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커버스타] 전사와 소녀 사이 - <악녀> 김옥빈
2017-06-06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원더우먼> 보셨어요?” 김옥빈이 묻는다. 올 6월 극장가에서 <악녀>와 맞붙을 경쟁작이 모두 액션 블록버스터에 주인공은 여자라는 말도 덧붙이며. “<원더우먼>의 갤 가돗, <미이라>의 소피아 부텔라와 액션으로 경쟁하게 생겼어요. 심지어 갤 가돗은 군필자래. 어떻게 이기죠? (웃음)”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여성 액션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김옥빈에게 이건 기꺼이 감수해야 할 선의의 경쟁에 불과하다. 특유의 생기발랄함에 성숙함을 더해 돌아온, 더욱 깊어진 김옥빈의 한순간을 공유한다.

-그동안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여성 원톱 액션영화의 주인공이다.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겠다.

=시나리오를 보고 숙희라는 인물이 너무 신기했다. 능력은 전사인데 마음은 소녀인 거다.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이면서, 마음은 이렇게 여리고 착할 수가 있을까? 처음에는 숙희의 이 상반된 특성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너무 리얼리티가 강한 한국영화를 기준 삼아 캐릭터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연기와 액션연기의 톤을 다르게 갈 수도 있겠다고 마음먹은 뒤 연기하기가 좀더 수월해졌다. <한나>와 <루시> <일렉트라> 등 액션을 하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영화는 빼놓지 않고 다 챙겨봤다.

-특히 좋아하는 액션영화가 있다면.

= <와호장룡>. 음악도, 영상미도, 이야기와 캐릭터도 정말 좋다. 특히 수련(양자경)과 용(장쯔이)이 맞붙는 액션 장면을 좋아한다. 캐릭터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액션을 보여주면서 영상도 아름다울 수 있다니!

-중상(신하균)에게 살인병기로 길러진 과거의 숙희와 국정원 비밀조직에서 훈련받는 현재의 숙희는 다르다. 어떤 차이를 염두에 두고 연기했나.

=과거의 숙희가 좀더 어린아이처럼 보이길 원했다. 당시에 숙희에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중상이라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조직에 들어가고 난 이후의 숙희는 이 세상에서 믿고 의지하던 존재가 모두 사라져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웃음기를 많이 지운 모습을 표현하려 했다.

-숙희는 남성을 넘어서는 파워를 가진 여성 캐릭터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 점에서는 처음부터 감독님의 생각이 확고했다. 나 역시 남성 캐릭터들에게 밀리는 느낌이 들어서는 안 되겠기에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3개월 동안 매일 빠짐없이, 서울액션스쿨에 가서 훈련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몸은 힘들지만 신나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연기를 할 때나 운동을 할 때, ‘어, 이게 되네? 조금만 더 해볼까?’라는 식으로 강도나 한계를 올려나가는 걸 좋아한다.

-칼, 총, 도끼 등 액션 장면에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한다. 이중 특히 선호하는 무기는.

=쌍검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무기이기도 하고. 그런데 영화를 찍고 나니 도끼가 그렇게 마음에 든다. (좌중 웃음) 차 유리도 깰 수 있고, 버스에도 매달릴 수 있고, 활용도가 높지 않나?

-모성애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맞다. 아이를 가진 엄마를 연기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더라. 시나리오를 읽을 때만 해도 중상과 현수(성준)에게 숙희가 느끼는 감정에 주목해서 읽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은혜(김연우)를 보고 아뿔싸 싶었다.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숙희는 무엇이든 하겠구나, 은혜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감정의 무게중심이 자연스럽게 아이로 이동하는 걸 실감했다.

-영화 <박쥐>의 태주, 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유나 등 그동안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가는 진취적인 인물상을 연기했을 때 가장 빛났다.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건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선택인가.

=그런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고,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줄 알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인물에 끌린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숙희는 내가 연기했던 인물 중에서 상당히 신중한 축에 속한다. 딸을 지키기 위해 많은 걸 생각하고 몇수 앞을 내다보는 성격이니까. 만약 내가 숙희였다면 중상에게 찾아가 “나에게 왜 그랬냐”고 단번에 물어봤을 거다. 일단 찾아가서 물어보고 지르는 게 내 성격이다. 우리 영화에 비유하면 앞에서 칼 맞아죽기 딱 좋은 캐릭터려나? (웃음)

-<악녀>를 찍으면서 “내가 잘해야 여배우 역할이 많아진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작품이 어떤 평가를 받길 원하나.

=그동안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가 워낙 없었으니까, 이 작품이 잘돼야 다른 영화도 만들어지고 여성을 위한 새로운 역할들도 많이 생겨나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악녀>의 김옥빈이 액션연기로는 최고였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제까지 나왔던 한국 액션영화를 통틀어 숙희가 가장 강렬하고 센 캐릭터였다는 말을 듣고싶다. 그만큼 이 영화에 애착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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