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관계 해빙의 실질적 서막이 열렸다.” 홍콩의 종합뉴스통신사 <중평사>의 11월 30일자 보도다. 지난 11월 23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추진이 합의된 이래 양국 언론은 한·중 관계가 사드 배치 갈등으로 인한 1년3개월간의 암흑기를 끝내고 해빙기에 접어들었음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한·중 관계 해빙의 전조는 지난 10월에도 감지됐다. 10월 18일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의 기자회견에서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의 장홍썬 부국장은 “문화교류는 마음과 감정에서 나오는 ‘온도의 교류’”라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많은 중국 영화인들의 활약상을 언급하며 “양국의 민심이 통하기만 한다면 문화교류와 협력은 분명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중국의 미디어와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기관의 고위 인사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힌 이러한 견해는 한·중 문화교류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12월 5일부터 8일까지 중국 베이징 CGV인디고에서 열린 제4회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는 한·중 문화교류의 재개를 알리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CJ중국본사, 중국우호평화발전기금회가 공동 주최하고 CJ문화재단과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중국의 민간외교를 담당하는 전국적 인민단체다.-편집자)가 후원하는 이 영화제는 한국과 중국의 역량 있는 신인 영화감독들을 발굴해 양국의 영화산업 발전과 문화교류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한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의 손학경 주임은 “중국과 한국의 청년들이 그들의 이상과 꿈을 이루는 데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며 “이 영화제를 통해 중국과 한국의 관계가 더 좋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CJ중국본사의 김장훈 수석운영관은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는 CJ의 가장 중요한 연례 문화교류 행사 중 하나”라며 “지난 영화제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영화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입선한 중국 감독들에게 한국 연수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청년 감독들의 교류와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올해의 영화제는 지난 3회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칸뤄한 감독의 단편 <누구의 당나귀인가>를 개막작으로 4일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는 매년 한국과 중국의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중국 단편 입선작과 한해 동안 한국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신인감독들의 단편영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504편의 출품작 중 우수 입선작으로 선정된 30편의 중국 단편영화와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 대상 수상작 <나만 없는 집>,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최우수상 수상작 <미열>, CJ문화재단의 스토리텔링 지원사업인 ‘스토리업’이 발굴한 감독 박성국의 <피크닉>, 염경식 감독의 <신의 질문> 등 12편의 한국단편영화가 상영됐다. 중국 단편경쟁부문의 심사위원으로는 <웰컴 투 동막골> <조작된 도시>의 박광현 감독과 <늑대소년> <탐정 홍길동>의 조성희 감독, 영화 <베테랑>의 중국 리메이크작 감독인 우바이 감독 등이 참여했으며 한국 단편 상영작 선정에는 <씨네21>이 함께했다. 심사위원 대표로 개막식에 참석한 루하이보 중앙희극학원 방송영화학과 교수는 “유명한 영화감독 중 대부분이 단편영화로 경력을 시작했다”며 “504편의 출품작을 통해 많은 신인감독들의 재능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확인 할 수 있어 즐거웠다”는 심사 소감을 전했다.
제4회 한중청년꿈키움단편영화제는 메인 프로그램인 영화 상영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올해의 영화제는 4DX 특별전과 한·중영화전문가들의 특강을 신설했다. 4DX 특별전에서는 중국 단편 입선작인 왕펑 감독의 <옐로>를 4DX 버전으로 상영한 뒤 김주환 4DX 전문가와 왕펑 감독이 함께 기술작업 후일담을 들려주는 자리를 마련했다. 영화제 마지막 날 열린 특강에서는 중국영화 <용문비갑>(2011), 한국영화 <박쥐>(2009) 등을 작업한 베이징화린미디어의 수석 조색사 박상수 대표가 ‘4K 시대의 DI 색상 편집 및 프로젝트 진행 관리’에 대해, 한·중 합작영화 <소피의 연애매뉴얼>(2009)에 참여한 계유림 제작자가 신인감독이 성공한 흥행 장르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의 영화제가 소개한 중국 단편영화 중에는 다양한 각도로 동시대를 스토리텔링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들 영화 중 심사위원대상의 영예는 우얼쿤비에커 감독의 <구출>에 돌아갔다.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을 배경으로 위기에 처한 한 가족의 사연을 통해 민족간의 비극을 얘기하는 <구출>은 신인감독답지 않은 유려하고 안정적인 연출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이와 더불어 상업 장편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스케일이 인상적인 궈진보 감독의 <막다른 길>이 감독상을, 동화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았던 류밍산 감독의 <보이지 않는 왕국>이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시에신 감독의 <스토리북>이 CJ꿈키움상을, 한슈아이 감독의 <라스트샷>이 대외우호협회상을, 왕펑 감독의 <옐로>가 4DX 특별상을, 롱잉 감독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스크린X 특별상을 수상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수상한 7명의 감독들은 내년 1월 중 한국을 방문해 한국 영화감독과 제작자, 배우, 신인 영화인들과 네트워크를 쌓는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 중 한명은 단편영화 제작 시 CJ문화재단의 제작비 지원을 받게 된다. 영화제는 끝났지만 한·중 문화교류의 온도는 여전히 뜨겁기만 하다. 이어지는 지면에서는 4일간 열린 한·중 영화축제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전한다.