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 인터뷰]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 <대립군> 정윤철 감독
2017-06-01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9년 만이다. 정윤철 감독의 장편 상업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명박근혜’ 시절 단 한편의 영화도 찍지 못했다. 그동안 국민들도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도 창작의 에너지가 많이 고갈됐구나 싶었다.” 그런 그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2008) 이후 9년 만의 차기작으로 <대립군>을 선택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영화는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라를 떠맡게 된 젊은 왕 광해(여진구)와 다른 사람의 부역을 대신해 전쟁의 한복판으로 나선 대립군(이정재)의 여정을 조명한다.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던 시대, 스스로의 인생을 구하고자 하는 개인의 성장담을 조명하는 이 영화는 그동안의 한국 사회에 대한 정윤철 감독의 단상과도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이 자리에 나오기 전, 개인 SNS 계정에 글을 하나 올렸다고.

=그동안 SNS에 영화 광고는 자제해왔는데, <대립군> 개봉까지 1주일 남았으니…. 임진왜란보다 더 길었던, 국민들도 고생하고 나도 영화를 못 만들었던 암흑 같은 9년의 세월을 뚫고 문재인 정부의 시작과 함께 첫 정통 사극영화로 돌아왔다, 뭐 이런 취지의 글이었다.(웃음)

-지난 9년간 어떻게 지냈나.

=다른 감독들처럼 계속 시나리오를 썼다. 가슴 성형 부작용에 대한 국제적 소송을 벌이는 변호사 이야기, 남남북녀의 사랑 이야기, 컴퓨터게임과 관련된 시나리오 등 대여섯편은 준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떤 시나리오도 완성이 안 됐다. 한편으로는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하 수상하니 다양한 측면에서 감독으로서의 특화된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상황에서 <대립군>을 차기작으로 선택한 계기는.

=세월호 참사 1주년 직후에 <대립군>의 초고를 봤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견뎌야 할지, 영화감독으로서 어떤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던시기였다. 임진왜란 당시 아버지 선조 대신 임시로 왕 노릇을 하게 된 어린 세자 광해와 남을 대신해 군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대립군들이 함께 ‘헬조선’을 헤쳐나간다는 이야기가 굉장히 와닿았다. 그 과정에서 광해가 진정한 리더로 성장해나간다는 설정도 당시의 시국에서 대중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이 작품에 합류하며 각색의 방향을 어떻게 잡았나.

=초고는 대립군과 그들의 가족사에 더 주목하는, TV미니시리즈 같은 느낌이었다. 각색 과정에서 광해와 대립군의 수장 토우의 브로맨스에 집중하고, 광해의 성장 드라마를 좀더 만들었다. 대립의 반대말이 ‘자립’이잖나.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군역을 대신하는 대립군들은 요즘 시대로 치면 ‘비정규직’에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도망간 선조 대신에 임시로 왕이 된 광해의 처지도 대립군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가던 이들이 자기 자신을 되찾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소 생뚱맞을 수 있지만 <대립군>을 구상하며 중요한 레퍼런스로 삼았던 영화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이다. 용이 되었던 하쿠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으며 마법이 풀려 인간으로 되돌아가듯, 자아를 찾지 못한 인물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대립군을 비정규직에 비유했는데, 대립군의 수장 토우역으로 이정재를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정재 배우를 직접 만나보면 짐작만큼 고결하기만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웃음) 남성적인 역할에 대한 갈망도 있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거침없는 구석도 있고. 무엇보다 <이재수의 난>(1999)에서 그가 연기했던 이재수의 눈빛을 되살려보고 싶었다.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람의 원초적인 눈빛이랄까. 처음 토우가 등장하는 장면을 찍고 안심했다. <관상>(2013)의 수양대군 같은 모습을 지우고 짐승의 눈빛을 하고 있더라.

-여진구가 연기하는 광해 역시 배우가 기존에 지닌 건강하고 밝은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서늘함과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에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 여진구 배우와는 꼭 한번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임진왜란 당시 광해의 나이와도 비슷해 캐스팅을 하게 됐다. 여진구 배우를 만나보면 ‘진구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면이 있다. 사극 드라마에서도 어른스러운 연기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는 준비되지 않은 채 거친 세상에 내던져진,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소년의 모습을 표현해보자고 제안했다. 본인도 자신의 연기에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는 터라 이번 영화를 통해 보다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동안의 한국 사극영화에서 보여주는 왕족의 모습은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도 일정 수준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왕실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광해의 여정은 민초의 피난길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처절하다.

=실제로 역사가 그랬다. 광해가 분조(임진왜란 당시 임시로 세운 조정)를 맡았을 때, 80살의 대신부터 광해를 호위하는 인원까지 40~50명만이 그를 수행했다. 길바닥에서 자는 건 예사였고, 광해는 홍역에 걸려 죽을 뻔한 위기도 겪었다. 그런 모습을, 완전히 망하기 직전의 나라를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만약 궁중 사극이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궁궐이 나오는 사극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엘도라도를 찾아 아마존을 헤매는 스페인 원정대의 여정을 그린 <아귀레 신의 분노>(1972)처럼, 이번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의 가혹한 여정을 통해 성장하는 광해와 대립군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트 촬영을 지양하고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로케이션 촬영으로 구성한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다. 또 산속에서 촬영한 장면이 많은데, 이처럼 고된 촬영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법하다.

