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멜로는 내게 맞는 옷이지만 장르적으로 다양한 영화 만들고 싶다” - <당신 , 거기 있어 줄래요> 홍지영 감독
2016-12-14
글 : 이화정
사진 : 최성열

30년 전의 나를 만나는 시간 여행.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독특한 구성과 흥미로운 전개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원작으로 한다. 활자가 주는 흥미로움과 달리 1985년이라는 과거와 30년 후의 현재를 한 화면에 구현해야 하는 작업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김윤석, 변요한이라는 두 남자이지만, 실은 ‘수현’이라는 한 남자가 펼치는 여정을 통해 영화는 그들 각자의 인생을 돌아본다. 안타깝게 놓쳐버린 첫사랑 연아(채서진)를 구하기 위한 결정과 선택 속, 서로에게 과거이자 미래인 두 남자의 판단과 결정은 멜로를 바탕으로 하되 끊임없는 긴장과 스릴을 안겨준다. 30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한 화면에 불러오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키친>(2009), <결혼전야>(2013)에 이어 또 한편의 멜로영화를 연출한 홍지영 감독은, 시간 여행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시장에서 소외된 멜로 장르에 대한 관심 또한 환기되길 기대한다.

-장편으로는 <키친> <결혼전야> 이후 세 번째다. 세 번째 장편이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한두 작품 할 때 실수한 부분이 있다. ‘검증되지 않았다’ 같은 말이나 변명은 이제 안 통한다. 나 스스로에게 그런 부담과 책무를 준 작품이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휴차 때 <곡성> <아가씨>를 봤다. 영화 찍으면서 보는 작품들은 다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작품은 나에게 잘 맞는 옷을 입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워낙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영화화하기 힘든 요소들이 꽤 많은 작품이다. 그 선택부터 궁금하다.

=출간 당시에 이 책을 읽었는데 흥미롭더라. 구성도 독특하고, 작가가 영화 마니아란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적인 묘사들이 많았다. 내 인생의 책은 되지 않겠지만 기존과 다른 색깔의 소설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러다 10년이 지나 영화화 제안을 받은 거다. 원작이 가진 탄탄한 구성이 오히려 부담이었지만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소설이 영화화될 때 압축되고 유실되는 것들은 반드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굳이 그 문제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고 봤다. 그럴법한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판권 구매에만 2년이 걸려 그게 더 힘들었다. (웃음) 유럽쪽 작품들은 그런 부분에서 더 접근하기가 힘든 편이다.

-영화화하려고 했을 때 봤던 원작의 강점과 그걸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타임슬립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만난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다. 10개의 알약으로 9번을 만나게 되는데, 어리바리했던 첫 만남을 지나 점점 시간 여행을 받아들이고, 사건이 일어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그걸 극복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감정의 흐름이 생기겠더라. 그 과정에서 특히 사랑하는 여성을 매개로 한 현재 수현(김윤석)의 불안한 마지막과 과거 수현(변요한)의 불안한 시작을 함께 나누는 장면이 중요한 지점이었다.

-동일 인물이지만 시차로 인해 마치 현재의 수현이 과거의 가이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과거의 수현은 현재의 수현이 잃어버린 것들을 상기하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시간 여행은 이미 영화에서 많이 사용됐고 신선함을 잃기도 했다.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 하는 시간 여행보다 그 여행을 통해 요동치는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데 주목했다. 같은 상황이고, 같은 인물이지만 현재와 과거가 서로 다른 입장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30년 차이라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은 관계로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둘의 관계가 대등하기를 바랐다. 그런 면에서 이 만남을 통해 더 큰 위로를 받은 건 현재의 나이 든 수현일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의 ‘두 남자’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결국 ‘한 남자’의 이미지를 주어야 했다. SF물인 <루퍼>(2012)에서 현재와 미래의 조셉 고든 레빗과 브루스 윌리스가 대치하던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그 작품에서는 조셉 고든 레빗이 브루스 윌리스와 닮아 보이려 코에 고형물을 넣기도 했다.

