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홀로 집에>(1990)의 케빈(매컬리 컬킨)
사상 최악의 크리스마스 악당 하면 누가 먼저 떠오를까.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1993)의 잭 스켈링톤이나 짐 캐리가 열연한 <그린치>(2000)의 그린치도 이분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나 홀로 집에>의 케빈은 자신이 저지르는 짓의 한계를 모른다는 점에서 무도하기 이를 데 없는 순수 악당이다. 어리바리 도둑 2인조를 잔인하게 응징하는 케빈의 트랩 퍼레이드는 악동과 악당의 경계를 넘나든다. 스파이더맨도 대적하는 빌런들과 한끗 차이다. 스파이더맨 속 악당들은 스파이더맨의 또 다른 자아라 해도 좋을만큼 유난히 닮았다. 피터 파커는 어느 날 생긴 특별한 힘을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 선한 의지를 지켜냄으로써 영웅의 자격을 증명한다. 어른이 되어버린 케빈이 왠지 서글픈 것처럼 악동으로 머물 수 있는 시기는 피터팬보다 훨씬 짧은 것 같다.
2. <크로니클>(2012)의 앤드루 데트머(데인 드한)
어른들은 항상 궁금하다. 지금 10대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빠져 있을까. 한참 전에 그 시절을 이미 지나온 입장에선 현재의 소년 소녀들이 열광하는 감정은 이해할지언정 그 방식은 불가사의에 가깝다. 몇몇 영화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한가운데 사는 10대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형식을 동원한다. 조시 트랭크 감독의 <크로니클>은 페이크다큐멘터리와 홈비디오 형식을 결합해 영상 세대의 리얼리티를 구현했다. <크로니클>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다크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 있다. 특히 오프닝에서 부산스럽게 홈비디오를 찍고 ‘피터 파커 작품’이라고 떡하니 타이틀을 붙이는 피터 파커의 허세는 소년의 흥분을 엿보는 것 같아 귀엽다. 훨씬 어둡고 살벌한 <크로니클>의 카메라를 보니 역시 중요한 건 페이크 다큐라는 영상 형식이 아니라 ‘카메라를 든 소년’이 누구인가에 달렸나보다.
3. <백 투 더 퓨처>(1985)의 마티 맥플라이(마이클 J. 폭스)
존 와츠 감독은 스파이더맨을 15살 시절로 되돌리면서 <백 투 더 퓨처>의 마티 맥플라이를 21세기로 소환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고등학생의 모험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알지 못했던 과거의 비밀이나 미래의 신기한 물건들 때문만은 아니다. 모험의 중심에는 고교생 마티 맥플라이의 평범함이 자리한다. 마티는 적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대체로 소심하지만 적당히 착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 만한 용기와 선의를 갖추고 있다. 숭고한 이상이나 거창한 목표보다 당장 멋지게 보이는 게 더 신경 쓰이는 허세남이기도 하다. 톰 홀랜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도 쿨하지 않은데 엄청 쿨한 척하는” 게 매력이다. 스파이더맨이 ‘우리의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는 건 그가 마티의 얼굴을 한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이 아닐까.
4.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의 데이브(에런 존슨)
피터 파커와 친구들의 차진 대화를 듣고 있자면 <구니스>(1985)의 왁자지껄한 소동이 생각난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끝내 찾아가는 피터 파커를 보고 있자니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랜달 크레이저 감독의 <협곡의 실종>(1986)도 연상된다. 하지만 미숙한 10대 영웅의 성장담이란 점에서 <킥애스: 영웅의 탄생>(2010)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순 없다. 매튜 본 감독의 <킥애스: 영웅의 탄생>은 초장부터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데이브는 쫄쫄이 코스튬을 입으며 되뇐다. “슈퍼히어로를 만드는 건 거미에 물리는 일이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아니라 긍정과 순수에 대한 믿음”이라고. 물론 곧장 신나게 박살이 나긴 하지만 올바름을 향한 곧은 선의가 소년을 히어로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마지막 조각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