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에게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홍상수 감독의 신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화 산업지 <스크린데일리>의 표현대로 ‘자기반성을 비튼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현실과 간발의 간극이 보여주는 묘미가 대단하다. 영화는 1부와 2부가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함부르크가 배경이다. 유부남 영화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 영희(김민희)는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에 사는 친한 언니(서영화)를 방문한다. 그녀와 이곳저곳을 다니며 주인공 영희는 시종일관 자기감정을 관찰하며 ‘흔들리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부와 2부는 슈베르트의 실내현악으로 연결된다. 2부는 1부와 시간의 흐름상 연장선에 있다. 2부는 영화가 끝난 뒤 주인공이 빈 영화관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이 방금 끝난 1부 영화를 본 듯 절묘하다. 귀국 후 강릉에서 주인공은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2부에서 두번의 술자리 중 영희가 보여주는 감정 변화는 실제 상황처럼 리얼하다. 대사들은 간결하고 짧아서,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경구 같다. 술자리는 관객도 함께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대화는 사랑의 열병을 관통하고 있는 이의 철학적, 실존적 고뇌를 주제로 한 토론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무겁지 않고 밝은 분위기다.
베를린국제영화제 후반에 선보였던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현지 평론가들에게 대체로 큰 지지를 받았다. 베를린 방송 <에르베베>와 <슈피겔온라인>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금곰상의 유력한 후보로, 배우 김민희를 여우주연상 후보로 점쳤다. 컬처 매거진 <치체로>는 “홍상수 감독이 말하듯 영화는 끝없는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강요에 대한 저항이다”라고 평했다. <스크린데일리>는 “영화는 어떤 답을 주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뜨겁게 논쟁되는 추상적 개념이지만, 홍 감독은 영희를 갈등 상황 속에서 해변에 혼자 남겨두고 해결을 제시하기를 거부한다”고 썼다. 독일 일간 <타게스 슈피겔>은 “배우와 감독을 둘러싼 가십을 모르더라도 대화 속에서 주인공의 쓰디쓴 고통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물론 영화는 삶을 꿰뚫지만 가벼운 서사만으로 실망과 자기기만의 감정을 감출 수 없다”고 평했다. 독일 일간 <타츠>는 “예측할 수 없고, 모순적이고, 항상 꾸밈없고 솔직한 (김민희의)연기는 연기자로서 대단한 성취다” 라고 평했다. 기자회견에는 홍상수, 김민희 외에 배우로도 출연한 박홍열 촬영감독, 마크 페란슨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참석했다.
-영화 속 인물이 계속 해변으로 간다. 해변이 어떤 매력이 있는가.
=홍상수_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마 나는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바다가 좋냐 산이 좋냐고 많이 묻는데 나는 바다가 좋다고 말한다.
-연기하기가 매우 어려운 역할이었을 것 같다. 촬영 당시 어떤 느낌이었나.
=김민희_ 감독님과 작업할 때 좋은 점은 항상 신선하고 좋은 기분으로 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매일이 즐겁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항상 집중해서 감독님이 쓴 것을 잘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서구에서는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대사에 ‘매력적이다’와 같은 대사가 왜 자주 나오는가.
홍상수_ 사람들은 외모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외모를 극복하고 내면적인 것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우리는 외모에 고착되어 있다. 가끔씩 그런 문제로 절망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냥 그렇다.
-영희가 친절했다가 어느 순간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장면들이 있다. 술의 영향은 아니었는가.
김민희_ 술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에서는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복잡한 감정이었다. 대사에 나와 있는 미묘한 감정을 잘 살리기 위해 촬영에 집중했고, 술은 마시지 않았다.
-줌과 줌아웃이 많다. 어떻게 촬영에 임했는가.
박홍열_ 홍 감독님의 영화에서 줌은 감독님의 주문에 맞춰서 움직였다. 카메라를 잡은 건 나지만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라 줌이 자연스럽게 움직여주는 것 같았다.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줌은 모든 테이크에서 다른데, 이번 영화에서는 줌이 자연스럽게 보일 때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영화에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가.
홍상수_ 어느 감독이나 자신의 영화에 자전적인 요소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내 작품도 그럴 것이다. 나도 내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의 이야기를 영화에 매우 많이 넣는다. 하지만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한 적은 한번도 없다. 내가 의식적으로 영화와 내 이야기에 거리를 두면 만족스럽지 않다. 내 이야기와 영화 사이엔 어느 정도의 밀착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전적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스토리가 내 이야기와 정말 같아지려는 찰나에 방향을 튼다. 비행기가 착륙하려던 순간 다시 떠서 날아가는 것과 같다.
-어떤 목적을 갖고 촬영했는가.
홍상수_ 내 영화는 계획하고 찍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 배우들과 스탭들이 만나서 촬영이 시작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나는 될 수 있으면 가능성을 많이 열어놓는다. 거기서 난 어떤 것들을 만난다. 그리고 질서를 잡고 작업한다. 나는 어떤 특정한 목적을 좇지 않는다. 내 머리 속엔 내가 하려는 어떤 효과, 영향 같은 건 있다. 소재는 주어져 있고, 로케이션을 보고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내 방식으로 이들을 관찰하고, 이를 연결해서 영화를 만든다. 책임감이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작업방식이 그냥 그렇다. 살면서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봐서 스토리 라인들이 자동적으로 저장되어 있다. 삶이 여기 있고 삶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물론 인공적 이야기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은 복잡하다. 조각(프래그먼트)들이 있으면 그 조각들 사이에 어떤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각 조각들은 그 안에 수많은 요소들을 갖고 있고, 그 요소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 한다. 균형이 맞을 때도 있고, 불균형할 때도 있다.
-홍상수 감독과의 촬영은 어떤 방식이었는가.
=마크 페란슨_ 홍 감독은 매일 아침 대사를 썼다. 스탭은 네명이었다. 오전 10시에 전화를 해서,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다 썼다고 하면 시작했다. 몇분 안에 대사를 익히고 외워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