=이건 광해가 궁궐에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조선의 자연을 보고, 체험하고, 겪으며 이 나라의 아름다움과 백성의 소중함을 확인하는 영화라고 봤다.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자신이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추상적인 개념의 국가가 아니라 광해가 밟고, 디뎠고, 머물러 잠을 자고, 지키기 위해 싸웠던, 실체의 국가를 보여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자연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사실적인 촬영을 고수했다.

-배우들이 가마를 메고 험난한 산을 직접 올라가는 장면도 있던데, 촬영 과정에서 원성이 자자했을 것도 같다.

=우리 영화에 나오는 비명과 신음은 연출된 것이 아니다. 이정재씨도 지금까지 찍었던 영화를 통틀어 이 작품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더라. 그래도 어쩌나. 이 영화에선 자연이 하나의 중요한 캐릭터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설마 진짜 올라가는 건가요?”라는 말을 촬영 직전까지 들으며, 광해나 선조가 된 심정으로 배우들을 다독이고 설득해서 최대한 리얼하게 찍었다.

-전국 각지의 산을 돌아다녔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산이 있다면.

=강원도 양구에 있는 도솔산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여기가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돌산인데, 광해와 대립군들이 가장 힘든 상황에서 안개 낀 산을 헤매는 장면의 배경이 된 곳이다. 150여명의 스탭들과 함께 올라갔는데 실제로 안개가 너무 심해 촬영을 포기하는걸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야말로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의 어려운 상태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개 속에서 엄청난 바람을 맞으며 촬영했다.

-기나긴 공백을 지나, 영화 제작환경이 많이 바뀌어 적응이 어렵지는 않던가.

=가장 큰 변화는 필름이 아니라 디지털로 찍었다는 거다. 연출적인 면에서는 많이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환경적으로 달라진 건 표준계약서 시대가 왔다는 건데, 감독들에게 시간을 딱 맞춰서 찍어야 한다는 게 엄청난 제약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막상 해보니 이런 것을 지킴으로써 얻는 게 더 많았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건 블라인드 모니터 시사였다. 제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는 환경이 쉽지 않더라.

-<대립군>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제작사 리얼라이즈픽쳐스가 제작하는 두 번째 ‘광해’ 영화다. 전작과의 연관성도 염두에 뒀나.

=어떻게 보면 이 영화를 ‘광해 비긴즈’라고도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제작진끼리 ‘그럼 여진구가 자라나서 이병헌이 되는 거냐?’라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실제로 영화 말미에 이병헌의 깜짝 출연을 진지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광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민초 이야기이기도 해서, ‘광해2’의 분위기로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선택하지 않았다.

-이번 영화에서는 광해의 광기를 확인할 수 있는 그의 ‘첫 살인’ 장면이 나온다.

=성장은 참혹한 고통을 수반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아버지 선조의 견제 속에서 정신적으로 끊임없이 고통받았을 광해를 짐작하면서 그의 어두운 면모를 예고했다. 동시에 그 장면은 광해가 어떤 강인함과 불의를 잘라버릴 수 있는, 군주로서의 냉혹함을 갖춰가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 나니 대립군보다 광해의 성장 드라마에 좀더 초점을 맞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광해는 소년이기에 아직 발전할 수 있는 상태이고, 토우를 비롯한 대립군들은 이미 자신의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완성된 어른의 상태이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광해의 입장에서는 성장의 드라마, 대립군의 입장에서는 회복의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영화를 준비하며 가장 고심했던 건 과연 ‘의병들이란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이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은 자신을 돌봐주지 않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냐는 것이다. 세월호참사에서 선생님들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몸을 던져 아이들을 구하고 목숨을 바친 것처럼, 이러한 희생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개인이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주체적 결정을 내렸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대립군>은 자각에 대한 영화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걸 깨닫는 영화,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이길 포기하지 않기 위해 현실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인 거다.

-아마 한국 사회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을텐데, <대립군>의 개봉을 앞두고 시대가,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살아야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인데, 이미 영화를 보기도 전에 국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정권을 교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난 9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500여년 전 과거의 모습을 돌아보며 우리가 이뤄낸 게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좀더 자기 자신의 모습대로 살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싶다. (웃음) 그래서 이 영화는 위로의 영화가 아니라 자축의 영화가 될 것 같다.

-이제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을 것 같다.

=맞다. 이제는 영화에 집중하고 나 역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정치적인 드라마도 생각하고 있고, 과학자가 꿈이었기에 SF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다. 다만 어떤 작품을 하든지 당분간 너무 많이 돌아다니는 영화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좌중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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