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에드거 라이트의 오락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트랙리스트 7
2017-09-13
글 : 장영엽 (편집장)
음악과 액션 시퀀스의 완벽한 결합

#TRACK1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 <Bellbottoms>

<베이비 드라이버>에 대한 이야기는 1994년 북부 런던, 실업수당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던 21살의 한 불우한 영국 청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의 이름은 에드거 라이트. 10여년 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와 <뜨거운 녀석들>(2007)을 만들 예정인 이 영국 감독은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젊은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에서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를 플레이한 그는 “어떤 장면이 공감각적으로 떠오르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탄 차가 음악에 맞춰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주인공은 누구일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에드거 라이트는 언젠가 이 장면을 자신의 영화에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Bellbottoms>를 처음 들은 날로부터 20년이 흐른 지난 2014년,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 <지구가 끝장나는 날> 등을 거치며 독창적인 연출로 주목받아온 에드거 라이트는 첫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연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앤트맨>(2015)이 그 작품이었다. 하지만 마블과 에드거 라이트가 꿈꾸는 <앤트맨>의 방향성이 달랐고, 그는 창작의 견해 차이로 이 대형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게 된다.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가 다시금 생각난 건 그때였다. 에드거 라이트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원작 코믹스가 있는 거대한 세계의 일원이 되는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귀여운 유머가 있는, 어디서 한번쯤 본 것 같지만 누구와도 같지 않은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 말이다. 뮤지컬리티와 액션 시퀀스로 충만한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는 이렇게 시작됐다.

#TRACK2 사이먼 앤드 가펑클, <Baby Driver>

“그들은 나를 ‘베이비 드라이버’라 불렀지. 바퀴가 땅에 닿기만 하면 나는 사라진다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로부터 신작의 제목에 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독보적인 운전 솜씨를 가진 청년 드라이버, 베이비(앤설 엘고트)의 이야기다. 그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청각 장애인 아버지 조셉(CJ 존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운전에 있어서는 신출귀몰한 재능을 보여왔던 베이비는 우연히 ‘박사’(케빈 스페이시)라고 불리는 인물의 차를 훔쳤다가 그에게 빚을 지게 된다. 박사의 빚을 갚기 위해 베이비는 그가 설계하는 범죄에 범죄자들의 탈주를 돕는 드라이버로 가담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베이비 앞에 아름다운 데보라(릴리 제임스)가 나타난다.

베이비라는 인물은 <Bellbottoms>처럼 에드거 라이트에게 번개처럼 찾아온 캐릭터가 아니었다. 수년간 이 작품의 주인공이 될 인물을 고민해온 에드거 라이트에게 두 가지 요소가 특히 중요한 영감이 됐다고 한다. 첫 번째는 아이팟이라는 21세기적 소품이었다. 깨어 있는 동안 언제, 어디에서든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아이팟의 기능을 생각하며 에드거 라이트는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에드거 라이트에게 또 한 가지 중요한 힌트가 된 것은 올리버 색스의 책 <뮤지코필리아>였다. 그는 귀울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서술한 이 책의 내용을 보고, 7살 무렵 이명으로 고통받았던 자신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기까지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이명 증상으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베이비’라 부르는 청년 드라이버 캐릭터의 탄생 과정이다.

#TRACK3 민트 로열, <Blue Song>

<베이비 드라이버>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영화다. 선글라스를 낀 세명의 강도가 무기를 챙겨 은행으로 향한다. 카메라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강도들의 도주를 돕기 위해 차에서 대기 중인 드라이버 베이비에 머무른다. 이제까지 늘 그래왔다는 듯, 익숙하게 아이팟을 돌려 <Bellbottoms>를 재생하는 베이비는 음악과 거의 혼연일체의 모습이다. 그에게 와이퍼는 메트로놈이고, 운전대는 퍼커션이다. 리듬에 맞춰 차 속에서 자기만의 파티를 벌이던 베이비가 강도들을 태우고 애틀랜타 도로를 미친듯이 질주하는 장면은 영화 초반부터 보는 이들의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한다. <Bellbottoms>와 함께 들으면 좋을 곡은 영국의 일렉트로닉 듀오, 민트 로열의 <Blue Song>이다. 특히 이 곡은 듣기만 하지 말고 뮤직비디오를 보길 바란다. 지난 2003년, 에드거 라이트는 <Blue Song>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바 있다. 그는 <베이비 드라이버> 이야기와 캐릭터가 명확하게 구축되지 않았던 그때, <Blue Song>을 만들며 은행강도의 도주를 돕는 드라이버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구상해냈다. 베이비가 아이팟을 사용한다면, <Blue Song>의 뮤직비디오 속 드라이버(영국의 엔터테이너 노엘 필딩이 드라이버를 연기한다)는 CD 플레이어에 음반을 넣는다는 것이 다르다. 유튜브에서 <베이비 드라이버>의 오프닝 시퀀스와 <Blue Song> 뮤직비디오를 비교하는 영상들을 볼 수 있다.

