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스페셜] 폴 버호벤 감독의 영화들
2017-06-14
글 : 장영엽 (편집장)

1990년대 영화팬이 아닌 당신이라면 폴 버호벤은 여전히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가 2000년대 들어 연출한 작품이라고는 지난 2000년의 <할로우맨>과 <블랙북>(2006)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네덜란드 감독의 흥망성쇠는 <엘르>의 개봉을 앞두고 충분히 탐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버호벤의 작품세계를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보았다.

네덜란드에서 스타 연출자로 활동하다 (1969~83)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폴 버호벤은 그러나 그 능력을 온전히 사용할 기회가 없었다. 20대 초반부터 네덜란드영화아카데미 수업을 들으며 감독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기 때문이다. 자국 TV 프로그램의 연출자로 경력을 쌓던 버호벤은 1974년 로맨스영화 <사랑을 위한 죽음>으로 주목받게 된다. 히피 성향의 조각가(룻거 하우어)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라난 소녀의 관능적인 사랑 이야기를 조명한 이 영화는 버호벤에게 1974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의 자국 대표로 선정되는 기회를 안겨준다. 이후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네덜란드 레지스탕스들의 일대기를 조명한 <서바이벌 런>(1977)은 버호벤의 이름을 국제 무대에 알렸다. 이 작품이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LA 비평가협회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자,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이 낯선 네덜란드 감독에 주목하게 된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의 감독으로 폴 버호벤을 강력하게 추천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결국 버호벤은 이후 만들게 되는 <원초적 본능>(1992)을 일찌감치 연상케 했던, 에로틱 스릴러 <포스맨>(1983)을 끝으로 네덜란드를 떠나 할리우드로 향하게 된다.

미국에서 영광과 아픔을 동시에 경험하다 (1983~2000)

영화 만들기에 대한 보다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누리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폴 버호벤의 선택은, 이 시기 큰 성공을 거뒀다. 특히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는 폴 버호벤의 황금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놀랍도록 파격적인 수위의 폭력을 선보였던 <로보캅>(1987)은 SF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됐다. 필립 K. 딕의 원작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토탈 리콜>(1990) 역시 화려한 액션 신과 철학적 깊이를 담은 SF영화로, 이 두 작품을 통해 폴 버호벤은 흥행뿐 아니라 작가적 역량 또한 인정받는 감독으로 할리우드에 자리매김하게 됐다. <토탈 리콜>에 출연했던 샤론 스톤을 주연으로 앞세운 차기작 <원초적 본능>은 ‘팜므파탈’이라는 단어의 영화적 구현이라 할 만하다. 샤론 스톤에게 영화사에 길이 남을 섹스 심벌의 이미지를 안겨준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그야말로 폴 버호벤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쇼걸>(1995)과 <스타쉽 트루퍼스>(1997), <할로우맨>의 흥행 부진과 평단의 혹평은 버호벤에게 깊은 상처를 안겼다. 스튜디오는 그와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고, 차기작은 줄줄이 엎어졌다. 더불어 버호벤에게 <로보캅> 연출을 제안하며 그를 스타 감독으로 만든 스튜디오 오리온의 도산은 할리우드에서 그의 입지를 위축시켰다.

유럽으로 돌아와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재입증하다(2006~)

할리우드에서 정신적으로 만신창이가 된 폴 버호벤은 2002년 고국으로의 귀향길에 올랐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영화감독으로 작업하던 시절 관계를 맺었던 스탭들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버호벤은 아랑곳하지 않고 <블랙북>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네덜란드를 배경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한 유대인 여성의 일대기를 조명하는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사실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물들의 욕망을 들여다보고자 한 작품이었다. 미국을 떠난 버호벤은 "오직 유럽에서만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블랙북>은 그 출발점이 되었다. 더이상 할리우드가 품지 못하는 버호벤의 재능은 현재 유럽 대륙에서 만개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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