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완벽해 보여서 (옥)택연씨의 단점을 계속 찾아냈다. (웃음) 내복 두벌을 겹쳐 입고, 어그를 신고올 만큼 추위를 엄청 타더라.”(김윤진) “(김)윤진 선배님은 의외로 힐 구두를 못 신으시더라.”(옥택연) 함께 촬영하면서 정이 쌓였을까. 인터뷰 내내 김윤진과 옥택연은 남매 같았다. <시간 위의 집>(감독 임대웅)에서 두 사람이 각각 연기한 미희와 최 신부는 미희의 집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일을 추적하는 관계다.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25년간 억울한 수감 생활을 한 미희는 60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최 신부는 미희를 찾아가 그날의 진실을 묻고, 미희는 살해 현장에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얘기를 한다. 각각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2014)와 <결혼전야>(감독 홍지영, 2013) 이후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한 김윤진과 옥택연으로부터 <시간 위의 집> 작업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김윤진_ 단숨에 읽었다. 이제껏 한국에서 본 적 없는 시나리오였다. 그만큼 신선했다. 개인적으로 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은 스릴러에 그치지 않고 모성애라는 주제를 얘기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옥택연_ 김윤진 선배님이 출연하시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서스펜스를 구축하는 이야기가 매혹적이었다. 대본을 세번 연달아 읽었던 것도 그래서다.
-최 신부는 물리적인 출연 비중이 큰 캐릭터는 아니다.
옥택연_ 말씀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기보다 주인공에게 자극을 주는 캐릭터다. 하지만 최 신부 없이는 서사가 진행될 수 없다. 동시에 관객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큰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물리적인 출연 비중은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김윤진_ 감독님과 PD님이 “(옥)택연씨가 하겠어?”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당연히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출연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고, 와우. (웃음)
-김윤진이라는 선배 배우와 작업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땠나.
옥택연_ 긴장이 많이 됐던 게 사실이다. 미국에서 살던 시절, 선배님이 출연하신 미국 드라마 <로스트> 시리즈를 보면서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꼈고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렜다. 선배님을 처음 뵀을 때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던 기억도 난다. (웃음)
-1인2역이나 마찬가지인데. 미희라는 여자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김윤진_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25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 번째 남편이 죽고 난 뒤 재혼을 한 미희는 결코 순탄한 삶을 살아온 여자가 아니다. 현재의 미희와 60대 미희의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현재의 미희는 순진하고 맹한 여자로 표현해야 했다. 60대 미희는 살인자라 낙인 찍힌 채 감옥에서 25년간 살아온 삶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목소리를 어떻게 낼지 가장 많이 고민했고, 백발이 원래 나이보다 더 많이 보이도록 표현했던 것도 그녀의 힘들었던 삶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했던 영화 <심장이 뛴다>(2010)나 남편을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수감돼 아이를 낳았던 <하모니>(2009) 등 전작이 그랬듯이 이 영화 또한 김윤진을 통해 모성애를 극대화하는데.
김윤진_ 모성애를 자극하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으니까 잘하겠지라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다. (웃음) 농담이고.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모성애 덕분이다. 아이를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엄마 역할로 나를 생각해주셔서 감사하다.
-최 신부는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닫은 미희를 움직이게 하는 역할이다. 어떻게 접근했나.
옥택연_ 최 신부가 탐정 같았다. 서사를 전개시키려면 계속 무언가를 알아내야 하니까. 전작인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2016)의 막바지 촬영 때 이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 드라마에서 밝은 캐릭터를 맡았던 까닭에 최 신부는 그런 모습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했다.
김윤진_ 원래 최 신부는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였다. 택연씨가 캐스팅되면서 촬영현장에서 원래 시나리오보다 가벼운 설정으로 바뀌기도 했다. 최 신부가 처음 미희의 집을 찾아갔을 때 미희가 그의 방문을 거절하고 현관 문을 닫으려고 하자 최 신부가 원래의 설정인 손 대신 발로 막는다. 이야기가 워낙 묵직하다보니 택연씨가 등장하는 장면만큼은 좀더 발랄하고 가볍게 가려고 한 것이다.