#TRACK4 밥 & 얼, <Harlem Shuffle>

<베이비 드라이버>는 타이밍의 영화다. <Bellbottoms>와 하이스트 액션이 리드미컬한 대구를 이루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베이비 드라이버>는 영화 내내 흐르는 30여곡의 음악과 배우들의 액션, 카스턴트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떤 순간에는 113분에 달하는 길고 긴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영화의 모든 움직임이 그 순간 플레이되는 음악의 리듬과 박자에 의해 정해지는 건 “음악이 주도하는 액션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에드거 라이트에게 무척 중요한 연출 방식이었다. 이러한 ‘타이밍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에드거 라이트는 애니메이터 스티브 마코스키와 함께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를 만들어 장면의 디테일을 미리 고민했고 시아의 <Chandelier>, 아케이드 파이어의 <We Exist>의 뮤직비디오 안무를 담당했던 라이언 헤핑턴을 안무가로 고용해 배우들에게 동작의 타이밍을 연습하도록 했다. 밥 & 얼의 <Harlem Shuffle>이 흐르고 베이비가 커피를 사기 위해 길을 걷는 장면은 이 ‘타이밍’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람을 피하고, 탈것을 피하고, 지형지물을 피해 비로소 카페에 도착한 베이비는 점원이 무엇을 주문할 거냐고 묻자 대답 대신 노래에서 흐르는 “예, 예, 예”를 따라한다. 그러고나서 말한다. “커피 네잔 주세요.” 이처럼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음악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 타이밍을 지배하고, 대사를 만들고, 상황을 창조해낸다.

#TRACK5 티렉스, <Debora>

한 영화 안에서도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건 영국 감독 에드거 라이트의 장기다. <베이비 드라이버> 역시 하이스트 액션영화처럼 시작해 어느덧 로맨스영화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데, 베이비가 첫눈에 반하는 여자, 데보라의 존재가 여기에 한몫한다. 우연히 베이비가 들어간 식당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칼라 토머스의 <B-A-B-Y>를 부르던 웨이트리스 데보라는 단숨에 베이비의 관심을 끈다. “네가 나오는 노래는 수도 없이 많아.” 그래서 ‘베이비’라는 이름이 부럽다는 데보라에게, 베이비는 기어이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자신의 아이팟에서 찾아준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다. 음악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영화에서, 캐릭터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음악을 들려준다는 것, 이보다 더 로맨틱한 상황극은 없을 것이다. 베이비와 데보라 커플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안녕, 헤이즐> <다이버전트> 시리즈 등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앤설 엘고트와 <신데렐라>의 주인공이었던 릴리 제임스 특유의 다정함과 사랑스러운 면모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비 드라이버>의 제작진에 <Debora>는 로맨틱하지만은 못한 노래가 되어버렸다. 지난 8월, 티렉스의 리드보컬, 마크 볼란의 아들 롤란 펠드가 <Debora>를 밴드의 허락 없이 썼다며 소니픽처스와 미디어 라이츠 캐피털, 밤비노 필름을 고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TRACK6 퀸, <Brighton Rock>

“자신이 잘하는 일과 원하는 삶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캐릭터.” 에드거 라이트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베이비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범죄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뛰어난 운전 실력 때문에 범죄자들은 협박을 해서라도 베이비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두뇌형 범죄자 박사부터 다혈질의 버디(존 햄), 그보다 더 무서운 광기의 소유자이자 버디의 연인 달링(에이사 곤살레스), 폭력을 사랑하는 배츠(제이미 폭스) 등은 끊임없이 베이비의 앞길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리고 베이비에게도 어느덧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클라이맥스 액션 신에서 에드거 라이트가 선택한 음악은 퀸의 <Brighton Rock>이다. 죽여주는 기타 솔로 연주가 포함된 바로 그 음악 말이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에서도 숀(사이먼 페그) 일행이 좀비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퀸의 <Don’t Stop Me Now>를 선곡한 바 있던 에드거 라이트는 이번 영화에서도 긴장감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의 사운드트랙을 퀸에게 맡겼다. <Brighton Rock>의 선곡이 절묘했던 또 다른 이유는, 주어진 상황이 연인의 사랑을 방해한다는 내용의 노래 가사가 영화 속 베이비가 놓인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TRACK7 포커스, <Hokus Pokus>

“<분노의 질주>와 <라라랜드>가 만났다.”(<인디와이어>) 에드거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에 쏟아지는 찬사에 평균을 내자면 <인디와이어>의 평을 예로 드는 것이 적합하겠다. 풍부한 뮤지컬리티와 속도감 넘치는 액션 시퀀스에 대한 찬사는 이 영화에 호평을 보낸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음악과 액션의 빈틈없는 결합을 시도했다는 점이고, 그 점이 <베이비 드라이버>를 “21세기 최초의 뮤지컬 범죄영화”(<워싱턴 포스트>)로 만들었다. 이런 기획은 연출자의 강력한 의지와 뚝심 없이는 불가능하다.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가 피로감을 유발하고, 태만하게 제작된 블록버스터 시리즈 영화의 속편이 실망감을 안겨준 올여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기존 성공 법칙을 거부하고 참신한 시도와 아이디어에 승부수를 건 에드거 라이트의 도전은 옳았다. “1970년의 음악으로 2017년의 완벽한 액션 시퀀스 연출을 해낼 수 있다.” 영화에 흐르는 포커스의 <Hokus Pokus>를 두고 에드거 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그의 말대로 과거의 좋은 것들과 현재의 테크놀로지, 감독의 재기 넘치는 비전이 결합된 최적의 오락영화다.

사진 소니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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