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시장의 실패' 보완하는 문화정책을 만든다” - 국민의당 국회의원 안철수
2017-03-06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으로 지난해 10월31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CJ, 롯데 등 대기업이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을 겸하는 것을 금지하고 영화상영업자는 시간, 요일별 관객수와 상영 시간대 등을 고려해 공정하게 상영관을 배정해야 한다는 게 개정안의 주요 골자다. 여기에 복합상영관의 영화상영업자는 동시상영 영화 중 동일한 영화를 대통령령으로 정한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같은 해 12월 안철수 의원은 참여연대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함께 ‘한국영화산업 불공정 생태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주최해 제작자와 극장 등의 입장을 확인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해소에 주안점을 두는 만큼 영화계의 불공정한 지배 구조 개선에도 관심이 크다고 말한다. 디지털과 실물 세계의 결합, 바이오 기술 등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문화 정책의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고도 역설한다.

-지난 2월6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절박한 현실을 <인터스텔라>(2014)의 한 장면으로 비유했고,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를 언급하며 정치 소명에 대해 말했다.

=대표 연설 때 영화 얘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다. (웃음) 블루레이를 1천여장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면서 ‘국가란, 정치란 무엇일까’를 다시금 생각했다. 국민의 생명을, 시민의 삶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라면 왜 존재하는 것인가. 시민의 자존심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국가의 덕목이다. 국민의 생명과 시민의 권리,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정치를 해야 한다. 나는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의 소명이기도 하다.

-지난해 대기업의 상영과 배급을 분리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영화계에서는 CJ나 롯데 등 대기업이 제작 대행의 방식으로 사실상 직접 제작에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투자와 제작 분리 역시도 고려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해야 다음 걸음도 뗄 수 있다고 본다. ‘파라마운트법’(1948년 파라마운트사가 극장 사업에 진출하려 하자 영화 제작, 배급, 상영의 수직계열화를 금지한 법이다.-편집자)처럼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데 상영과 배급 분리가 그중에서도 급선무다. 당장의 효과도 낳을 수 있다. 벤처 기업을 창업해 경영을 해본 경험을 통해 한국 산업의 가장 큰 문제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 데 있음을 잘 안다. 영화산업도 마찬가지다. 2015년 1월,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으로 상영관을 잡지 못한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2014)의 대관 릴레이에 동참한 것도 그래서다. 기업의 경제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모의, 범위의 경제 원리가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의 후생을 고려한다면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과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 모름지기 문화 정책은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가. 개정 영비법은 영화계, 관객의 의견을 수렴해온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견해를 모아 만들었다. 개정안은 2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했으나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등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4월부터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 같다.

-박근혜 정부 들어 고사 위기에 처한 독립영화계에 대한 지원의 방향을 묻고 싶다.

=독립영화 활성화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검토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창작 지원, 유통 지원, 부가시장 활성화, 심지어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연계하는 영화 외적인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 독립영화인들의 자존감을 훼손하는 일이 반복돼서도 안 된다. 시네마달을 사찰하는 행위 등은 근절돼야 한다. 관객 대상 서비스 기관이어야 할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정치적 판단을 내려 <불안한 외출>(2014)의 공동체 상영을 경찰에 고발한 일도 재발돼선 안 된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생활 문화 차원에서의 미디어 교육을 통해 독립영화인들의 역할을 찾는 것도 모색해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통해 사전 검열, 지원 배제를 하며 정치적 외압을 행사했다.

