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문화 콘텐츠별 특성 살린 지원책과 진흥원 필요하다” - 정의당 상임대표 심상정
2017-03-0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모든 게 긴박하게 돌아가서 오늘 예정된 일정을 하나도 진행 못했다.” 2월27일 국회 의원실에서 만난 정의당 상임대표 심상정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와 한숨을 고른다. 기자회견에서 심상정 후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박영수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하자 이를 강력 규탄하며 야 4당 대표-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했다. “지금까지 특검이 해온 것 이상으로 좀더 강력하게 밀고나가야 거리의 촛불이 바라는 적폐 청산을 할 수 있다. 특검 기간 연장을 국회에서 직권상정해야 한다. 합법적 테두리 내의 수사권 동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교체만 하면 모든 걸 다 하겠다고 하는데 정권 교체는 이미 9부 능선을 넘었다. 나는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골든타임이라고 본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이후 한국 진보 정당사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의 세 번째 대권 도전이다. “60년 묵은 기득권 정치를 종식하고 친노동 개혁정부를 수립하는 데 나의 모든 걸 던지겠다”는 각오다.

-차기 대선 주자들은 JTBC <썰전>,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의 시간을 갖고 있다. 그 자리에서 심상정 후보는 단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다.

=대선 후보 출마를 선언한 지 한달이 조금 넘었는데 그간 정의당이 중요 뉴스에서 다뤄진 게 손에 꼽을 정도다. 국회 교섭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언론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그나마 KBS, MBC가 면피용으로 다루는 정도다. 당원들이 자조 섞인 말로 ‘정의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때 열심히 하고 오히려 제5당으로 밀려났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할 정도다. 다른 대선 주자들의 절반만이라도 보도가 되면 좋겠는데 너무 답답하다. 그러니 정당한 압력을 좀 넣어 달라. (웃음)

-청와대가 사전 검열과 배제의 정책으로 영화계를 입맛에 맞게 통제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보나

=정상적인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치의 괴벨스가 한 일을 21세기에 자행했다. <다이빙벨>(2014)처럼 정권에 부담이 되는 영화는 배제하고 ‘국뽕’ 영화는 고무시키고. 국뽕 영화도 좋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 영화도 좋다고 하자. 중요한 건 이들 영화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반듯한 운동장에서 같이 출발해야 한다는 거다. 시장과 대중이 영화를 판단해야지 국가가 개입, 간섭해선 안 된다.

-<씨네21>이 연속 보도 중인 박근혜 정부의 모태펀드(정부쪽 운영 주체 한국벤처투자) 운용의 문제에 대한 후보자의 대안을 듣고 싶다.

=모태펀드를 둘러싼 비상식적인 행위 모두 규명돼야 한다. 외부 전문위원들의 선임 과정, 역할이 정확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들이 특정 작품을 배제하는 결정을 한 게 아닌가. 차기 정부는 모태펀드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강화하되 투명한 절차하에 선임된 심사위원들에게 자율적인 의결권을 보장해야 한다. 물론 이 의결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고 세세히 공개돼야 함은 물론이다.

-영화계는 현 정부의 문화 정책이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문화 정책 기조에서 퇴보했다고 입을 모은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라는 ‘팔길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3월10일 정의당 문화예술위원회와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블랙리스트 방지,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한 법제정을 준비하며 국회에서 토론회를 연다. 블랙리스트를 만든 이들을 처벌하고 피해를 본 예술가들에게 배상하는 문제를 법제화한다. 공무원 사회의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내용도 포함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억압돼온 표현의 자유를 원상 복구해야 하고 더 나아가야 한다. 개별 작품에 지원하는 소극적 지원 정책이 아니라 지원과 복지가 결합돼야 한다. 예술을 하면 ‘굶어죽기 십상이다’가 아니라 ‘먹고는 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는 돼야 진정한 ‘문화융성’이 아니겠나. 대선 공약으로 문화예술인 기본 소득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또 현재의 한국콘텐츠진흥원 중심 체제가 아닌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방송, 광고, 출판 등 각 콘텐츠의 특성을 살린 지원책 마련과 분야별 ‘진흥원’을 둬야 한다.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을 제시하며 불법 파견과 간접고용을 합법화한 판견법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프로젝트별, 팀별로 운영되는 영화산업의 특성상 간접고용 문제가 부르는 고용불안이 상당하다.

