내게 “감독님, 남편한테 밥 안 해주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에 으레 ‘나 보기보다 그런 여자 아니야’라고 항변해야 할 것 같은 관습적 분위기가 싫더라. (웃음) 집에 들어와서 바로 대사 하나를 썼다. 박 형사가 지선의 전남편에게 “이 여자 정말 대단하네. 결혼하고 아침밥도 못 얻어 잡쉈죠?” 하는 대사였다. 써놓고 너무 폭력적인 대사로 느껴져서 삭제하긴 했지만, 여자들은 항상 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참고로 말하면 우리 부부는 남편이 아침밥을 한다. 나는 원래 아침을 먹지 않았지만 그는 아침을 챙겨먹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사람이 하는 게 맞고, 역할에 대한 강요는 옳지 않다. 요즘 나의 개인적 목표는 책임감을 덜자는 거다. (웃음)
-<…ing>(2003)부터 <어깨너머의 연인>(2007)과 세번째 장편 <미씽: 사라진 여자>까지 장르는 다르지만 모두 두 여성이 주축이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장르보단 인물 자체에 관심이 있다. 사건의 외적인 세기보다는 인물 안에 정서, 동기가 중요하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영화를 봐도 그런 힘이 느껴지지 않나.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된 걸까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인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집중하곤 한다. 그중에서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크고, 나 자신도 여성이니 여성이 주축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덧붙이자면, 이번 영화를 하면서 악인, 선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캐릭터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한 남성 시나리오작가가 나에게 여성 혐오적 캐릭터를 등장시켜도 되냐고 묻던데,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물들을 세상에 없는 존재로 치부하는 게 더 이상하니까. 단지 영화가 그 캐릭터를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차기작은 어떤 이야기인가.
=두개의 아이템이 있는데, 하나는 내가 못 가진 권력을 휘두르는 센 여자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다. (웃음) 최근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서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엄지원 배우가 요주의 그분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웃음) 물론 농담으로 나눈 이야기지만, 여성배우들의 센 누아르, 스릴러에 대한 갈증은 다들 비슷하다.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는 뺨 한대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미는게 아니라 그만큼 돌려주는 영화라 좋았다. 그처럼 당하지 않고 사는 여성 캐릭터들을 그려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