=일단 외모도 외모지만 키가 맞아야 했다. 김윤석씨가 먼저 캐스팅됐는데, 변요한씨와 키가 잘 맞더라. 무엇보다 둘 다 눈이 강렬한 스타일이다. 눈이 인상에서 제일 중요하지 않나. 말투나 손짓, 이런 것들은 배우들이 비슷하게 표현해냈다. 변요한씨의 연기가 정말 좋은 게, 미래의 수현이 낯선 사람인 만큼 촬영 내내 김윤석씨와 그 영역을 유지하며 거리를 두더라. 외모의 싱크로율보다 두 배우가 서로 밀리지 않고 맞서는 에너지가 있다면 변요한씨의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하겠구나 싶었다.

-김윤석은 앞서 <쎄시봉>(2015)에서 멜로 연기를 선보인 적이 있지만 <도둑들>(2012), <해무>(2014),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등에서 보아온 ‘센’ 이미지가 익숙하기도 하다.

=만나보니 너무 근사한 남자더라. 강성처럼 보이는 모습 뒤에 부드럽고 섬세한 면이 있다. 단도직입적이라 처음 5분 정도 적응이 필요하지만 내면은 전혀 다르다. (웃음) 특히 시나리오 분석을 많이 해오는 데다 연극 연출 경험이 많아서인지 공동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연출자가 보기에 그게 지나친 간섭이냐, 넘치는 관심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게 넘치는 관심이라고 봤다. 촬영뿐만 아니라 편집까지 같이 고민했고, 그런 과정이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나 역시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채울 수 있는 존재다. 한편으로는 이번엔 김윤석이라는 배우가 내 (전공) 장르인 멜로로 초대된 거니 내가 이 배우의 다른 모습을 끄집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 여행을 구현하는 데 특별한 장치를 쓰지 않았다. 10개의 알약과 자연스러운 시공간 이동이 있을 뿐인데, 어떤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었나.

=<리스본행 야간열차>(2013)처럼 현재와 과거의 경계가 없는 것이 좋고, <어바웃 타임>(2013)처럼 아날로그적인 분위기를 원했다. 이야기가 설득되면 장치는 쉽게 갈 수 있다. 김윤석씨와 가장 많이 고민한 게 현재의 수현이 두 번째로 과거의 수현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첫 번째는 당황하겠지만, 두 번째는 어떤 어조일까. 그냥 믿는 걸로 가자. 왔네, 와버렸네 하는 마음의 톤을 잡았다.

-반면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하는 도입부에서 이 영화의 판타지적 요소가 상당 부분 설명된다. 원작에서 이 부분이 짧게 묘사된 반면, 의사 수현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한 노인으로부터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해주는 알약을 얻게되는 과정이 영화에서는 강렬하게 묘사된다.

=초반 3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의 가이드로 낯선 곳의 노인과 수현의 선문답이 중요했다. 캄보디아와 타이에서 촬영했는데, 캄보디아 촬영은 특히 어려웠다. 촬영장소가 다 유적지인 관계로 승인이 굉장히 까다로웠다. 노인은 현지에서 후보를 추천받고 캐스팅을 했는데, 문제는 타이 배우라 캄보디아어가 전혀 안 됐다. 대사 타이밍을 모르니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장면을 헬기 주유시간 등을 빼고 몇 시간 만에 찍었다. 시간은 없는데 날이 너무 더워 카메라가 과열돼서 중간에 스톱되기도 했다. 그때가 첫 촬영이자 나로서도 처음 경험한 해외 촬영이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공간의 변화도 중요한 설정이었다. 공간의 변화로 시간의 차이도 설명되어야 했다. 원작의 플로리다(예순의 엘리엇)-샌프란시스코(서른의 엘리엇)를 서울과 부산으로 설정했다.

