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중의 취향을 과소평가해서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홍보의 천재라 불리는 P. T. 바넘이 남긴 유명한 말은 일견 평범한 대중을 얕보는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대의 비평가들은 그가 엔터테인먼트를 대중화한 업적에 주목했다. 영화 <위대한 쇼맨> 역시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오락을 창시한 P. T. 바넘의 성과에 초점을 맞춘다. 뮤지컬 스타 휴 잭맨을 내세워 <물랑루즈>(2001), <위대한 개츠비>(2013)처럼 화려한 쇼를 보여주지만 같은 계보에 속한다고 단언하기 힘든 이유다. <위대한 쇼맨>의 ‘지상 최대의 쇼’가 의미하는 바를 주제별로 미리 살펴보았다.
아웃사이더의 반란
P. T. 바넘(휴 잭맨)의 인생을 그린 <위대한 쇼맨>은 일견 전형적인 자수성가한 성공담처럼 보인다. 가난한 양복장이의 아들이었던 그가 획기적인 방법으로 백만장자가 되는 실제 삶부터가 그에 가깝고, 영화 초반부 P. T. 바넘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넘의 아버지는 그의 부인이 될 채리티 바넘(미셸 윌리엄스)의 아버지 밑에서 일했고, 어린 두 사람은 신분 차이 때문에 거리를 둬야 했다. 하지만 <위대한 쇼맨>은 한 개인의 성공 서사만은 아니다. 그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준 홍보 전략은 차라리 P. T. 바넘에 관한 자기계발서적에 더 상세하게 나와 있을 것이다. 대신 <위대한 쇼맨>은 그의 엔터테인먼트가 당시 대중에게, 예술계에 어떤 의미였는지 쇼를 통해 보여준다. 제노 타핑 프로듀서는 “바넘은 민주주의적인 방식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대중에 선보인 최초의 인물이었다. 연극이나 콘서트 등을 비롯한 다수의 예술 형태가 원래 상류층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극장에 가기 위해 적잖은 용기를 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P. T. 바넘의 쇼는 약간의 돈만 있으면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그 쇼를 만드는 기인들은 원래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키가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사람, 온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 수염이 나는 여자 등 현실에서는 놀림을 받으며 괴상하다는 취급을 받던 이들이 P. T. 바넘의 눈에는 스타의 자질을 갖춘 유망주였다. P. T. 바넘은 서커스의 볼거리가 되면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고 그들을 설득하며 무대에 세운다. 휴 잭맨이라는 강력한 톱스타에 잭 애프런, 미셸 윌리엄스, 레베카 퍼커슨, 그리고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 젠다야 콜먼 등이 가세했지만 <위대한 쇼맨>은 퍼포먼스를 펼치는 서커스단 일원 한명 한명의 개성을 공들여 등장시킨다. <위대한 쇼맨>은 바넘 개인이 아닌 모두의 성공에 관한 이야기다.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은 “과거와 미래가 혼합된 스팀펑크” 같은 스타일을 주 컨셉으로 잡았다. 진정한 의미의 대중문화의 탄생을 그린 영화 속 이야기가 현대적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영화는 과거의 시대상을 재현하기보다 보편적인 세계를 지향한다.
<위대한 쇼맨>의 코스튬은 <월 스트리트>(1987), <채플린>(1992), <바이 더 씨>(2015)의 의상을 맡았던 엘런 미로닉의 지휘와 전문 재단사의 협업하에 대부분 맞춤 제작됐다. 실제로 “1800년대에 어울리면서도 <보그> 같은 패션지에도 어울릴 법한 의상”(마이클 크레이시 감독)을 의도했기 때문에 고증보다는 과감한 색감과 독특한 스타일을 중요시했다. “당시의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검은색 양복을 입었지만 P. T. 바넘의 의상은 네이비 블루와 그레이의 좀더 밝은 계통으로 바꿨다. P. T. 바넘의 여정이 계속되면서 의상 컬러도 점점 더 대담해진다. 파란색 셔츠와 다양한 넥타이를 활용하고 그린과 라벤더 컬러도 썼다.” 서커스 기인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영화의 메시지에 걸맞게, 모든 배우들의 의상에 신경 썼다. 그들의 외모적 특성을 부각시키게끔 옷을 디자인하는 것은 오히려 편견일 수 있다는 판단에 흥미진진한 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와이 마오리족 출신의 브로드웨이 배우이자 가수인 키알라 세틀이 연기한 수염 달린 여자 레티 루츠의 의상은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옷에서 영감을 받았다. “빅토리아 시대를 모던하고 와일드하게 재해석한 그에게 큰 영감을 받았”(엘런 미로닉 의상감독)기 때문이다.
<라라랜드>(2016)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디어 에반 한센>으로 토니상 음악 부문을 수상한 벤지 파섹, 저스틴 폴이 <위대한 쇼맨>의 음악을 만들었다. 제작자 로렌스 마크는 “록과 팝, 현대 브로드웨이 사운드를 합치는 재능”을 눈여겨봤다고 전한다. <위대한 쇼맨>의 음악은 현대의 힙합 댄스까지도 아우르며 동시대성을 더한다. 한편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은 브로드웨이 공연 음악을 준비하는 방식으로 리허설을 거쳤다. 한쪽에서는 댄스 리허설을, 다른 쪽에서는 노래 리허설을 진행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리허설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곡을 녹음할 수 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뿐이었다.”
