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존 버거 잠들다
2017-01-18
글 : 장영엽 (편집장)

미술평론가이자 사진이론가. 소설가인 동시에 사회비평가. 다정한 친구이자 뛰어난 이야기꾼…. 그를 수식하는 말은 너무도 많다. 그만큼 자유롭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는 뜻일 거다. 영국 출신의 지성 존 버거가 지난 1월2일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에세이와 시, 소설과 사진 등 다채로운 예술적 장르를 경유하며 개인과 세계의 유대 관계에 대해, 예술과 사회의 연결고리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라는 대표작의 제목처럼, 존 버거가 남긴 유산들은 우리에게 삶과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일깨워줬다. 살아생전 그가 누군가에게 글로 끊임없이 말을 걸었듯, 우리 역시 그에게 보내는 두편의 글로 작별인사를 대신하려 한다. 첫 번째 글은 이론가, 활동가로서의 존 버거에 대해 썼다. 두 번째 글은 존 버거의 글을 사랑해왔던 소설가 이지가 그의 소설에 바치는 에세이다. 이야기꾼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존 버거가 머물던 퀸시의 풍경.

“나의 안내자. 철학자. 친구. 존 버거가 오늘 아침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신은 이제 도처에 있네요.”(twitter.com/SimonMcBurney) 지난 1월2일, 영국 출신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진이론가,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살, 그는 프랑스 파리 근교 앙토니에 위치한 자택에서 고요하게 숨을 거뒀다고 한다. 존 버거의 죽음을 처음 알린 건 그의 친구이자 영국 배우 사이먼 맥버니였다. 맥버니가 SNS에 전한 존 버거의 죽음은 유저들의 공유 버튼을 타고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삶과 예술을 대하는 그의 관점과 태도에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버거에 대한 자신의 사적인 경험담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존 버거는 살아생전 “내가 보여주고, 말해왔던 것들은 당신 자신의 경험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경청하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런 존 버거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에 SNS는 최적의 플랫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이먼 맥버니의 말대로, 존 버거의 흔적은 도처에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더라도 그가 바꿔놓은 현대 예술의 패러다임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존 버거의 대표작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다. 1972년 존 버거와 프로듀서 마이크 딥이 만들고 에서 4부작으로 방영한 이 TV시리즈와 그 내용을 정리해 출간한 동명의 저서는 당대 예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TV시리즈의 도입부, 덥수룩한 머리에 복고풍 셔츠를 입은 매서운 눈매의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와 마르스>의 복제품을 커터칼로 거침없이 그으며 등장한다. 복제된 예술작품은 누구나, 어떤 목적으로든 사용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예술작품은 더이상 기존의 의미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이러한 그의 시각은 발터 베냐민의 저서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더불어 존 버거는 유럽 회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누드화가 여성을 일종의 구경거리로 대상화한다고 꼬집는다. “그녀는 그냥 벌거벗은 게 아니다. 그녀는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벌거벗고 있다.” 여성을 관음적으로 보는 시선들, 그리고 그 시선이 의미하는 젠더적 권력에 대한 그의 비판은 페미니즘 이슈가 전 지구적인 문제로 부상한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제기를 통해 존 버거는 영국의 보수적인 미술학계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어오던 미술작품 감상법에 문제를 제기한다. 위대한 예술작품과 평범한 예술작품을 가르는 일종의 정답과도 같은 감상법은 없으며, 예술작품을 보는 데에는 하나의 방식(The Way of Seeing)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Ways of Seeing)의 감상법이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술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관람자로서의 우리는 모두 얼마간 존 버거의 이론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 출연한 존 버거.