=두 수현 사이에 시간의 차이만큼 거리감도 필요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이 찾아봤는데, 한국에 그런 시대적 변별력을 가진 곳이 정말 없더라. 부산을 설정한 데는 그런 이유도 컸다. 수현의 집이 주 공간이었는데, 부산 망미동에서 찾았다. 외관을 거기로 정하고, 과거는 어둡고 짙은 갈색 배경으로 하고, 딸 수아(박혜수)와 같이 사는 현재 수현의 집은 화이트톤으로 만들었다. 특히 집의 구조와 자재에 신경을 써서 공간을 연출했다. 광안리도 주요 공간인데, 광안대교가 있느냐 없느냐, 서핑을 하느냐 안 하느냐도 신경써야 했다. 그리고 한자신문이나 사전, LP판, 공중전화 같은 것들을 모두 1980년대 분위기에 맞춰 사용했다.

-영화가 끝난 후 밥 딜런의 <Make You Feel My Love>와 김현식의 노래가 맴돈다. 80년대 정서를 보여줄 수 있는 음악들이 중요하게 사용된다.

=O.S.T 저작권료로 꽤 사용했다. 원작이 보여준 아름다운 풍광을 음악으로 대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현뿐만 아니라 연아, 그리고 친구인 태호까지 시공간의 차이로 헤어져야 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역할을 음악이 해낸다. 그리고 젊은 수현이 미래의 수현에게 ‘방문요망’이라고 의사를 전할 때 <백 투 더 퓨처>에서 마이클 J. 폭스가 부른 <Johnny B. Goode>를 사용했는데, 이건 그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시간 여행을 그린 영화 중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마침 이 영화가 우리 영화의 배경인 1985년에 개봉하기도 했다.

-연아는 결국 두명의 ‘한 남자’를 이어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기존의 사랑받는 여성상과 달리 80년대가 배경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관계를 리드하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원작에서는 연아 역의 인물이 수의사다.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계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남자친구인 수현과는 다른 계층으로 그리고 싶어서 연아를 조련사로 설정했다. 제인 구달처럼 동물 친화적인 바탕을 가진 사람이자, 두 남자와 상관없는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싶었다. 85년에 27살이면 당시로는 ‘노처녀’라는 소리를 듣는 나이인데 ‘나 네 애 낳고 싶어’라고 하고, 연락이 없는 남자에게 찾아가 강아지를 키워달라고 하는 등 강한 여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자기 삶에 주관이 있고 나보다는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아는 여성이다. 항상 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부드럽지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인간관계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첫사랑 연아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간 남자라는, 남녀간의 멜로가 중심축이지만 친구와 우정,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 등으로 확장된다.

=이게 결국 내가 영화를 만들 때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한데 나는 어떤 장르를 택해도 멜로적인 지점이 있을 것 같다. 멜로라고 하면 남녀를 생각하는데, 모든 관계에서 그걸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옴니버스영화 <가족시네마> 중 <별모양의 얼룩>도 실종된 딸과 엄마의 끝나지 않는 멜로라고 봤다. 그리고 지금 시장 구조에서는 더이상 단순 멜로로는 승부수가 안 난다. 멜로를 만들고 좋아하는 감독으로서는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거다. 시간 여행이라는 장치는 관객과 영화를 이어주는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단순 멜로에서 벗어나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도전의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차기작에 대한 생각,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다.

=멜로영화가 내게 맞는 옷이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늘 해왔던 것만 잘하지는 않는다. 장르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하고 싶다. 여성감독으로 꾸준히 작업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보여줄 건 작품뿐이다. 작품이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약점이 영화를 못하는 걸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다른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번 영화는 메이저 투자사와는 처음 함께해본 작품인데, 혹여 흥행을 못하더라도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싶다. 다양한 창이 있으니 너무 한정적으로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차기작으로 서사극에 관심이 있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인데 아직은 개발 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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