<위대한 쇼맨>의 주된 공간은 P. T. 바넘에게 처음 성공을 안겨준 곳인 ‘호기심 박물관’이다. 이곳의 비주얼을 구현할 때 역시 동시대성을 염두에 뒀다. <어톤먼트>(2007), <안나 카레니나>(2012) 등을 작업한 시머스 맥가비 촬영감독은 “일부러 시대물에서 볼 수 없는 카메라워크와 컬러를 사용했다.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모던하고 채도 높은 컬러를 썼다”고 말했다. 그 시대의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찍는 방식도 달라졌다. 다른 뮤지컬영화보다 카메라가 동적이고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Come Alive>를 촬영할 때는 점점 속도가 붙는 곡의 특성을 살리고자 스테디캠을 활용했다. 화려한 공중 곡예를 보여주는 <Rewrite the Stars>를 촬영할 때는 “깃털처럼 가벼운 연인이 공중을 떠다니는 모습이 담긴 샤갈의 그림”을 떠올렸다. 한편 여러 대의 65mm 카메라와 최첨단 대형 센서가 장비로 활용됐다. “와이드숏으로 찍을 때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클로즈업으로 들어가도 중간 포맷의 초상화와 같은 느낌을 내며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시머스 맥가비 촬영감독)
쇼맨, 휴 잭맨의 무대 연기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는 <위대한 쇼맨>의 이상을 보여주기에 휴 잭맨은 최고의 캐스팅이다.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보던 당시 그가 보여준 뛰어난 ‘무대 연기’를 기억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연극 <오즈에서 온 소년>으로 토니상을 받고 2012년 토니상위원회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는 고전적 의미에서의 쇼맨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다. 특유의 따뜻한 이미지는 누구든 포용하는 P. T. 바넘의 캐릭터와 잘 어우러지며, <레미제라블>(2012) 등에서 조화를 깨지 않는 훌륭한 앙상블을 보여줬다. 때문에 극중에서 P. T. 바넘이 센터에 서서 화려한 공연을 수려하게 펼치는 순간에도, 관객은 뒤에 있는 기인들의 퍼포먼스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휴 잭맨의 노래 실력은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다른 배우들도 경력이 만만치 않다. P. T. 바넘의 공연을 상류층에도 소비될 수 있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필립 칼라일을 연기한 잭 에프런은 <하이스쿨 뮤지컬>(2006), <헤어스프레이>(2007) 등에서 공연한 바가 있다. 미셸 윌리엄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카바레>에서 활약했다. 앤 휠러를 연기한 젠다야 콜먼은 <디즈니 채널>의 인기 시트콤 <우리는 댄스소녀>로 데뷔했고 배우와 가수로 활동중이다. 그는 극중 공중그네 곡예를 직접 연기하기 위해 몇달 동안 특수한 훈련을 거쳤다.
<위대한 쇼맨>의 인상적인 O.S.T들
<위대한 쇼맨>에는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 음악감독이 만든 11개의 오리지널 스코어가 등장한다. 이들의 가사는 종종 어떤 대사보다도 <위대한 쇼맨>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그중 귀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세 트랙을 꼽았다.
<A Million Dreams>
계급 차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은 P. T. 바넘과 채리티 바넘 부부는 언젠가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산다. 극중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시간 여행’과 함께 두사람의 삶의 태도를 황홀하게 압축했다.
<This Is Me>
아마도 <위대한 쇼맨>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일 것이다. P. T. 바넘의 호기심 박물관에 모인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당찬 자존감을 갖고 자신을 긍정하는 가사를 담았다. 수염 달린 여자 레티 루츠 역을 맡은 키알라 세틀이 자존감을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보여준다.
<Rewrite the Stars>
연극인 출신의 필립 칼라일은 공중그네 곡예사 앤 휠러에게 첫눈에 반한다. 칼라일은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받는 휠러의 태도는 현실적이다.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안무는 90% 배우가 직접 소화한 것이다. 휠러 역의 젠다야 콜먼은 공중그네 곡예를 직접 선보이기 위해 몇달 동안 프로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P. T. 바넘의 홍보 기술
2시간이 좀 안 되는 러닝타임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P. T. 바넘의 실제 이야기들이 있다. 그는 젊어서부터 물건을 팔아 사업을 확장하는 데 타고난 재능을 보인 인재였다. 잡화점에서 일하던 시절 어떤 말을 해야 물건이 잘 팔리는지 방법을 터득했다는 그는 직접 운영하는 복권 판매 가게를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대리점으로 만들었다. 기막힌 스토리텔링을 통해 고객에게 ‘꿈’을 강조한 것이 그 비결이었다. 쇼 비즈니스를 시작한 그가 처음으로 성공을 거둔 상품은 ‘조이스 헤스’다. 실제로는 80살도 되지 않은 사람을 두고 P. T. 바넘은 그가 161살이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아버지 어거스틴 워싱턴의 노예였다고 거짓말을 했다. 사람들은 진의 여부를 알기 위해서라도 조이스 헤스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1842년 박물관을 개장한 후에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톰 섬 장군을 미국과 영국에서 히트시켰다. 발육 부진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극중 설정과 달리 실제로는 5살이었다. P. T. 바넘은 또래보다 원숙한 그의 성격을 이용해 나이를 12살로 속인 후 ‘영국에서 온 톰 섬 장군’이라는 수식어로 대중 앞에 선보였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톰 섬 장군은 미국인이 유럽의 이국적인 속성이 가진 환상을 이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엄청난 홍보 공세와 ‘미국 사랑’을 강조해 스웨덴 출신 소프라노 가수 제니 린드를 단숨에 미국 전역 스타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