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히든 피겨스> 뉴욕 기자회견
2017-03-22
글 : 양지현 (뉴욕 통신원)

지난해 12월11일 뉴욕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히든 피겨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감독 데오도르 멜피를 비롯해 주연 배우 타라지 P. 헨슨(캐서린 존슨 역)과 옥타비아 스펜서(도로시 본 역), 프로듀서 및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직접 맡은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 원작자 마고 리 셰털리 등이 참석했다. 2500만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제작된 <히든 피겨스>는 미국에서 지난해 12월25일에 개봉한 뒤 반향이라 불릴 만큼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3월11일 현재 이 작품의 미국 내 총박스오피스 수익은 1억6천만달러를 넘어섰고, 세계적으로는 1억9700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과학과 수학 등에 재능이 있는 흑인 소녀들의 단체 ‘블랙 걸 너즈’ 멤버들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을 여기에 옮긴다.

-이런 캐스팅은 어떻게 가능했나.

=데오도르 멜피_ 옥타비아 스펜서가 가장 먼저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말해왔다. 그녀는 시나리오를 읽은 뒤 무슨 역할이라도 괜찮으니 꼭 참여하겠다고 했다. 사실 모든 것은 원작자 마고 리 셰털리가 책을 집필하겠다는 55쪽 분량의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타라지 P. 헨슨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하면서 알게 된 사이다. <허슬 앤드 플로> <엠파이어>까지 그녀가 배우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쭉 지켜봤었다. 그녀는 작품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감수하는 배우다.

=타라지 P. 헨슨_ 알아봐줘서 고맙다. (웃음)

데오도르 멜피_ 타라지에게는 늘 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저넬 모네이의 캐스팅은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였다. 그녀는 다른 배우들처럼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극중 그녀가 연기한 메리 잭슨처럼 배역을 따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더라.

-<히든 피겨스>는 실존하는 흑인 여성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는 작품인데, 실존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궁금하다. 배역을 준비하면서 어떤 자료를 참고했나.

타라지 P. 헨슨_ 내가 연기한 캐서린 존슨은 지금 98살이고, 아직 정정하시다. 그들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우리의 큰 책임이었다. 프로젝트 참여를 결정하자마자 감독에게 그가 생존하는지 여부를 물어봤다. 당장 캐서린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데오도르와 함께 그녀를 찾아갔는데 보자마자 ‘와우, 진짜 슈퍼히어로를 만나는 거네’라는 생각이 들더라.

-직접 만난 캐서린 존슨의 어떤 점이 인상적이었나.

타라지 P. 헨슨_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의 겸손함이었다. 슈퍼히어로들의 특징이 뭔가?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흑인 여성으로서 어떻게 그런 힘든 시간을 견뎌왔냐”라고 물었더니, “우리는 그저 우리의 일을 충실히 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더라. 그녀는 늘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속으로 ‘당신이 해낸 일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이 비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캐서린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리고 수학에 대한 그녀의 사랑도 엄청났다. 수학 얘기를 할 때마다 그녀의 눈이 빛나는 것을 봤다. 캐서린은 다른 학생들도 자신처럼 수학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더라. 만약 나도 캐서린 같은 선생님을 만났었다면 로켓 과학자가 됐을지 누가 알겠나? 어릴 적 누가 나에게 여자니까 수학을 공부하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묵언의 합의가 있었다. 수학과 과학은 남학생들의 것이라는. 누군가 나에게 거짓말을 한 거다. 이렇게 훌륭한 여성 과학자들이 있는데 말이다. 바로 그 점이 내가 이 영화를 꼭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했다. 또 다른 소녀들이 나처럼 생각하면서 성장하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 옥타비아에게 마이크를 넘기겠다. 이러다 나 혼자 계속 얘기할 수도 있으니까. (웃음)

=옥타비아 스펜서_ 고마워, 타라지. (웃음) 나에게는 무척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했다. 내가 연기한 도로시 본은 이미 운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가족들이 생존해 있었지만 작품 출연을 결정한 뒤 촬영까지 3주 반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다. 내 경우 최소 6주 정도는 캐릭터에 몰입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척 걱정을 했다. 인터넷상에도 정보가 없었다. 마고가 쓴 책을 빌려 얘기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연기할 인물에 대해 최대한의 정보를 습득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캐릭터로 연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해야 하니까. 데오도르가 나사(NASA)의 많은 기록을 참조할 수 있게 보내줘 고마웠다.

타라지 P. 헨슨_ 사실 마고의 책이 영화 촬영과 동시에 집필되고 있었다.

옥타비아 스펜서_ 그렇다. 때문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유동적이었다. 리서치도 중요했지만 이들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도 중요했다. 이미 흑인 여성들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묘사된 경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로시를 그런 정형화된 모습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본질을 화면에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

-극중 나사 내부에서 세 여성이 경험하는 에피소드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의 일화를 병렬적으로 잘 배치했는데, 실존 인물들로부터 인권 문제 등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기회가 있었나.

타라지 P. 헨슨_ 물론 캐서린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나의 할머니에게서도 느낀 점이지만 당시 인권 문제를 위해 흑인들이 시위를 한 건 사실이나 그들의 매일매일이 시위로 일관될 수는 없었다. 때로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묵묵히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내 뒤에 오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캐서린은 불평불만을 하지 않더라. 그녀는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기 위해 멀리 떨어뜨려놓았던 나사의) “화장실 사용이 불편했다”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수치를 정확히 계산해서 내가 맡은 일을 확실히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잘라 얘기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흑인 여배우로서 비슷한 질문도 많이 받을 텐데.

타라지 P. 헨슨_ 물론이다. 하지만 차별과 다양성에 관해 얘기할 때 꼭 흑인과 백인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여성 문제도 있고, 성소수자들과 장애인들도 있다. 그래서 흑인 배우들에게 유독 다양성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런 질문 자체가 너무 좁은 생각이다.

-마고 리 셰털리의 책 <히든 피겨스>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혹시 미국내 공립학교에서 이 책을 교재로 쓸 계획은 없나.

=마고 리 셰털리_ 그러면 좋겠지. 책에 대한 반응은 무척 좋은 편이다. 이미 많은 대학에서 문의를 해왔는데, 특히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는 교재로 선택했다. (박수) 이틀 전에 MIT와 하버드에서 영화 시사회를 진행했다. 극장 가득 앉아 있는 여성 엔지니어들과 수학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조지아주에서 6천명의 세계 수학자들이 모이는 미팅이 있는데, <히든 피겨스>에 나오는 여성 수학자들을 기념하는 행사도 갖는다. 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이들을 기념하는 거다. 또 <히든 피겨스>가 어린 독자들을 위해 다른 버전으로도 출판됐다. 그 버전이 공립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