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반드시 잡는다> 성동일 - 상대배우와 합쳐 100을 만든다
2017-11-28
글 : 임수연

최근의 성동일은 부쩍 젊은 배우들과 함께한 작품이 많았다. 가장 적극적으로 신인을 발굴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부터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2016), <화랑>(2016) 등 청춘 사극, 영화 <수상한 그녀>(2014), <리얼>(2016), <청년경찰>(2017)로 이어지는 필모그래피가 독특해 보일 정도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주로 유쾌하거나 뭉클한 감정을 짧고 굵게 전달하는 인생 선배였다. 하지만 드물게 50대 이상 배우를 메인으로 내세운 영화 <반드시 잡는다>는 평소보다 긴 시간 동안 성동일표 연기를 감상하고 곱씹을 시간을 마련한다. 30년만에 다시 벌어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전직 형사 박평달은 수사 콤비의 일원이자 강력한 사연의 주인공이다. 성동일의 표현대로라면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연기할 순간이 많았던 셈이다. 평소처럼 보기 편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쏠린 순간을 1초도 흘려보내지 않는 그를 만났다.

-초반에는 나오지 않다가 느닷없이 깜짝 등장한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세게 연기하기보다는 그냥 툭 들어가고 싶었다. 선글라스를 껴서 눈을 가린 것도 마음대로 놀 수 있어서였다. 원래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 하나 아닌가. 그래서 다 잘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신만 살려내면 다른 장면도 어느 정도 용서받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편이다. <수상한 그녀>에서는 “제발 그냥 가세요, 엄마”, 그 장면만 보고 갔다. <반드시 잡는다>에서는 “아파”라고 말하며 반전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제일 중요했다. 사실 이건 시나리오에 없는 대사였는데 내가 감독에게 제안한 거다.

-반전 이후의 상황을 앞부분의 연기에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의미인데.

=배우의 단점이 답을 먼저 안다는 거다. 관객에게 답을 애써 감추려고 하면 보이고 너무 안 해도 보인다. 그러니 관객이 반전을 알기 전까지는 배우도 모르고 연기를 해야 한다. 후배들에게도 답을 모르고 열심히 하는 놈은 만점을 받고 답을 알고 가는 놈은 절대 만점을 못 받는다고 항상 말한다. 굳이 오버해서 연기하지 말자, 그냥 놀자는 마음으로 했다. 그냥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드라이하게. 심덕수(백윤식)를 만날 때는 가성으로 연기했다. 그러다가 내 과거로 쑥 들어갈 때는 진성으로 연기하고. 벗어나면 다시 또 가성으로. 영화에서 보면 평소엔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캐릭터가 박평달 같지 않나. (웃음)

-그렇게 진성과 가성을 나눠 연기하는 연기 스타일이 언제부터 정립됐나.

=드라마나 영화나 그렇게 연기한 지 꽤 오래됐다. 가장 많이 써먹은 게 <응답하라> 시리즈다. 재미를 본 건 <추노>(2010)였고. 사실 <추노>나 <응답하라>는 그냥 다 가성이었지.

-상대배우에 따라 연기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동네의 터줏대감 심덕수 역의 백윤식 배우와는 어땠나.

=어떤 배우와 둘이 붙었을 때, 내가 상대배우를 보고 나서 내 것을 설정하는 게 낫다. 함께 100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조절한다. 이기려고 하면 안된다. 상대가 호흡이 느리거나 조금 말을 곱씹어서 가며 60~70을 쓰면 나는 30~40의 호흡만 써야 하니까 일부러 대사를 빨리 친다. 만약 배우가 40에서 끝내면 난 60을 갖고 애드리브를 하는 등 더 재밌게 장면을 만든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는 상대배우 이일화가 대사를 느리게 치니까 내가 빨라지는 거다. 백 선생님은 나보다 호흡이 길다. 그래서 내 대사에 속도가 붙는다. 만약 내가 백 선생님을 따라 호흡을 길게 갔다면 둘이 합쳐 130이 되고 흔히들 말하는 늘어지는 영화가 되고 만다.

-<더 킹>(2016), <청년경찰>처럼 짧게 등장하는 작품과 <탐정: 더 비기닝>(2015)이나 이번의 <반드시 잡는다>처럼 메인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이 필모그래피에 공존한다.

=내 나이에는 꼭 주연이라고 해서 주연만 하고 조연이라고 해서 조연만 하고 그런 게 없다. 남들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서 40회차 등장하는 캐릭터와 6회차 등장하는 캐릭터 중 일부러 후자를 고르기도 한다. 한쪽에 큰 작품이 있으면 다른 쪽은 그냥 사람 만나고 술 마시러 간다. <더 킹>은 술 먹는 조건으로 1회차 가서 찍었다. <청년경찰>은 <우아한 거짓말>(2013)때 함께한 김재중 무비락 대표가 제안하기에 대신 술 세번 같이 마시자고 하고 4일인가 5일 만에 다 찍었다. 남들은 내가 그 영화에서 되게 많이 나오는 줄 아는데 합쳐보면 등장 신이 몇개 안 된다. (웃음) 내가 사람을 사고 싶으면 일로써 도움을 주고 우정출연은 돈도 안 받고 하면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차기작 중에는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를 함께했던 (이)성경이가 출연하는 영화 <레슬러>나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의 새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우정출연이라 분량이 많지 않다. 그래도 스스로가 즐길 수 있으니 하는 거다. 곧 노희경 작가의 신작을 함께할 이순재 선배님, 백윤식 선배님을 뵙고 배웠던 게 이런 부분이다. 즐기면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사람들과 소주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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