=국정 지표로 ‘문화융성’을 내세우고 대통령 자문 기구 이름도 문화융성위원회인데 블랙리스트라니. 이율배반적인 최악의 공포정치이자 헌법 위반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실행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줄도 몰랐다고 하지 않나. 나와 생각이 다르면 적이라는 갈등 유발형 리더십이 대한민국 발전에 발목을 잡았다. 이념, 지역, 세대, 계층간 갈등을 종식할 때다. 본질을 보는 눈, 진실을 말하는 입, 자유로운 상상력을 틀어막는 최악의 공포정치가 두번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표현의 자유 보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지난해 12월14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위기에 처했던 한국영화를 구해낸 것도 표현의 자유였고, 한국영화의 미래 경쟁력을 보장하는 필수요소도 표현의 자유다. 게임 콘텐츠 등 디지털 문화콘텐츠의 경쟁력도 금기 없는 상상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에서 나온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블랙리스트 방지법이기도 하다. 공공부문의 부당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옴부즈만위원회’를 설치하고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문화예술 공공기관을 합의제 자율 행정기구로 바꾸자는 것이 핵심이다.

-<씨네21>은 박근혜 정부의 모태펀드(정부쪽 운영 주체 한국벤처투자) 운용 실태 문제를 연속 취재해왔다. 정권이 모태펀드라는 돈줄을 틀어쥐고 자신들이 불편해할 만한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잘라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영화계는 현 정부의 책임과 차기 정부의 대안을 궁금해한다.

=영상 전문 투자조합 설립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선거 공약 이행 차원에서 시작했다. 한국영화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영화 투자 자본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취지였다. 작품별 직접 지원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고민도 담겼던 걸로 안다. 영화에 대한 검열과 급박한 대외 문화 개방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영화를 살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다. 투자조합 출자 사업도 이 원칙을 따랐기에 일정한 성과를 냈던 거다. ‘팔길이 원칙’을 흔들면 모태펀드의 기초가 흔들린다. 모태펀드가 (상근 전문위원 등을 둬) 리스크 관리를 하겠다고 하는 건 오히려 리스크를 키우는 행위다. 영상펀드, 문화펀드를 모태펀드로 편입시킨 것도 효율성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중소기업을 더 위해야 하는 모태펀드가 대기업과 재무적 투자자를 편든 거다. 또 전문위원제와 외부 전문가 풀 운영 등은 사실상 차별과 배제 행위다. 관객의 기호와 눈높이를 맞추기보다 정권의 심기부터 살피며 리스크 관리를 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한가. 모태펀드가 처한 위기, 그것을 초래한 정권과 펀드 관련자들은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차기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의 핵심 기조는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겠나.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고민한다. 외부의 교란과 충격을 흡수하는 역량인 ‘회복력’이 강조되는 시대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문화예술, 그 포용력으로 제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흡수해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로 영화인들은 중국과의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과 대안책은 뭔가.

=중국이 공식적인 조치를 취하면 국제 규범 위반이 아니냐고 따져볼 수 있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으니 대응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드 배치는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이미 합의한 내용이기에 이를 고려하면서도 관련 현안을 국익에 부합되게 해결해가야 한다. 우선 중국을 설득해 이해시키는 데 외교적 노력을 배가할 예정이다. 한·중 정상회담 등을 통해 중국이 전향으로 우리를 이해하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때 미국과도 사드 배치 철회를 협의할 수 있지 않겠나.

-영화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는 성폭력, 여성 혐오 등 뿌리 깊은 젠더 불평등 문제 앞에 직면해 있다.

=트위터로 관련 내용을 많이 접하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 문화가 문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차별받는 사회가 한국 사회다. 19대 국회에서 나는 성인지예산(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예산과정에서 고려해 예산이 성평등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의 배분구조와 규칙을 변화시키는 일을 말한다.-편집자)에 관심을 기울였다. 새정치연합 시절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비례대표를 모두 여성으로 한 것도 노력의 일환으로 꼽고 싶다. 여성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조차 없다. 차기 정부에서는 지금의 여성가족부를 성평등인권부로 바꿔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해가려 한다.

<내부자들>

내 인생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감독 추창민, 2012

<내부자들> 감독 우민호, 2015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약자를 대하는 지도자의 진정성이 어떠해야 하나를 생각하게 한다. <내부자들>은 정치, 경제 분야를 막론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잘 보여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주듯 백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 대접받고, 실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함께 잘 사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기득권 정치와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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