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철우는 남한의 외교안보수석이다. 땜빵 인생을 자처하며 여기저기 대타 강의를 뛰고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덕분에 보수적인 현 정권과 반대 색깔인 차기 정권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 CIA, 중국 공안에도 인맥이 있다. 그렇게 곽철우는 <강철비> 속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선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타이틀과 신념 이전에 그는 아버지이고 직장인이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엘리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곽철우 역에 곽도원이 필요한 이유다.
-양우석 감독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처음부터 곽철우 역만큼은 곽도원 배우로 정해져 있었다고 들었다.
=양우석 감독과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워낙 똑똑하고 재주가 많은 분이라 아이디어가 넘친다. 본래는 시나리오만 쓰고 연출을 다른 분에게 맡기려고 했다고 들었다. <변호인> 때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여러 타이밍이 겹쳐서 내게 기회가 왔다. 감사한 일이다.
-<강철비>는 매우 도발적인 영화다. 에둘러 피해갈 법한 지점에서 돌진한다.
=세상에 화두를 던질 수 있는 당사자가 돼서 떨리기도 하고 긴장감도 생긴다.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좋았다. 배우는 비평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뭐든 밝은 부분이 있으면 어두운 부분이 있다.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지점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나는 배우니까 몸짓으로 그런 미묘함들을 명확하게 표현할 뿐이다.
-남쪽 철우라고 불러야 할까. 기계적으로 가르면 보수 정권 밑에서 일하지만 소위 말하는 건강한 보수처럼 보인다.
=외교안보수석, 정확히는 대행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세상의 아버지들, 회사원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나약함이 있다. 종종 “땜빵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자조적인 대사를 내뱉기도 한다. 작은 힘이다. 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나아가면 자신이 꿈꾸던 것들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매사 충실하고자 하는 인물이다. 근본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라는 게 캐릭터에 대한 접근의 시작이었다. 아버지로서의 무게, 직장인의 비애 같은 게 있다.
-곽철우는 엘리트지만 그보다는 아버지, 직장인으로서의 면모가 더 도드라진다. 초반부터 가족과의 에피소드가 먼저 나오기도 하고. 유독 이런 캐릭터가 어울리는 것 같다.
=일상의 나랑은 너무 다르니까 오히려 분석하기가 용이한 면이 있다. 엘리트라는 건 위치에 대한 문제일 뿐 사실상 대한민국의 아버지, 이혼한 남자, 얼마 안 되는 월급으로 사는 직장인이다. 위자료, 양육비 다 떼고나면 2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생활한다는 설정이었다. 외교안보수석 월급, 얼마 안 된다며. 양우석 감독님이 그런 부분에서 무척 디테일하다. (웃음) 그래서 땜빵 강의도 하고 어떤 일이든 해낸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책임감이 결국 자신의 방식으로 나라를 위하는 길까지 나아간다. 아버지로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아버지 역할이 계속 들어오는데 아직 결혼을 안 해봐서 쉽지 않다. (웃음)
-북쪽 철우가 액션 담당이라면 남쪽 철우는 인간미, 그리고 유머가 도드라진다. 시도 때도 없이 유머를 던지는 모습에서 자연인 곽도원의 귀여움이 슬쩍 보이기도 한다.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일수록 쉴 타이밍과 유머가 중요하다. 가령 (송)강호 형은 그 타이밍을 동물적으로 파악하고 육감적으로 표현한다. <택시운전사>를 봐라. 정말 존경스럽다. 하면 할수록 코미디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재미있고, 욕심이 생긴다.
-핵을 소재로 한 만큼 개봉 후 정치적 입장에 대한 질문을 자주 들을 것 같다.
=거기에 대해서는 명확하다. 배우란 연기로 세상에 화두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인 곽도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 있을 거라 봤다. 도리어 선명해서 좋았다. 그게 작품에 출연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