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웰컴 투 씨네리] <재꽃> 상영 후, 정하담과 한예리가 나눈 대화
2017-08-16
글 : 임수연
사진 : 최성열
사진 : 백종헌
다양한 취향이 존중받기 바란다

다양성영화축제이기에 가능한 특별한 만남이었다. 지난 8월 5일 파주 명필름 아트센터에서 열린 경기 다양성영화축제 ‘웰컴 투 씨네리’에서 <재꽃> 상영이 끝난 후 주연배우 정하담, 그리고 배우 한예리가 참석해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바다 쪽으로, 한 뼘 더>(2009) 등 여러 다양성영화를 통해 눈도장을 찍은 후 상업영화와 브라운관에서도 자리매김한 배우가 된 한예리는 “많은 다양성영화 중에서도 유독 <재꽃>이 마음에 남아 소개하고 싶었다”고 참석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서 <들꽃>(2014), <스틸 플라워>(2015) 그리고 <재꽃>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꽃 3부작’을 이끌어온 정하담이 “한예리 선배님이 응원을 해주는 일이 생길 거라고는 <들꽃>을 처음 찍을 때만 해도 상상을 못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씨네21> 이화정 기자가 진행한 이날 행사에서는 정하담이라는 새로운 배우의 매력 그리고 다양성영화가 여배우들에게 주는 의미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꽃 3부작이 완성되는 데에는 이들 작품에 모두 자신의 본명으로 출연한 정하담씨의 역할이 컸다. 같은 배우로 한예리씨가 보기에 이 배우의 어떤 점이 계속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영감을 줬다고 보나.

=한예리_ 처음 <들꽃>을 봤을 때 이 사람을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부작 모두를 연출한 박석영 감독님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구체적으로 극중 하담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영화가 설명하지는 않지만 왠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 않나. 이렇게 방치된 하담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했다. 그다음 <스틸 플라워>를 봤는데, 역시 그의 인생이 쉽지는 않지만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하게 위로를 받는 부분도 있고.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는 감독님이 좀 싫었다. (웃음) 어떻게 저 추운 날 여배우를 큰 파도 앞에 세워놓을 수 있는지 조마조마했지만, 그 장면에서조차 극중 하담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그의 사연, 그리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희망을 갖게 되는 순간이 전해지더라. 더이상 도피할 수 없는 끝에 왔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게 아마 <재꽃>의 탄생이 아닐까 싶다. <재꽃> 참 좋지 않나. 나는 계절이 바뀌는 것도 너무 좋더라. 그리고 카메라가 인물에서 멀어지면 그제야 숨을 쉴 수 있고 마음이 놓였다. 하담이 좀더 살 수 있겠구나, 물론 다른 이에게 위로받는 부분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보듬고 위로할 틈이 생겼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 하담의 성장이 영화에 있다. <재꽃>을 보면서 감독님께 감사한 부분도 있다. 하담을 어딘가 또 방치한 채 버리는 대신 끌어안으며 3부작을 마무리해줘서 고마웠다.

-한예리씨가 생각하는, 배우 정하담의 가장 힘 있는 장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예리_ 개인적으로 <들꽃>에서 하담이 뛰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 예전에는 도피를 위한 달리기였는데, 지금은 자신이 갈 곳이 생겨서 행복하게 달리고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엄마에 대한 고백을 할 때도 꽤 긴 시간 동안 하담의 목소리를 듣는데, 왜 그의 마음이 성장하지 못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고 고백하는 모습에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화정 기자, 배우 정하담, 한예리(왼쪽부터).

-<들꽃>은 정하담이라는 배우를 세상에 알리고, 배우 생활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준 작품이다. 관객에게도 다양성영화가 중요하겠지만, 배우에게도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실현시킬 수 있는 창구로서 중요하다.

=정하담_ 영화를 찍다 보니 다양성영화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해졌다. <재꽃> 개봉 이후 지방에 있는 독립영화전용관에 관객과의 대화를 하러 많이 다녔다. 너무 좋고 예쁘고 귀한 공간들인데 독립영화쪽에 계신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말이 항상 화두로 등장한다. 독립영화가 조금만 더 편하게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예리씨가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창작하는 사람에게 다양성영화가 가진 필요성과 중요성이 있다고,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고 말이다.

한예리_ 늘 극장에 가면 아쉽다.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영화를 보고 싶은데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존중받아야 하지 않나. 어떤 영화든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들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다양한 영화를 다양한 캐릭터로 만나 영화를 찍고 싶은데 배우도 계속 한정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좋은 감독들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작품을 찍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게 매우 안타깝다. 영화라는 세계에서 산업적인 부분을 떼놓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영화는 예술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분명히 창의성과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하며 감독의 작가적 세계관이 구현될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가 시를 계속 읽고 싶은데 시집은 나오지 않고 에세이만 나온다면, 우리는 더이상 책을 보지 않는 시기를 맞이하게 될 거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나 역시 노력할 것이다. 예술적 가치가 있는 좋은 작품에는 어떠한 후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두 배우 모두 여성이라는 점에서, 배우가 연기하기에 다양성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이 보다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 같다. 한예리씨의 <최악의 하루>(2016)도 남성이 여성을 소비하는 구도에서 벗어나 여성의 자유로운 사고를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한예리_ 많은 여배우들이 다양성영화에서 더 두각을 드러내고 더 좋은 시나리오를 받고 있다. 실제로 근래에 여우주연상을 탄 작품들을 보면 다양성영화가 더 많지 않나. 뭔가 속상하고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영화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여성 영화인들이 이런 부분을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향후 10년 안에 사정이 좀 달라져야 한다고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여배우들이 연기를 참 잘한다고 생각한다. 영화계에도 하담씨처럼 좋은 배우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여배우가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영화도 더 생기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관객을 만난 소감을 말해달라.

정하담_ 어떤 형태로든 관객이 볼 수 있게, 앞으로 연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내게도 기억에 많이 남을 자리였다.

한예리_ 곧 개봉하는 영화 <더 테이블>(2016)과 드라마 <청춘시대2>(2017)로 비슷한 시기에 찾아뵙게 됐다. 많이 사랑해주시라. 혹시 하담씨의 <재꽃> 이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들꽃>과 <스틸 플라워>를 꼭 보셨으면 한다. 특히 <스틸 플라워>를 통해 하담씨가 상을 많이 받았다. <재꽃>의 안정적이고 조금은 싱그러운 하담과는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관객 여러분은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두 배우를 보고 계신 거다. 너무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서 소중하지 않나. 정하담씨는 움직이고 있어도 정지하고 있는 것 같은 강렬함이 있고, 한예리씨는 움직이지 않아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유연함이 있다. 다른 성질을 가진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만나는 기회가 이 자리를 계기로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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