=팀별 도급계약의 폐해라 할 수 있는 간접고용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문제다. 도급계약을 벗어나 근로계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임금 상승의 효과가 있다. 투자사의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지금의 한국 영화산업 구조에서는 제작사의 비용절감 경쟁만 불 보듯 뻔해진다. 팀별로 움직이는 영화 제작 현장에서 개별계약이 아닌 회사 대 회사의 도급계약이 많아지고 있는 걸로 안다. 또 단기간 집중해 노동력을 투여하는 영화 노동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주기적인 휴식 기간을 갖는 게 영화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필요하다. 고용보험 급여 등 최소한의 안정장치를 산업 상황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3개월 일하면 1개월의 고용보험 급여가 지급되는 식의 현실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전국영화산업노조는 근로기준법 제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에 따라 영화 제작 및 흥행업은 사용자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제53조 제1항에 따른 주(週)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제54조에 따른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게 돼 있는 점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59조의 특례, 참 이상한 조항이다. 근로기준법에서 영화를 언급한 유일한 조항이라 마치 영화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놨다. 근본적으로는 제59조의 폐기를 지향하나 개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적으로는 영화노동자가 자신의 기본 권리가 무엇인지 아는 교육을 필수적으로 받게끔 해야 한다. 자신의 기본 권리를 인지해 ‘근로자대표’를 통해 상당 부분 제59조의 문제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성희롱 예방교육, 산업안전보건교육이 필수인 것처럼 근로기준법에 대한 기초교육도 의무화해야 한다. <씨네21>과의 인터뷰를 준비하고 자료를 검토하면서 영화계에 특화된 공약을 꼭 만들어야겠더라. 약속하겠다. 이번 대선 공약에 영화인들의 경제 주권, 시민권을 확보할 수 있는 내용을 꼭 넣겠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독립영화 지원책 마련부터가 중요해 보인다.

=독립영화는 정부 정책에 따라 생존 자체가 좌우된다. 이 정권은 독립영화를 좌파들의 영화, 정권의 비토 세력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봤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중심이 돼 독립영화 부활을 위해 전방위적인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제작, 배급, 영화제 등 여러 분야의 지원을 병행해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배급 지원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거점 도시에 예술·독립영화 전용관을 확충하고 멀티플렉스에서도 독립영화가 안정적으로 상영되게끔 상영 회차 쿼터제(특정 영화 독과점 금지) 등을 도입해야 한다. 독립 저예산영화는 영진위나 문화체육관광부의 제작 지원을 받고 있으나 편당 지원금이 너무 적다. 지원 편수 늘리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편수를 줄이더라도 실질적인 제작비 지원이 돼야 한다. 현 영진위 지원 방식으로는 근로기준법을 지킬 수 없는 현장만을 양산한다. 민간 투자, 배급업체의 투자,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 지원금을 현실화하는 게 영화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장치다.

-<씨네21>은 ‘영화계 내 성폭력’ 문제를 연속 보도해왔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공론화되고 있고,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등을 통해 한국 사회의 여성 혐오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도 드러났다.

=성폭력과 성희롱은 엄연한 범죄다. 하지만 혐오는 이것과 다르다. 혐오는 사회가 앓고 있는 하나의 증상으로 그 원인이 있다. 혐오 문화는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나온다. 정치의 실패다.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진보정치는 설 자리가 없다. 당 차원에서 차별금지, 성소수자 문제 등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으나 최근에 생긴 혐오 문화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하지 못했다. 많이 배웠고 계속 바꿔갈 것이다. 다행히 이번 촛불 국면에서 희망을 봤다. 우리를 혐오하게 만든 장본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여성과 남성, 성소수자와 이성애자가 모두 힘을 합쳐 싸웠다. 신영복 선생이 ‘감옥의 여름과 겨울 중 어느 쪽이 더 힘든가’를 말한 적이 있다. 겨울 감옥은 추우니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좋고, 여름 감옥은 더워서 사람이 옆에 있는 게 증오스럽다는 의미였다. 한국 사회는 일종의 ‘여름 감옥’ 상태다. 옆 사람을 증오할 게 아니라 함께 이 감옥을 부수는 게 중요하다. 약자들을 향한 혐오 문화를 연대의 문화로 바꾸는 정치는 불평등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에서 시작한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제작, 투자, 배급, 상영으로 이어지는 대기업의 사슬 구조를 해결하려면 배급과 상영 분리뿐 아니라 제작과 투자도 분리해야 한다. 두 의원이 발의안 개정안의 기본 방향에는 동의한다. 다만 이해관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내는 영화계의 입장을 좀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반독과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영진위가 이런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대기업의 눈치만 보며 방관하고 있다.

내 인생의 영화

<시네마 천국>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1988

“어렸을 때 본 영화인데 지금까지 생각나는 걸 보면 그 여운이 대단하다. 어린 마음에도 ‘영화에도 온도가 있고 색채가 있구나’를 느꼈고, ‘언젠가 꼭 시칠리아 섬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게도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준 수많은 알프레도들이 있다. 언젠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들과 지난 시간을 담은 필름을 함께 돌려보면서 ‘우리 참 잘했다, 수고했다’고 말하며 펑펑 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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