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이 있는 남자. 박광현 감독이 <조작된 도시>에 안재홍을 캐스팅하며 원한 건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족구왕>(2013)에서의 날 보셨다고 했다. 의외성. 뭐든 못할 것 같은 친구들이 뭔가 제대로 해냈을 때의 쾌감. 데몰리션이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하셨다.” 안재홍이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준 인물들, 영화 <1999, 면회>(2012)의 재수생 승준, <족구왕>의 복학생 만섭,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의 대입학력고사 6수생이자 반백수인 정봉까지 모두가 일견 촌스럽고 사회 주류로부터 떨어져 있으며 어리바리해 만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승준은 친구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만섭은 가공할 만한 족구 실력으로 현실에 찌든 학내 분위기를 180도 뒤집는다. 몸 약하고 머리도 나쁜데 사회성까지 한참 떨어지는 정봉은 예상치 못한 데서 천재적인 집중력을 발휘한다. 안재홍은 평범한 듯 비범한 캐릭터에 누구보다 적역임을 꾸준히 증명해왔다.
닉네임에서부터 짐작이 가지만, <조작된 도시>의 데몰리션은 영화 특수효과팀 막내로 일하고 있는 평범한 청년이다. 같은 게임을 즐기는 팀 멤버로 권유(지창욱)를 알게 된 데몰리션은 곤경에 처한 권유를 구출하자는 여울(심은경)의 제의로 ‘실전’에 나선다. 일터에선 잡무를 도맡는 막내였지만 어쩌다 모인 오합지졸 아군에겐 이만큼 든든한 실력자도 없다. 무지막지한 마덕수(김상호) 패거리로부터 도망다니는 동안 “선배들 어깨너머에서 눈으로 익힌 기술”들을 십분 활용해 아군을 보호하는 것이 데몰리션의 주된 임무다. 정작 일하던 영화 현장에선 무엇도 주도적으로 이끌어본 적이 없는 “조수”였지만 “상황 속에서 나름 능동적으로 성장하면서 은근한 두근거림에 쾌감을 느껴가는” 인물이다. “성격적으로도 모험을 할 만한 깜냥이 안 되지만 두려우면서도 신나는 걸 감추지 못한다. (웃음)” 안재홍도 (<조작된 도시> 현장의 실제 특수효과를 담당한) 데몰리션팀의 어깨너머로 “키를 어디에 넣고 어떻게 돌리는지, 스위치 켜는 순서나 버튼을 누를 때의 긴장감” 정도를 배워두었다고 한다. “내가 시늉을 하면 ‘진짜’ 데몰리션팀이 ‘진짜’ 폭파를 해주었다. 파편 튀고, 굉음도 나고. 내가 정말 특수효과를 연출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 무서우면서도 재밌더라.”
<널 기다리며>(2015)의 차 형사, <위대한 소원>(2016)의 철없는 금수저 갑덕, <범죄의 여왕>(2015)의 고시생, 드라마 <굿바이 싱글>(2016)의 산부인과 의사 등 역할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해온 안재홍에게 있어 데몰리션은 처음으로 도전하는 장르성 짙은 액션영화 캐릭터이기도 하다. “직접 나서서 싸우고 때리는 것만이 액션은 아니잖나. 총 쏘고 매달리는 것도 액션이다. 나로선 처음으로 제대로 해보는 액션 연기라 무척 흥분되고 재밌었다. <족구왕>에서도 액션을 하지 않았느냐고? <족구왕>은 스포츠영화다. (웃음)”
안재홍은 장르와 배역은 물론 연기와 연출에도 벽을 두지 않고 종횡무진 중인 전천후 영화인이기도 하다. 직접 단편영화 <열아홉, 연주>(2014), <검은 돼지>(2015) 등을 연출한 바도 있지만 한동안은 연출 관련 계획이 없음을 전했다. 앞으로의 출연작 리스트도 흥미진진하다.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사극 <임금님의 사건수첩>(감독 문현성)과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다. <임금님의 사건수첩>에서 안재홍이 연기할 성실한 사관 윤이서는 조선의 왕 예종(이선균)을 만나 상식 밖의 일들을 경험하고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순하지만 실은 비상한 재주를 지닌 캐릭터. 현재는 “공연 중인 작품 <청춘예찬>(연출 박근형)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하지만, 벌써 곧 촬영에 들어갈 모 작품이 정해져 있다. “멜로의 주역”으로 등장한다고 귀띔하니 역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