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도쿄국제영화제는 ‘일본영화의 뮤즈들’로 선정된 안도 사쿠라는 예쁘장하기보다는 평범한, 특히 <백엔의 사랑>(2014)에서는 못생겨 보여야 하는 여성을 연기해왔다. 그동안 매스미디어에서 ‘뮤즈’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빼어난 아름다움이 작품 안팎에서 강조되는 여성에게 상투적으로 주어지는 수식어였다. 때문에 그를 일본영화계를 대표하는 뮤즈라 선언한 것은 영화제가 생각하는 뮤즈의 속성을, 젊은 여배우의 역할을 대변한다. 안도 사쿠라가 출연한 <가족의 나라>(2012), <0.5mm>(2014) 두편이 상영된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뮤즈로 선정된 것에 들뜨거나 진지하게 반응하기보다는 “그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와 만났다.
-30주년 기념 특별전 ‘일본영화의 뮤즈들’ 중 일원으로 선정됐다.
=배우로서 일이 많아지고 바빠질수록 겸손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매번 겸손해하는 것도 사실 매우 쑥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뭐, 좋다. 축제니까 그냥 즐기자!”라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웃음)
-당신이 생각하는 뮤즈의 조건이 있나.
=특별히 고민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올해 영화제에서 함께 뮤즈로 선정된 배우들이 나에게 줬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일본에서 살아가는 어떤 여성에 대해 관객이 그 살결까지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세 여배우들은 나에게 뮤즈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에너지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준 것이고 말이다.
-최근 한국이나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영화산업이 지나치게 남성 위주라는 지적이 많다. 좀더 다양한 여성을 스크린에서 자주 만나고 싶다고들 한다. 그래서 30주년 기념으로 젊은 여성배우들을 조명한 프로그램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일본영화계에서 일하면서 성차별을 크게 인식한 적은 없다. 정반대로 많은 여성이 영화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남녀 차별문제가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다면,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성은 먼지처럼 작은 것을 다룰 때 각도의 미세한 차이를 잡아낸다든지 하는 아주 섬세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다. 영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비출 수 있는 예술이며, 비추어야만 하지 않나. 좀더 다양한 영화가 나오기 위해서는 여성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백엔의 사랑>은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모습을 조명한 좋은 작품이었다. 주변으로부터 한심한 시선을 받으며 무기력하게 살던 32살 여성이 복싱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후회 없이 패배한다.
=영화계에는 큰 작품도 작은 작품도 존재하고, 적은 제작비로 영화를 찍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시 2주 만에 복싱 선수의 몸을 만들어야 했는데 복싱은 여자에게는 힘든 일이라고들 하지 않나. “내가 비록 여자지만 해내고 말 거야”라고 다짐하게 되더라. 이 과제를 해내면 영화계 전반의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또 다른 캐릭터가 있나.
=특정한 캐릭터에 도전해보자고 미리 마음먹기보다는 여러 역할을 해 보면서 모험을 해나가고 싶다. 지금의 나조차도 깜짝 놀랄 만한 역할을 만났으면 한다. 또 지금은 기술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 아닌가. 이 시대에만 할 수 있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 가령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최대한 반영된 작품. 3D라든가 VR이라든가. (웃음)
-확실히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VR은 초미의 관심사다. <버드맨>(2014),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까지 짧은 VR영화를 만들지 않았나.
=사실 예전부터 서커스단을 굉장히 존경해왔다. 서커스를 하는 모습을 최첨단 VR 기술을 활용해 이미지로 만들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웃음) 서커스에서 휙 날아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구현되는 것이다. 현대 기술과 영화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작업에 참여한다면 매우 즐거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