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김지석을 추모하며
2017-05-31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영화의 바다에 영원히 머물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식이었다. 한국시각으로 5월 19일 아침, 수많은 영화인들이 프랑스 칸에서 들려온 비보에 눈시울을 적셨다. 출장차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지난 22년을 함께하며, 국내에 국제영화제라는 영화적 토양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장본인이기에 영화인들이 느끼는 상실감 또한 크다.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추모하며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는 지면을 마련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일화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던 날 아침, 초유의 태풍이 해운대에 들이닥쳤다. 그날은 영화제 개막식 하루 전이었다. 호텔 프런트 문이 부서지고, 파도에 휩쓸린 물고기가 인도에서 파닥거릴 지경이었으니 해운대 바닷가에 설치한 영화제 컨테이너의 상태가 온전치 못할 것임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점퍼를 입고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그의 얼굴은 몹시 침착했다. “준비는 다 했는데 태풍 때문에 타격이 좀 있네요. 빨리 복구해야죠. 허허. 올해는 삼재가 아니고 십재는 되는 것 같아요. 뭔가가 끊임없이 닥쳐오네요.”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한창이던 어느 날, VIP 룸에 홀로 남아 일정을 꼼꼼하게 체크하던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모습.

이상하게도,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건 함께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으로부터 전해지는 어떤 기운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부산시와의 갈등으로부터 빚어진 업무 공백, 이용관, 전양준 등 오랫동안 뜻을 함께했던 영화제 동료들의 불명예스러운 퇴진, 영화인들의 보이콧, 그리고 태풍이라는 자연재해. 그야말로 끊임없는 시련의 한가운데서도 중심을 단단히 지키고자 하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결연함과 의지를 그날의 만남에서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새로운 시작”은 지금부터라며, 영화제가 끝난 직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본격적으로 고민해보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그렇게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해나가는 사람이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이유다.

지난 5월 18일 저녁(프랑스 현지시각 기준),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 프로그래머가 프랑스 칸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7살,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매년 5월마다 전세계 영화인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영화축제의 한복판에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와 함께였다. 칸국제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예술감독은 전세계 기자들에게 보내는 보도메일을 통해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은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절친한 친구, 봉준호의 영화가 상영되는 날 알려졌다. 우리는 칸국제영화제의 가장 소중한 멤버 중 한명을 잃었다.” 5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주최로 열린 ‘한국영화의 밤’ 행사에서는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지아장커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등 600여명의 국내외 영화인들이 검은 리본을 달고 30초간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내에서는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부산 광안리에서 부산국제영화제장으로 고인의 장례를 치른다. 29일 오전 11시 발인 후에는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의 영결식도 예정되어 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1996년, 남포동 한복판에서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배우 문성근(왼쪽부터)과 담소를 나누는 김지석 프로그래머.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부재와 더불어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하나의 챕터를 마무리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제의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과 더불어 부산국제영화제의 밑그림을 설계한 핵심 멤버였다. 1980년대 이용관, 전양준과 함께 계간 영화평론지 <영화언어>의 편집인으로 활동하던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1991년 일본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석한 뒤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자비를 들여 홍콩국제영화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등을 다니며 한국에서의 국제영화제 개최를 꿈꾸기 시작했다. 국제영화제라는 문화적 토양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1990년대 중반, 부산시와 언론, 스폰서와 문화예술인 등을 설득해가며 영화제 프로그래밍은 물론이고 “5분 대기조”처럼 영화제의 궂은일을 도맡았던 (김지석을 비롯한) 초기 멤버들의 노력은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로 빛을 발하게 됐다. 이후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2007년부터 수석 프로그래머를, 지난 2015년부터는 부집행위원장을 겸하며 부산국제영화제의 22년을 함께해왔다.

2015년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전 집행위원장, 강수연 현 집행위원장 등과 함께 뉴커런츠 심사위원 회의에 한창이던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모습.

무엇보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업적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영화에 관한 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영화제로 성장시켰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칸과 베를린 등의 국제영화제, 이미 아시아에서 나름의 입지를 구축해나가고 있던 홍콩, 도쿄 등의 국제영화제와 부산이 차별화될 수 있는 지점은 아시아영화의 라인업을 강화하고, 아시아 영화인들과의 굳건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그는 믿었다. 2002년 아시아프로젝트마켓을 통해 지금은 아프가니스탄영화의 대부가 된 시디그 바르막(<천상의 소녀>)을 발굴하고, 모스토파 파루키의 <텔레비전>을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해 방글라데시영화계에 뉴웨이브의 물결을 불러일으키는 등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시아 지역 미지의 영화들에 주목하고 그들의 정제되지 않은 재능을 알아보는 것 또한 그의 역할이었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발대식에 참석한 김지석 프로그래머.

중요한 건 변방의 지역에서 온 영화인이든, 영화 선진국에서 온 영화인이든, 그들을 대하는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태도는 한결같이 다정다감했다는 점이다.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가 “부산영화제 패밀리”라 부르는 아시아 영화인들이 함께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와 사석에서 술잔을 기울일 때면 다양한 아시아 영화인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광견병에 걸린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치료제를 찾기 위해 서울의 종합병원까지 수소문해 항공 택배로 주사약을 공수했던 경험, 리안 감독의 <음식남녀>에 출연했던 대만의 유명 여배우 양궤이메이를 집에 초청해 미역국을 만들어줬던 기억, 장준환, 유키사다 이사오와 함께 옴니버스영화 <카멜리아>를 부산에서 촬영했던 타이 감독 위시트 사사나티앙에게 한국의 찜질방 문화를 알려줬다는 경험담을 그는 즐겁게 얘기하곤 했다. 그렇게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파트너 이전에 친구이자 형으로, 가족 같은 다정함으로 아시아 영화인들을 감싸안았다. 때문에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입장하는 게스트를 호명하는 역할은 언제나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몫이었다고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소회한다. “지금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님 입장하십니다. 지금 아딧야 아사랏 감독님 입장하십니다…. 이런 멘트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김샘’이 유일했다. 왜냐하면 일반인이 아닌 영화인 가운데도 이런 아시아 영화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부를 수 있는 분은 김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 누구나 안다고 말하는 그 거장들이 거장이 되기 전에 그들의 이름을 불러 세계영화의 지도에 자리를 잡아주고 한국에 그들을 알린 사람은 김샘이다. (중략) 김지석, 말고 누구도 그런 일은 한 사람이 없고 앞으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지난 2015년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부산국제영화제 20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묶은 <영화의 바다 속으로>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부고를 접하며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직접 집필한 이 책의 프롤로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글의 서문에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할 때마다 ‘테세우스의 배’와 관련된 신화를 연상하게 된다고 말한다.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나로 돌아온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그가 타고 돌아온 배를 영원히 보존하기로 하지만 세월이 지나 배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테세우스의 배는 새로운 나무 판자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산영화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고, 그 자리는 새로운 사람들로 다시 채워질 것이다. 나는 아테네 사람들이 ‘테세우스의 배’를 기억하듯, 부산 시민과 영화인, 영화제 팬들이 부산영화제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부재를 아파하며 이 글을 떠올리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빈자리를 언젠가 새로운 누군가가 대신하게 되더라도, 김지석이라는 이름은 테세우스의 배처럼 부산국제영화제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이제는 그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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