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6개의 키워드로 보는 <택시운전사> 제작기
2017-07-26
글 : 송경원
80년 5월 광주로의 초대

택시, 영화의 시작이자 끝

만섭의 택시는 1973년식 ‘브리사’다. 진작에 단종된 차를 되살리기 위해 브리사를 수배한 뒤 해체와 재조립, 세밀한 개조 작업을 거쳐 만섭의 녹색 택시가 완성됐다. 수입, 도색, 테스트에만 7개월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락선 촬영감독은 “<택시운전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촬영은 금남로나 광주 거리가 아니라 브리사 내부의 드라마 신들”이라고 말한다. “워낙에 작은 차였기 때문에 카메라를 달기 위해서 하부에 추가로 장치를 달았다. 카메라가 움직이면 가짜 느낌이 날 것 같아서 고정 촬영을 주로 했다.” 대신 좁고 한정된 앵글의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전체를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와이드숏으로 빠져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는 게 고락선 촬영감독의 설명이다. 특히 예비로 만들어둔 차도 몇대 없었기 때문에 차가 부서지면 촬영을 할 수 없다는 게 난감한 지점이었다. 그래서 액션도 차가 망가지는 순서대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고. 이쯤 되면 정말 택시가 주인공인 영화다.

5월의 색, 광주의 색, 이방인의 색

시대물은 대개 철저한 고증과 재현을 목표로 한다. <택시운전사> 역시 80년대를 되살리기 위한 여러 방식을 동원했다. 하지만 조화성 미술감독은 “디테일을 채우는 게 아니라 1980년의 공기를 재현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택시운전사>는 서울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과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의 시점을 따라가는 영화다. 당연히 영화의 분위기도 낯선 곳에 발을 들인 이방인이 보고 느낀 것들을 재현해야 했다. “두 이방인이 처음 광주에 들어섰을 때 어떤 풍경으로 보였을까”를 먼저 상상했다는 조화성 미술감독은 “서울에서 광주 외곽, 광주 시내로 들어갈 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기본적으로는 위르겐 힌츠페터가 남긴 사진 기록에 근거했지만 100% 고증에 충실하기보다는 뉘앙스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캐릭터를 압도하지 않고 그 시절을 사는 것 같은 일상의 덤덤함”을 표현한 것이다. 그 평범함이 깨어질 때의 먹먹함, 낭자한 유혈이 아니라 슬픔이 배어 있는 시대의 공기를 충실히 형성한다. 재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초대라는 편이 적절할 것 같다. 택시의 색깔이 녹색으로 낙점된 건 평화로우면서도 독성을 띠는 이중적인 색깔이기 때문이다. 만섭의 택시가 광주로 진입하는 장면에서의 배치는 같은 녹색이 어떻게 다른 톤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만섭의 택시는 일반적인 녹색보다 조금 무겁게 가지고 갔는데 군인들의 녹색은 그보다 훨씬 탁하고 무겁다. 거기에 녹음의 초록색이 후면의 프레임을 장악한다. 풍경의 초록과 택시의 초록, 군인의 초록이 공존하면서 충돌하는 거다. 녹색은 5월의 색, 광주의 색, 이방인의 색이다.”

더위와의 전쟁

무엇이 가장 힘들었을까. 스탭들이 이구동성 첫 번째로 꼽은 건 다름 아닌 한여름의 무더위! “금남로 장면을 2주가량 찍었다. 보조 출연자 500명 정도가 함께 움직였는데 그중 몇 십명은 중도에 도망갈 정도였다. 그늘 하나 없는 직사광선이라 지열이 어마어마했다. 탈진해서 그늘에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락선 촬영감독) “500여명의 보조 출연자 모두의 분장을 커버해야 했는데 한마디로 땀과의 전쟁이었다. 분장을 과하게 할 필요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김서영 분장실장) 만섭의 노란색 제복도 스무벌 넘게 준비해서 수시로 갈아입혔고, 위르겐을 위한 똑같은 옷도 여러 벌 준비했다는 후문. 브리사나 포니 택시가 워낙 작아서 에어컨 같은 건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선풍기와 부채는 필수품이었다고.

