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이 달라졌다. 샛노란 염색 머리를 하고 양미간을 찌푸리고는 거친 육두문자를 내뱉는 그의 모습을 본 적 있던가. 얼굴에는 핏자국도 묻어있고 능글맞게 눈을 치켜뜨고는 자신의 덩치보다 족히 두배는 커 보이는 사내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그의 모습을 말이다. 전작 <원라인>에서도 임시완은 이미 대출 사기를 저지르는 범죄자 민 대리 역을 맡기는 했지만, 실은 민 대리는 영화 내내 욕설 한마디도 없이 심지어 주먹도 쓰지 않는 얌전한 범죄 철학을 지닌 인물이었다. 때문에 임시완 특유의 유약한 눈빛을 무기 삼아 상대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뒤통수치는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마치 드라마 <미생>의 신입사원 장그래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보여준 최선의 변신 같았다. 하지만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 현수는 임시완에 관한 모든 선입견을 깨부수기에 충분하다. “처음에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이제껏 맡았던 작품 중에서 연기적으로 이번이 가장 어려울 것 같았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현수에 대해 크고 작은 걱정이 앞섰던 그는 “더 많은 경험을 한 이후에 맡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출연 여부를 깊이 고민했다.
임시완은 영화 속 다양한 ‘불한당’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나쁜 현수를 연기한다. 현수는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거물급 건달 재호(설경구)의 눈에 띄며 “혁신적인 또라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는 막돼먹은 캐릭터다. 재호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도 믿지 않고 오직 상황만 믿는” 냉혈한이라 지칭하고 다니는 건달. 서로 속고 속이는 배신의 재미로 살아가는 건달과 약쟁이들의 세계에서 재호는 유독 현수의 악바리같은 눈빛이 마음에 든다.
“이번 영화 촬영현장에서 너무 신기한 경험을 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는 ‘이렇게 힘들 것 같은 영화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 것 같은데?’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촬영하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바뀌어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됐다. 작품을 하면서 이렇게 힘들지 않게 찍을 수도 있구나, 라고 말이다. (웃음)” 임시완은 촬영 도중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액션 컨셉 설명을 들으면서도 “현수라는 인물에 대해 점점 더 명확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굳이 감독님과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어떤 순간이 있더라. 신기했다.”
임시완은 복잡한 인물의 감정 연기뿐만 아니라 액션 연기에도 도전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재호의 눈에 띈 현수는 출소 후에 더욱 무시무시한 검은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현수는 재호의 비호 아래 건달 무리를 상대로 사방에 피와 살점이 튀는 엄청난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그 시각적 충격은 이 영화가 거친 홍콩 누아르영화들을 선배로 모시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준다. “<무간도>를 보며 느꼈던 배우들의 진짜 같은 연기를 나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는 임시완은 영화 전편에 걸쳐 관객이 깜짝 놀랄 만한 액션 신을 서너번 정도 반복해서 보여준다. 잔인하기도 하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임시완의 과감한 연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오래 회자될 것이다.
거친 욕설 연기도, 액션 연기도, 심지어 격정적인 키스 신도 “어느 것 하나 어렵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하는 임시완은 이제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언젠가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는 작품을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어렵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임시완의 도전에는 한계선이 필요 없다. “내가 출연한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출품됐다는 사실이 앞으로 나의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실은 나도 기대된다.” 그 기대는 우리가 그의 다음 도전을 하루빨리 보고 싶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