-사제복을 입은 모습이 무척 단정하던데.
옥택연_ 평소에 입는 슈트보다 통이 커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스스로가 어색하기도 했다. (웃음) 신부들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입는 옷이 조금씩 다른데 이 영화에서는 관객이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사제복 하나로 통일했다.
-김윤진씨는 노인 분장이 <국제시장>에 이어 두 번째 아닌가.
김윤진_ 노인 분장을 위해 해외 스탭들까지 모셔왔던 <국제시장>과 달리 이번 영화에서는 얼굴에 풀칠밖에 안 했다. 얼굴 전체에 풀을 발라 드라이로 말린 뒤 주름을 만들어내는 방식의 특수분장이었다. 풀을 붙여 주름을 만드는 단순한 방법이었지만, 모니터를 통해 주름 확인이 가능해 무척 자유로웠다. 조명이 밝을 때는 주름의 세부적인 부분이 뽀얗게 나오니까 주름을 더 돋보이게 조정했다. 풀을 고정한 뒤 그 위에 검버섯 같은 분장을 해 디테일을 살렸다. 실리콘을 얼굴에 한 군데도 붙이지 않았다. 실리콘을 붙이면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없어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기 어렵다. 처음에는 분장하는 데 3시간 반 걸렸고, 나중에는 2시간 반 만에 끝낼 수 있었다.
-표정이 확실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국제시장>의 노인 분장 경험이 이번 작업에 얼마나 도움이 됐나.
김윤진_ 큰 도움이 됐다. <국제시장>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치마폭이 넓어 무릎에 아대 같은 장치를 달아 관절을 함부로 못 움직이게 했다. 이번에는 노인 연기를 과감하게 했다.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오가는 까닭에 각기 다른 시간대의 감정선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윤진_ 60대 미희 시퀀스들과 현재의 미희 시퀀스들을 순서대로 몰아서 찍으면 얼마나 좋겠나. 그래서 제작진에 젊은 미희 장면과 늙은 미희 장면을 섞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노인 분장을 하고 나면 피부에 열이 올라 가라앉히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또 순서 편집 도움도 많이 받았다. 촬영하기 전에 바로 전 장면을 확인할 수 있어 감정선을 유지하는 데 수월했다. 제작진의 배려 덕분에 26회차 만에 찍을 수 있었다.
-옥택연씨는 <결혼전야> 이후 두 번째 영화 작업인데. 배우로서 좀더 많은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옥택연_ 왜 없겠나. 출연 비중을 떠나 좋은 작품과 매력적인 캐릭터를 맡고 싶은 마음이 크다. 과거에는 결정권이 없었는데 지금은 직접 결정하고 있어 좋은 시나리오를 기다리고 있고, 오디션도 적극적으로 보려고 한다.
-최근 김윤진씨는 좀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미국 드라마 <미스트리스>에서 하차했는데.
김윤진_ 지난 13년 동안 <로스트>와 <미스트리스> 두 드라마밖에 안 했다. 한해 파일럿 제작편수의 10%만이 본방송으로 픽업될 수 있는 미국 드라마 시장에서 시리즈로 제작된 건 축복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를 할 수 없을 것 같더라. 어렵게 하차 결정을 내렸고, 다행스럽게도 제작진이 결정을 존중해주었다.
-앞으로 영화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겠다.
김윤진_ 좋은 작품에 캐스팅되기 위해 끊임없이 오디션에 도전할 것이다. 택연씨에게 빨리 미국에 진출하라고 잔소리를 하곤 한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영어를 잘하고, 많은 한류 팬들도 거느리고 있어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남자배우가 될 수 있다.
옥택연_ 노력하겠다. 미국 드라마 오디션도 몇번 봤고, 테이프도 미국에 보냈는데 아쉽게도 캐스팅이 안 됐다. (웃음)
김윤진_ 테이프를 보내는 것보다 정말 무식하게 직접 미국에 가서 부딪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열심히 해보고 안 되면 말고’라는 마인드가 오디션에서 탈락할 때마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데 큰 힘이 됐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