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래원은 한석규와 더불어 예능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2000년대 이후 이렇게 많은 개그의 영감과 레퍼런스를 제공해준 대표적인 배우들이 또 있을까. 가끔 희화화되긴 하지만 그만큼 특징적인 연기를 적재적소에서 빵빵 터뜨린 배우라는 이야기도 된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연기했을 땐 대중에게 어떤 기대치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프리즌>은 전혀 다른 온도를 지닌 두 캐릭터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순간 함께 등장하면서 연기 대결을 펼쳐야 하는 영화다. 김래원은 이미 <강남 1970>을 통해 나름의 도전적인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데 <프리즌>은 그것의 심화 버전이라고 받아들여도 좋겠다. 일례로 <강남 1970>(2015)의 깡패 용기 역에 비해 이번 영화의 송유건이란 캐릭터 대사의 욕설이 두배가량 많다.
김래원이 연기하는 전직 경찰 송유건은 하루아침에 소위 말해 ‘빵쟁이’가 된 인물이다. 잘나가던 경찰이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잘못을 저질러 악질 중의 악질로 소문난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런데 하필 그 교도소에는 유건이 경찰 시절에 잡아넣은 깡패들이 수두룩하다. 유건은 강력계 시절, 범인 검거율이 높아 저승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데다 성격이 불같아서 꼴통 형사로 통했던 인물. 그런 그가 교도소에 끌려왔으니, 그 자신은 물론 수감자 전체가 그를 괴롭히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준비한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가 겪는 수많은 고통의 형태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래원이 유건에 관해 나현 감독과 가장 많이 상의한 것은 이 캐릭터의 경쾌함이었다. 영화에서 제대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유건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 교도소 입소 첫날부터 마주치는 누구든 물어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의 행동에는 물론 분노가 서려 있지만 위악적인 면도 있다. 이런 유건의 심리는 김래원이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선한 이미지 덕분에 표현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유건의 역할이 김래원에게는 잘 맞는 옷이었다.
유건에게는, 교도소 생활에 적응하려면 자신이 잡아넣은 유명한 깡패 찰길(신성록) 같은 인물을 견제하면서 사실상의 실세인 익호(한석규)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숙제가 생긴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액션이 수반된다. 바로 송유건에 관한 또 다른 특징이자 김래원의 본격 액션 연기가 등장하는 이유다. 나현 감독의 말에 따르면 “<다이하드> 스타일의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건은 등장인물 중 가장 몸을 활발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다. 마침 전작 <강남 1970>에서 수많은 폭력 신을 찍어 바짝 훈련이 된 터라, 김래원은 현장에서 액션 연기를 어렵지 않게 소화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감독 이하 스탭들이 김래원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한번 더”였다. 김래원은 감독조차 지겹도록 또 찍기를 반복하는 습관을 촬영 내내 고수했다. 작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겠지만 애초 상대배우와 합을 잘 맞추지 않는 한석규의 연기 스타일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랜 기간 시나리오작가로 활동했지만 영화 연출은 처음인 나현 감독으로서는 배우들이 나서서 여러 번 찍겠다는 열의가 참으로 고마웠을 터. 김래원의 은근한 배려와 열정 덕분에 시종일관 들떠 있고 꽉 차 있는 듯한 유건의 캐릭터에 인간다움이 묻어날 수 있었다. 한때는 로맨틱 코미디의 대세였지만 이제는 누아르와 액션 등 거칠고 색이 짙은 연기를 보여주며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김래원만의 강렬한 분노 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