행동하고 저항하는 지성인

‘저항’은 존 버거의 일생을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출간하기 이전인 1940년대 후반부터, 그는 <뉴 스테이츠맨>이라는 영국의 좌파 주간지에 현대미술에 대한 논쟁적인 글을 기고하며 영국 미술계에 파란을 불러일으켰다. 1960년 <영원한 붉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그의 첫 에세이(존 버거는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명명했으며 정치적 참여에 대한 선언의 의미로 이 제목을 취했다고 말했다)는 당시에 그가 주간지에 기고했던 글들을 묶어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잭슨 폴록 같은 현대미술계의 거장을 지목하며 “그가 속해 있는 문화의 데카당스 너머를 보거나 생각하는 데 실패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예술의 역할을 정치, 사회적인 범주의 문제로 확장했다는 점은 미술평론가로서 존 버거가 이룩한 거대한 성취라 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이유는 존 버거의 비평이 현재라는 순간의 중요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팔을 들고, 단식투쟁을 하고, 인간사슬을 만들고, 소리치고, 글을 쓰는 것은 미래가 무엇을 품고 있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존 버거에게 기존의 관습적인 비평에 대한 저항은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더 나은 현실로 나아가기 위한 고민과 탐구의 연장선에 놓인 제스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행동하고 저항하는 지성인’으로서 존 버거의 행보는 특히 스위스 출신의 사진작가 장 모르와의 협업에서 두드러진다. 20여년간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적십자사의 사진가로 일해온 장 모르는 <행운아>(1967)부터 <예술과 혁명>(1969), <제7의 인간>(1975),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1), <세상 끝의 풍경>(1999)까지 존 버거와 다섯권을 함께 작업했다. 장 모르의 사진과 존 버거가 집필한 텍스트의 비중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는 이 저서들은 사진과 글이라는 각기 다른 예술의 수단이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며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제7의 인간>은 존 버거가 “내 많은 저서 중 한권만 선택하라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삶과 철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이 책은 스페인, 포르투갈, 터키, 그리스 등 개발도상국 출신의 유럽 이민노동자가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이 살던 터전을 떠나 서유럽 선진국가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귀국하기까지의 고된 삶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장 모르의 카메라에 담긴 노동자들의 고단한 눈빛과 존 버거가 포착한 노동자들의 공허한 내면은 <제7의 인간>(유럽의 육체노동자 7명 중 1명이 외국 출신의 이민노동자라는 뜻의 제목이다)이 단순히 사회학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본주의적 경향을 확고하게 담아낸 작품이라는 걸 알게 해준다. 존 버거의 이 문장처럼. “그는 이 마을을 평생 동안 알고 있었다. 떠나는 순간에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강도는 거의 그의 의지력만큼이나 강력하다. 마을을 떠남으로써, 그는 스스로 그런 느낌을 자초한 것이다. 그에 따라 일어나는 감정의 혼란은 많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가 돌아올 때 그의 삼촌은 살아 계실까? 작별을 고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따르는 일이다.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지 패배해서 돌아올지 누가 알 것인가? 도시가 베풀어주는 것은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들에게지,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건 아니다.”

<제7의 인간>은 존 버거가 소작농들의 삶에 주목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기도 한 작은 마을 출신의 사람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이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외딴 마을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밭을 일구는 소작농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머물며 육체노동의 미덕을 체감하게 된다. “인간의 조건과 노동력 사이의 관계는 쉽게 잊혀지곤 한다. 나에겐 항상 이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존 버거는 전원의 풍경 속에 스며든 노동의 가치를 경외하고 사랑했다. “나는 소작농들처럼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일군 이 풍경은 내 에너지의, 내 몸의, 내 만족과 불만족의 일부였다. 내가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저 풍경 때문이 아니라 내가 (이 풍경을 만드는 데) 참여했기 때문이다.” 존 버거는 아내 비벌리가 2013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알프스 인근의 프랑스 시골마을 퀸시에서 30여년을 머물렀다. <그들의 노동에 함께 하였느니라>(1991)는 알프스에서 그가 느꼈던, 예술과 동등하게 고귀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단상을 쓴 에세이다. 한편 전원에서의 생활은 동물에 대한 존 버거의 사유를 확장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본다는 것의 의미>(1980) 속 ‘왜 동물들을 구경하는가?’라는 챕터를 통해 그는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째서 동물을 바로 보는 데 실패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물학자들에게 고전이 된 이 책은 인간이 동물을 관찰하고 구경하기 위해 찾아가는 동물원을 인간/동물 관계의 무덤 같은 장소로 규정하며 다른 종족과의 소통의 가능성을 배제한 인간의 태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 존 버거와 틸다 스윈튼.

뛰어난 이야기꾼

여성과 이주노동자, 소작농과 동물. 존 버거의 일생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소외되고 쉽게 잊혀지는 존재들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만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고, 사라지지 않도록 날카로운 통찰력과 아름다운 문장력을 벼려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평론가 수전 손택과의 대화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야기는 구조 작업과도 같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존 버거를 담은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내려 한다. 퀸시에서 살아가는 존 버거의 모습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존 버거의 사계>에서, 존 버거는 20년지기 친구 틸다 스윈튼의 쌍둥이 남매들에게 산딸기를 따오게 한다. 산딸기는 세상을 떠난 그의 아내 비벌리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비벌리의 사진과 그녀를 위한 빈 의자를 곁에 두고 존 버거는 틸다 스윈튼의 자녀들과 산딸기를 먹으며 지금은 없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바통을 넘겨받을 누군가를 위해, 근사한 이야깃거리를 글로 남겨놓고 떠난 누군가가 있기에.

사진제공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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