80년대 광주’의 다양한 공기들

만섭과 위르겐이 처음 들어선 광주 거리는 어수선하고 텅 비어 있다. “평화롭고 분주했을 공간이 절대적인 폭력으로 인해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채워나가기보다는 되도록 비워내려 했다.”(조화성 미술감독) 그 공허함이 당시 사람들의 심정, 이방인의 눈에 포착된 광주의 파괴된 일상을 표현한다. 이방인의 걸음에 따라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광주 거리는 때로는 축제처럼 활기차고 때로는 압도적인 폭력으로 황폐화된다. 특히 금남로의 시위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군경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면 같은 공간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변모한다. 가능한 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질감을 재현하려 했다. 하지만 만섭이 금남로 시위 한가운데에 던져지는 순간 온전히 만섭의 시점으로 그 혼란을 따라가기 위해 클로즈업과 패닝, 격렬한 움직임을 과감히 사용했다.”(고락선 촬영감독) 이처럼 <택시운전사>는 전반적으로는 일상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태도를 유지하지만 극적인 감정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확실히 장르적인 느낌을 살렸다. “광주 MBC가 불타는 시퀀스에서는 붉은색 조명을 확실히 사용하여 심정적으로 광주 자체가 불타고 있다는 느낌을 부각시킨” 것이다.(고락선 촬영감독) 이에 대해 조영욱 음악감독은 “전반적인 사운드는 만섭이 보고 듣고 느낀 감정을 좇아간다. 만섭의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경험을 관객도 함께 체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혼란, 낯섦, 공포, 분노 등 80년대 광주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만섭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스크린 너머 관객에게로 전파된다.

평범한 듯 다양하게

1980년대는 격동의 시대다. 단지 정치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급변하던 과도기였다. 시대극은 과장된 메이크업을 떠올리기 쉽지만 일상과 서민적은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택시운전사>의 경우 도드라지는 스타일 몇 가지를 강조하지 않는 게 중요했다. 그렇다고 평범함에 매달리면 단조로워지기 쉽다. 김서영 분장실장은 어떻게 하면 단순한 가운데 단조롭지 않을 것인지가 관건이었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청년, 수더분한 아저씨, 이웃의 인상을 유지하면서도 각기 다른 캐릭터와 재미를 주고 싶었다. 만섭과 황태술(유해진)은 그야말로 가장 무난하고 눈에 띄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하되 나머지 광주의 택시기사들은 파마, 장발 등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다.”(김서영 분장실장) “모노톤의 평상복 사이에서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만섭,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광주의 택시기사들이 원색을 통해 상징적인 감정을 드러낸다.”(조화성 미술감독) 이러한 모습은 일상의 톤을 유지하는 가운데 장르적 색깔을 과감히 펼치는 영화를 닮았다.

따뜻하고 따뜻한 ‘우리’의 집

<택시운전사>의 공간은 세개로 나뉜다. 만섭이 속한 서울, 외부와 격리된 광주의 거리, 그리고 광주 시민들이 사는 집 안이다. 시위와 저항의 장소인 광주 거리는 때로는 폐허처럼 비어 있고 때로는 들불처럼 가득 찬다. 반면 시민들이 숨을 쉬는 공간인 각자의 집은 따뜻한 톤을 유지한다. “태술의 집은 온화한 가정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따뜻한 목재 톤을 활용했다. 등화관제를 하기 위해 이불로 창문을 가리는 순간 바깥세상과 격리된 별개의 공간이 탄생하는 거다.”(조화성 미술감독) 송강호와 유해진, 류준열의 애드리브가 폭발하는 태술의 집 시퀀스는 80년대에 대한 우리의 관찰자적 시점이 녹아 있다. “전체적으로 만섭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가던 영화의 사운드가 태술의 집에서 3인칭 시점으로 전환된다.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한다고 보면 적절할 것이다.”(조영욱 음악감독) 따뜻하고 따뜻한 ‘광주’의 집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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