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가치가 바래지 않는다. 리지 보든 감독의 <불꽃 속에 태어나서>(1983)는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 필름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아도 여전히 실험적인 이 작품은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10년이 지난 뉴욕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는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혁명의 수혜는 여성들의 몫이 아니고, 만연한 강간과 해고에 분노한 여성들은 ‘여성의 군대’를 조직한다. 리지 보든 감독은 인종, 성별, 계급, 성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를 가로지르며, 리얼리티와 판타지를 자유로이 오가며, 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아닌 거리의 페미니즘을 제시한다. <워킹 걸>(1986), <러브 서클>(1992) 등 여성의 몸과 욕망에 대해서도 주저 없이 얘기해온 리지 보든 감독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찾았다.
-‘페미니스트 필름 클래식’ 섹션에서 <불꽃 속에 태어나서>가 상영된다. 소감이 어떤가.
=10년 전에도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이 작품이 상영된 적 있는데, 그때 관객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해 들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한동안 페미니즘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았는데, 다시 전세계적으로 여성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엔 내 안의 분노가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보수적인 레이건 행정부 시절이었다. 지금도 문제 많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해서 다시금 분노가 차오르는데, 영화를 만든 당시나 지금이나 상황이 크게 변한 것 같진 않다. 한국에선 이번에 당선된 새 대통령이 미국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산재한 여성 문제들이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성들의 삶이 예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여권이 신장되긴 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도 있고, 힘도 행사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치적 활동을 하고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하지만 여전히 유리천장은 존재한다. 미국에선 아직까지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않았고, 미국의 많은 주에선 낙태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왜 과거와 같은 문제를 되풀이하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된다. 여기엔 계층 문제도 얽혀 있다. 돈이 있는 여성은 힘이 있지만 저소득층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배제당한다. 남성은 강한 여성을 두려워하는데, 그럴수록 더욱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함께 싸우는 게 중요하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이런 영화제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다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나. 세계의 이슈를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언어도 큰 장벽이 되지 않는다. 전세계 여성들이 연대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된다. 하나의 단일화된 그룹을 만드는 것보다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변화를 일구어내는 게 중요하다. 페미니즘이 중산층 여성들의 운동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런 인식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다. 계급의 문제로 여성들이 분리되어선 안 된다.
-이 영화를 만들 당시 어떤 것들에 영향 혹은 영감을 받았나.
=기본적으로 제2세대 페미니즘에 영향을 받았지만 영화계보다는 예술계의 영향이 컸다. 존 조나스, 이본 레이너, 한나 윌키 같은 이들의 퍼포먼스가 당시로선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여성 예술가들의 나체 퍼포먼스라든지 예술 작업이 당시 남성 아티스트들에게 제대로 된 인정과 존중을 받지 못했다. 또 당시의 예술영화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장 뤽 고다르의 회고전을 보게 됐는데, 그의 직접적인 선동과 선전(agit-prop) 영화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서 <불꽃 속에 태어나서>를 만들게 됐다. 백인 중산층 여성인 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여성의 목소리를 담고 싶다는 열망에서 시작한 작업이었다. 당시의 주류 페미니즘을 따르고 싶지도 않았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주류 페미니즘이나 그녀가 창간한 <미즈> 매거진의 부르주아적인 시선에서 탈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업을 먼저 하지 않았다. 영화에 출연하는 흑인 여성들에게 내가 쓴 대사를 주고 연기를 지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즉흥 연기로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게 아니라 각각의 목소리가 그것대로 존재할 수 있게끔 연출하고 싶었다.
-형식적으로도 실험적이다. 뉴스 및 자료화면을 곳곳에 삽입해 다큐멘터리 요소를 섞었고, 장르적으로는 SF페미니즘으로 명명된다. 이 영화를 SF로 설명하는 건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10년이 지난 뉴욕’이라는 가상의 설정 때문인데, 사실상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다.
=맞다. ‘혁명 이후 10년’이라는 가정 때문에 SF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 외에는 SF적인 요소가 없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 혁명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도 여성에 대한 시각은 문제가 많더라. 그래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 이후에도 여성은 여전히 이등 시민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가정을 영화에 가져왔다. 이 영화는 SF가 아니라 판타지영화다. 강간당할 위기에 처한 여성을 자전거 탄 한 무리의 여성들이 나타나 도와주는 장면만 봐도 그렇지 않나. 개인적으로 특별히 애정하는 장면인데, 그런 여성 부대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판타지를 반영한 거다.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차용한 건 현장감과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뉴스 클립이라든지 실제 장면들을 많이 가져다 썼다. 실제 시위가 벌어지는 장소에 우리 출연진을 데리고 가서 시위 장면을 찍기도 했고, 우리가 가짜로 시위를 하면 길 가던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했다.
-영화는 인종, 성별, 계급 문제를 한데 아우른다. 당신에게 이것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이슈였나.
=개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학계에선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인종과 젠더와 계급의 문제는 교차되어 나타난다. 세계적으로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데, 미국에선 백인 경찰이 비무장의 흑인 남성을 총격 살해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사회문제는 여러 현상을 분석하길 요한다. 하지만 내 영화는 분석을 시도하지 않는다. 문제를 보여주고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이 모든 문제가 우리의 현실이라고 보여주고 싶었다. 한 가지 오해를 풀고 싶은 게 있는데, 영화는 세계무역센터 꼭대기에 있는 송신탑을 폭파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방송국을 점령하고 송신탑을 폭파해서라도 자신들의 메시지가 전파되길 바랐던 여성들의 행동을 보여준 거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내가 세계무역센터 자체를 폭파하려 했다고 오해하더라. (웃음) 그렇지 않다. 영화에선 송신기만 폭파하고, 폭파로 인해 다치는 사람은 없다.
-<워킹 걸>은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였는데, 페미니스트 감독으로서 꾸준히 관심 가는 주제가 있다면.
=지난 25년 동안 영화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작품이 하나 있다. 1953년이 영화의 배경이고, 극장 지하에서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극장 여주인이 주인공인 영화다. 여성들의 낙태할 권리,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 몸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로 수잔 서랜던과 최종 미팅을 가졌는데 그날 9·11 테러가 일어나면서 결국 제작이 무산됐다. 낙태라는 주제 때문에 투자받기도 힘들더라. 또 하나 준비 중인 작품은 스트리퍼에 관한 TV시리즈다. UCLA에서 강사로 일하는 40대 실제 스트리퍼를 알고 있는데 그와 함께 각본 작업을 하고 있다. 여성이 어떻게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텐데, <워킹 걸>과는 다른 이야기가 될 것이다. <워킹 걸>이 안티 에로틱 영화였다면 이 시리즈는 에로틱하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