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감독의 <파란 입이 달린 얼굴>과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는 여성의 삶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는 영화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은 삶의 진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으로부터 빈곤과 장애, 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끌어내고, <피의 연대기>는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많은 이들이 소리내어 말하지 않는 ‘월경’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여성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는 영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을 실감하게 하는 두 영화의 감독들을 만났다.
-여성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이유는.
=김수정_ 처음부터 여성 문제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장애인인 오빠를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의 이야기로 먼저 접근했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세다고 피드백을 많이 하더라. 그런 반응을 듣다보니 내가 30여년 넘게 여성으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것들이 서영이라는 여성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축적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보람_ 2015년 처음 다큐멘터리를 기획할 때만 하더라도 생리에 대한 논의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다. 나 역시 지난 18년간 생리를 하면서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피의 연대기>를 만들게 됐다. 네덜란드 친구 샬롯이 초등학생 때부터 탐폰을 써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생리에 대한 여성들의 경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지 궁금해졌다. 누구나 가볍고 재밌게 볼 수 있는 생리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만들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김수정_ 처음 제작비를 마련하려고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왜 굳이 이런 영화를 만들려 해. 좀 상큼한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은데”였다. 경제적인 부분도 물론 힘들었지만 그런 생각들의 부딪힘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김보람_ 제작비 마련이 가장 어려웠다. 한국 독립영화 지원 시스템이 너무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이 첫 영화였는데, 제작비 지원사업 요건을 찾아보니 많은 경우 연출작이 한편만 있는 감독들은 지원할 수 있는 자격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첫 영화에 아무도 투자를 안 해주니 많은 감독들이 두 번째 영화를 찍기 전에 사라져버리는 게 아닐까. 선진국들은 국가 펀드만 가지고도 영화를 한편 다 찍을 수 있게 되어 있고, 제작비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영화인들에 대한 케어도 잘 구축되어 있다고 하더라.
-한국영화계에서 여성감독들은 여전히 소수다.
김수정_ 지난해인가 지지난해의 경우,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감독 중 여성감독의 수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관건은 젊은 여성감독들이 나이가 들어서도 영화를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의 영화 제작 환경 자체가 여성이 육아를 시작하거나 결혼했을 때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김보람_ 솔직히 성공한 감독님들이 후배 양성을 많이 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후배더라도 여성 상업영화감독들의 영화를 많이 제작하고 지원, 발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후배의 입장에서는 선배들의 지원이 절실하다.
-다양성영화는 페미니즘 이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나.
김수정_ 나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맛이 간 여자들’에 관심이 많다. 정제되어 있지 않고 어딘가 뒤틀린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더 많은 다양성영화를 통해 이런 캐릭터들을 만나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김보람_ 얼마 전에 미국 드라마 <디스 이즈 어스>에 등장하는 고도비만 여성에 대한 에피소드를 인상깊게 봤다. 이 여성의 삶과 사랑, 고도비만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을 깨나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더라. 한국상업영화의 경우 여전히 여성 캐릭터는 극단적으로 세거나 틀 안에 갇혀 있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우리가 정형화된 이미지 안에 가둬놓은 여성들의 사랑스러움과 발랄함을 조명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
<파란 입이 달린 얼굴>은 어떤 영화?
서영(장리우)의 삶은 고달프다. 그녀는 투병 중인 어머니와 장애인인 오빠를 부양해야 하는 여성 가장이다. 가난의 무게에 고통받던 그녀는 어머니에게 자신과 오빠를 위해 떠나달라고 말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여성의 일상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돌아보는 작품. 2015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연극계에서 희곡 작가로 활동하던 김수정 감독(<이매진> <달을 쏘다>)의 세 번째 영화.
<피의 연대기>는 어떤 영화?
월경에 관한 영화 종합백과사전.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생리대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부터 생리에 대한 각 세대의 대응 방식,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생리에 대한 경험의 차이 등 시공간을 가로질러 생리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다큐멘터리. 2016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수상작이다. 다큐멘터리 <우포늪의 사람들>의 작가, 한국영상자료원의 한국영화박물관 단편다큐멘터리 <녹성에서-씨네21까지, 잡지로 보는 한국영화사>를 만든 김보람 감독의 첫 장편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